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
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
  • 미래한국
  • 승인 2014.09.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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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군주론 이펙트> (필립 보빗 著 이종인 譯 세종서적)
 

군주나 귀족들에게 올바른 처신을 조언하는 책들은 도덕, 정의, 공정, 자비와 같은 고전적 혹은 기독교적 미덕에 대해 가르친다. 이런 책들을 ‘거울책자’라고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주에게 필요하다면 그러한 도덕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 의미에서의 거울책자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공화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 하지만 ‘군주론’에서는 군주가 독재정, 전제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설파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군주론’은 정치와 윤리를 별개의 것으로 본다. 그런 마키아벨리를 일러 많은 이들이 ‘악(惡)의 교사’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타당한가? 마키아벨리의 저술에서는 ‘포르투나(일반적으로 ‘운명’이라고 번역)’와 ‘비르투’(일반적으로 ‘미덕’이라고 번역)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인간은 ‘포르투나’를 지배할 수 있는가, 없는가?

‘군주론’의 마지막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사(政事)에는 관심이 없는 철부지 젊은이에게 열렬하게 ‘이탈리아의 해방자’가 될 것을 요구하면서 최고의 찬사를 바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의 추방 시기에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안보 담당자였다. 그런 사람이 참주에게 그렇게 아양을 떤 이유는 무엇일까? 새 정권에서 한 자리 구걸하기 위해서?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둘러싼 다섯 가지 역설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눠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마키아벨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했다는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다(참고로 마키아벨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책은 국가론(國家論)의 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설명한다. 1494년 프랑스 샤를8세의 침공 이후 일련의 전쟁을 거치면서 이탈리아는 일대 격변에 휘말리게 된다. 대포로 무장한 대군(大軍)의 등장 앞에서 성채와 용병(傭兵)에 의존하는 기존의 안보전략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오르디니(정치질서, 政體)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피렌체공화국을 포함하는 토스카나 지방과 교황령을 아울러 이탈리아 중부에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어 외세의 침략에 항거하는 방파제로 삼는 것이었다. 구이차르디니 등 마키아벨리의 친구들이 중세의 황혼을 보고 있을 때 마키아벨리는 근대의 새벽을 보고 있었다. 그게 마키아벨리의 위대한 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떤 나라여야 할까? 마키아벨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은 ‘공화국’이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포르투나’와 ‘비르투’의 상호관계 속에서 흔들릴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 문제를 ‘집단적 비르투’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집단적 비르투’는 민중이 정치참여와 병역을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고,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되, 국가를 영도하는 엘리트의 존재도 인정하는 공화국 체제 아래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일관된 관점에서 ‘군주론’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군주론’을 통치나 경영의 스킬, 처세의 방도쯤으로 이해하는 작금의 세태가 참 치졸하게 느껴진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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