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라고 말하기 전에
‘극우’라고 말하기 전에
  • 미래한국
  • 승인 2014.09.26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정욱 편집위원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뜻을 알고 나면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한 단어와 표현들이 있다. 얼마 전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 등장한 대사 “빼도 박도 못 한다”, 뉴스 시간에 여자 아나운서들이 태연히 전하는 “보도방 업자들이…” 등등이 그렇다. 몰라서 쓴다. 그래도 이런 건 그저 킥킥 대고 넘어갈 수준이다.

최근 인격 모독을 넘어 ‘인격 살상’에 해당하는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 모골송연 제대로다. 얼마 전 변희재 씨가 종북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골탕을 먹었다. 변 씨가 따로 지어낸 조어도 아니고 통진당 내에서 자기들끼리 비난하려고 동원한 말이었다.

해서 이제는 “종북이닷!” “빨갱이닷!” 이런 건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그럼 종북을 종북이라고 하지 뭐라 말하나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시험 삼아 ‘종북적’이라거나 ‘거의 종북’ 혹은 ‘유사 종북’이라는 표현을 써보기를 권한다.

왼쪽에 대고 날리는 말 펀치가 종북, 빨갱이라면 오른쪽을 향해 던지는 저주의 말 덩어리는 극우(極右)라는 단어다. 극우라. 비난하는 쪽만 쓰는 게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극우의 비판이 있겠지만 당의 정체성을 중도로 옮기겠다”고 발언했다. 극우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같은 당 주호영 정책위 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념을 따지면 극우, 중도, 극좌가 있겠지요 (…)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이념적 좌표가 극우였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보다 한 발 더 나갔다. 어디로 나갔냐면 무지의 영역으로 진출했다.

새누리당마저 無知의 영역으로…

우파와 좌파가 실종되고 제일 끄트머리인 극우와 극좌가 등장했다. ‘말을 뱉다’는 의미의 표현 중 최악이 ‘씨부리다’쯤 되겠다(비속어 사용해서 죄송). 그들은 발언하는 게 아니고 씨부리고 있다.

극좌가 뭔지는 다 알 거다. 스탈린을 대표선수로 하는 게 극좌다. 수천만 명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이즈가 좀 작은 것을 꼽으라면 아사마 산장에서 조직원들 사이의 내부 처형을 자행한 적군파가 극좌였다. 이념은 인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좌는 욕이다. 종북보다 더 심한 게 극좌라는 욕이다. 그럼 극우란 무엇일까. 오른쪽 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 보자.

   
 

사진이라는 평면의 한계를 넘어 폭력의 포스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머리는 박박 밀고 웃통을 까고, 이런 놈들을 극우라고 부른다. 이들은 어떤 짓을 하는가. 역시 말보다 사진이 빠르겠다. 아래 사진을 보자.

폭행 현장 코스프레가 아니다. 개 잡듯이 패 놓고 피해자에게 웃으라 강요한 뒤 촬영한 사진이다. 무슨 얘기냐. 의사의 소견을 물을 필요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히틀러의 나치당이 극우였다. 제 국민, 남의 국민 할 것 없이 전쟁터로 몰아넣어 몰살시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같은 놈들이 극우였다. 그런데 극우라니.

이 지면을 통해 극우라는 단어의 정치적인 의미 같은 걸 길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관심 있는 분은 네이버에서 검색해라. 이해를 돕기 위해 한마디로 줄이면 극단적 민족주의가 극우의 특징이다(쇼비니즘, 징고이즘의 최상급으로 이해하시라). 외국인이라면 자기 나라 벌레보다 못하게 취급한다.

망설이지 말고 고소하라!

지금부터 소생, 극우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빙의된 상태로 발언 하나 해보겠다.

“일본의 조선 점령, 특히 성노예에 대한 보복조치로 가임기를 막론하고 전 일본 여성을 모조리 강간한 뒤 아이를 배면 순혈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발로 차서 유산시켜야 한다.”
어떤가. 쓰면서도 내가 먼저 끔찍하다. 이런 게 극우다. 그런데 극우라니. 대체 생각이 있는 분들인가.
문창극 씨는 극우 소리를 들었다. 이인호 선생도 극우 소리를 듣기 직전이다. 말이란 건 한 번 통용되고 나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간다.

정리해보자. ‘정치적 인간말종 개새끼’를 두 글자로 줄여 극우라고 부른다. 해서 특정인을 가리켜 극우라고 부르는 건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누군가로부터 극우라는 표현을 들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고소해야 한다. 판사가 머뭇거리면 그 판사도 고소해야 한다.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직무유기다.

무식에도 기한이 있다. 기한이 지나면 그때는 무식이 아니라 범죄가 된다. 돈 많은 정당이니 정치 개념·용어의 권위자인 양동안 선생 같은 분 모셔 강연 한 번 듣기를 권한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인터뷰를 보기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 사족이다. 사는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얘네들, 눈치 안 보고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마주치면 눈 똑바로 쳐다본다. 극우가 있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우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밤길에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그런데 극우라니!!!)

 

남정욱 편집위원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