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종말, 루마니아의 경험을 듣다
독재자의 종말, 루마니아의 경험을 듣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10.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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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세계여행32] 칼린 파비안 루마니아 대사

 

김일성의 개인숭배와 주체사상,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에 ‘감명’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20세기 말 최고 수준의 공포정치를 구현했던 루마니아 희대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1987년 12월 그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처형, 루마니아의 유혈 민주주의 혁명은 세계 독재자들에겐 악몽이었고 고통 받는 인민들에겐 희망의 소식이었다.

이러한 루마니아의 경험은 특히 북한 문제와 통일의 숙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주고 있다. 칼린 파비안(Calin Fabian) 주한 루마니아 대사를 만나 공산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과 지난 25년 한-루마니아 관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루마니아(Romania)라는 국가명을 들으면 우선 로마(Roma) 제국을 연상하게 됩니다. 루마니아는 역사와 전통적으로 고대 로마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어떻게 답변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주일 동안이라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웃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현대 루마니아에 해당하는 고대 다키아(Dacia) 지역에 살던 루마니아인들의 조상, 닥(Dac)인들이 200여년간 로마제국과 교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다키아 지방의 역사와 민족은 고대로부터 내려오고 로마의 것보다 더욱 오래된 것이며 로마제국의 통치 시절에도 국가의 절반 이상이 독립 지역으로 남아 있었기에 로마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뿌리는 유럽 남부지역에 있기에 고전 라틴어를 사용하며 그 덕분에 로마 이외의 다른 라틴계열의 주변 국가들로부터 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와 북한이 비슷했던 점, 그리고 다른 점 

- 루마니아 하면 역시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끌어내렸던 1989년 유혈혁명입니다. 루마니아의 경험은 비슷한 시기 민주화 과정을 겪었던 우리 한국과 현재 여전히 공산독재 치하에 있는 북한에 큰 시사점을 줍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또한 간단치 않은 질문이지만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마니아는 동유럽 공산주의 블록에 속해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60년대 초반 이후 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주변의 다른 공산국가들과는 달리, 소련이 독일의 서부 전선과 다른 지역들에 전력을 집중하였기에 루마니아의 영토는 모스크바로부터의 간섭을 크게 받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복잡하고 격렬한 변화의 과정을 야기 시켰습니다.

1987년 정권교체 과정에서 구 공산주의 지배세력과 젊은세대가 주축이 된 민주화 세력 사이에 첨예한 갈등과 충돌로 인해 몇 달간 수많은 유혈 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전역에서 생겨났습니다. 루마니아는 북한의 현 상황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중앙독재체제가 집권하고 있었기에 체제의 잘못을 외부로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패하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들어온 정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쉽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지만 루마니아는 스스로가 만든 체제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989년 당시는 사회의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양분화 시키는 매우 고통스러운 역사적 과정이었습니다. 한편 젊은 사람들에게는 열정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이 풍부함에도 이 움직임에 쉽게 동참하지 못하였지만 젊은 세대가 혁명의 동력인 기관차 같은 역할을 하였고 많은 국민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은 25년전 붕괴했는데 그보다 더 폭력적인 공산독재체제인 북한의 김씨정권은 오늘날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루마니아가 가졌던 큰 이점은 당시 동유럽의 큰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루마니아는 소련이 주도한 공산권의 영향을 덜 받고 독립적 체제를 유지했음에도 외부와 경제적 교역을 활발히 하고 있었기에 구소련이 붕괴되자 국가의 현상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요소들이 존재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요인은 근접 국가를 통한 정보의 유입이었습니다. 루마니아도 북한과 같이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고 국민들의 대내외 여행을 제한했지만 인접 국가인 헝가리 같은 곳으로부터의 소식들이 TV와 라디오 수신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독재정권이 루마니아를 외부로부터 완전하게 고립시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제일 큰 원인입니다.

결국 루마니아가 세계 최고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중이다 등 정부의 거짓 정보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됐습니다. 그 때가 국민들이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한 시점이었습니다. 한편 북한은 여전히 외부의 정보 유입으로부터 보다 완벽하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입니다.

- 한국과 루마니아가 1990년 외교관계를 수립했죠. 양국 관계의 특징과 현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대다수 루마니아 국민들은 근래까지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신문이나 역사 교과서, 혹은 경제교류 등을 통해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대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했지요.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한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루마니아에 대거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본 최초의 컬러 TV 수신기도 Goldstar(금성) 제품이었는데 이러한 한국 공산품을 통해 루마니아 국민들과 매체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들은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류’가 시작된 거지요. 이후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루마니아와 전략적 외교관계를 체결한 나라가 됐습니다. 2008년에 전략적 관계 협약을 맺었고 2년 후인 2010년에는 여러 공동 사업계획을 맺었습니다.

