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명의 탯줄, 제주 고산리
한반도 문명의 탯줄, 제주 고산리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9.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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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의 역사파일]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말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수수께끼가 나오는 곳이 있다. 제주도 고산리가 그렇다.

   
제주 고산리 토기

1990년대 초반 이곳에서 돋을무늬(융기문) 토기가 한 점 나왔다. 연대를 측정해 보니 약 BC 8000년 전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약 1만년 전에 조상님이 쓰던 그릇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인으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1만년 전 조상님들이라니.

하지만 이 고산리 토기의 상단 문양, 그러니까 가로로 쳐진 세 개의 줄무늬는 신라 토기에도 등장했다. 이후 오늘 우리가 ‘항아리’라고 부르는 토기에도 종종 그려 넣어진다. 문화적 연속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고고학계에서는 토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토기는 정착생활의 보증수표인데 어떤 지역에서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토기는 유목민들과 같이 이동형 문화에서는 깨지기 쉬워 잘 발굴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주 고산리의 토기는 약 1만년 전 그곳에 정착문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정착지가 당시로서는 발굴되지 못했다.

   
고산리 유적-한반도 최초의 정착마을로 밝혀졌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마을

지난해 제주도 고산리 유적은 20여년에 거친 발굴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집단 정착유적들이 발굴됐다. 연대 측정이 가능한 유물들로부터 제주 고산리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마을’임이 확인됐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처음에 이 제주도로부터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딜레마가 생긴다. 다름 아닌 제주 고산리 토기가 이제까지는 저 멀리 연해주 아무르강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시호테알린(Sikhote-Alin)이라는 매우 추운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토기는 1만4000년 전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토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토기로 알려진다. 시호테알린과 고산리 토기는 덧띠 무늬도 유사했다.

고고학계는 아무르 고토기와 제주 고산리 토기간의 연관성을 주목해 북방인들의 남하 루트를 가정해 봤다. 그렇다면 제주 고산리의 신석기 마을의 연대는 한반도 중부나 남부 쪽에서 발견되는 정착유적보다 연대가 늦어야 한다. 동시에 제주 고산리토기보다 더 연대가 이른 토기가 한반도 중부나 남부 어딘가에서 발굴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발굴성과가 말해주는 것은 그와는 반대였다.

1970년대 발굴된 강원도 오산리 토기는 BC 6000년 전으로 소급된다. 이보다 늦은 시기에 한반도 서해와 해안, 강변에서 발굴되는 빗살무늬 토기는 BC 3000년이 대개 그 상한선이다. 더구나 이 빗살무늬 토기는 유럽과 시베리아 일대에서 발굴되는 토기들과 유사성이 강해서 이를 발굴한 핀란드 고고학자 아일리오가 ‘캄케라믹(Kammkeramic: 빗살무늬토기)’이라고 명명했다.

이로부터 한반도 정착 주민들과 바이칼 서쪽, 즉 트랜스 시베리아 문화 간의 연관성이 집중적으로 연구됐다. 하지만 이후 한반도 빗살무늬 토기 가운데 연대가 시베리아 캄케라믹보다 오래된 것들이 등장하면서 연구자들은 일대 미스터리에 빠져들었다. 유적이 말하는 대로 설명한다면 한반도 빗살무늬 토기 주역들이 바이칼 쪽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빗살무늬 토기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도 고산리의 1만년 전 토기는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한다. 한반도 중부와 남부의 빗살무늬 토기인들보다 먼저 제주도에 정착한 이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다는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북방으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여기에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제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고 여겨져 온 일본 죠몬토기(BC 1만500년)의 존재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토기라던 일본 죠몬토기가 시베리아 아무르토기(BC 1만4000년), 제주 고산리토기(BC 8000년)로 인해 복잡해졌다고 해야 맞다.

이 문제는 단순한 토기 연대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에 인류가 어떻게 모여들게 됐고 어떤 방향으로 문화적 접촉과 이동 및 전파가 있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1만년 전 제주 고산리 토기는 이 시기에 해당하는 마을 유적지의 발굴로 더 이상 북방 아무르인의 남하설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이미 1만년 전 시기에 제주도에는 사람들이 정착해 수렵과 어로의 생활을 이어갔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돼야 한다. 왜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정착문화가 하필이면 한반도 제일 남단의 섬 제주도에서 발굴되는 것일까. 대답을 얻기 위해 지도만 들여다봐서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제주도와 중국 사이의 황해가 있는데, 그 바다는 처음부터 바다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아무르토기(BC14000)

제주도, 그 신비의 섬

지금의 황하와 양자강은 1만년 전 거대한 강으로서 황해 평원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흘렀다. 황해는 평야였다. 그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1만2000년 전이다. 지구의 마지막 빙기인 사르탄 빙기가 끝나면서 지구의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빙하는 북쪽과 남쪽으로 더 물러났다. 황해 평원은 서서히 바다로 침수돼 갔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바닷물의 침수를 피해 중국 대륙의 동남부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이 세 방향으로 북상했을 거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중국 동남부, 한반도, 일본 이 세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을 다시 황해 평원으로 모아보면 그 어딘가에 오늘날 동아시아 문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지역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토기들이 발굴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르 토기와 제주 고산리 토기, 그리고 일본 죠몬 토기보다 더 오래된 그릇들은 어쩌면 황해 남쪽, 타이완과 오키나와 섬 근처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그 후손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것은 아닐까.

동이족이라 불렸던 이들의 언어가 오늘날 중국어가 아니라 오스트로-아시안계라는 것과 중국 동남부, 한반도 남부, 일본인들의 유전자 거리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가깝다는 연구 결과는 그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는 우리가 더 연구해봐야 할 곳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창세설화가 존재하는 곳. 그리고 천손신화가 아니라 땅에서 솟아나는 삼성혈 신화가 존재하는 곳.

바닷물에 쫓겨 북상하던 이들이 더 이상 해수의 침수를 받지 않게 됐을 때 그들이 비로소 ‘참세상’이라고 여겼던 곳은 바로 하늘이 아니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었던 땅이었을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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