-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발 앞서 루마니아에 진출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아시아 최초의 전략적 외교관계 수립도 그렇구요.

한국 기업들의 역동적인 활동은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겼습니다. 큰 변화를 겪었던 1989년 혁명이 끝난 즉시 소수의 기업들이 루마니아로 진출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출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루마니아 시장의 발전 및 성장 대한 정확한 통찰력도 필요했지만 기다릴 줄 아는 자세 또한 중요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처음 몇 년간 수익을 내지 못했음에도 루마니아 시장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다리면서 꾸준히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300여개의 한국 기업이 루마니아에서 활동 중입니다. 외교적으로는 지금까지 루마니아가 다른 국가들과 수교를 해왔지만 내부의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그 관계마저도 틀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한국과는 꾸준한 관계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 내년이 한-루 양국의 수교 25주년인데 어떤 행사들을 계획중입니까.

한 세기의 첫 분기를 장식하는 기회인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최고위급 인사가 상호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경제적으로는 우리 두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합동 경제위원회를 열고 서울에서 모임을 가져 각국의 회사들이 상호 협력하고 교역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공통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우리가 공동으로 가질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문화적인 교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루마니아 오케스트라 방한 등 여러 문화적 교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라큘라는 법치를 중시했던 14세기 왕"

- 루마니아의 문화적 특징이 궁금합니다. 루마니아 여행객들은 어떤 것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한국과 루마니아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행객들의 말에 따르자면 전통적인 부분에 있어서 한국과 루마니아의 삶의 양식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양상은 고대의 농업활동이나 공예품들에 녹아 있는 ‘자연 친화적’ 사상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는 주변에 다양한 국가와 문화가 있기 때문에 국경 주변의 도시들에서 그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과 관광지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 루마니아 하면 떠오르는 또한가지 ‘문화적’ 요소는 드라큘라의 고향이라는 거죠. 많이 듣는 질문이실 것 같은데요.

네, 이 질문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웃음). 고대 루마니아는 한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남부의 왈라키아(Wallachia), 동북부의 몰바이바(Moldavia), 그리고 서북부의 트랜실베니아(Transylvania) 등 3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4세지 트랜실베니아를 이끌었던 왕의 이름이 바로 드라큘(Dracul)이고 그 뜻이 ‘악마’라고도 하지만 어원은 ‘용(dragon)’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엄한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유럽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루마니아 지방의 경우는 유동 인구가 많았고 교역을 더욱 원활하기 지키기 위해 도로를 사수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왕이 요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격한 방법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지요. 관광 비즈니스로는 드라큘 왕과 관련된 전설들이 나쁘지 않지만 반드시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법치와 정의, 독립, 자유, 복지 등을 위해 싸웠던 드라큘 왕의 역사적 의미가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 파비안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이신지, 한국에 오기 전 경력은 무엇인지요?

루마니아 외교부에서 일한 지 20년이 되었고 그 전에는 지질학과 교수였습니다. 1989년 혁명 이후 공직자가 됐는데 외교적 자원이 없었던 루마니아의 환경 덕분에 엔지니어부터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공직에 진출했습니다. 처음엔 특별 교육을 받아야 했지요.

3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 된 것 같습니다. 전공도 도움이 되었는데 지질학이 돌과 흙 등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하듯 외교도 여러 개인과 집단을 분석하고 종합한다는 점에서 비슷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질학은 과거를 연구하는데 외교는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 주한 대사로서 어떤 어젠다, 목표들을 갖고 계신가요.

일단 우리 두 나라가 공동의 목표를 찾고 상호 협력 관계를 더욱 더 깊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한반도의 균형개발은 루마니아에서 추구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 우리 루마니아의 과거 정권교체의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독재정권 이후 사회적 충격 대비해야”

- 공산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바로 한반도 반쪽 북한이 안고 있는 절체절명의 숙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 조언을 바랍니다.

한국인들은 통일 이후 사회적, 정치적 비용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선 북한 정권의 몰락 이후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충격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계획을 세우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준비를 해두어야 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은 민간 구성원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여 이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강력한 중앙집권 독재체제하에 있는 북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업을 세우고 자유시장에 스스로 나서고 자신을 위한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는 공짜라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제일 좋은 자세는 그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으로는 민주주의를 체험해본 탈북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은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접근 방법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박종하 인턴기자 saintjoepark@gmail.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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