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향은 덤이다 - 성남 모란시장
계절의 향은 덤이다 - 성남 모란시장
  • 미래한국
  • 승인 2003.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우익의 국토기행 (19)
닷새에 하루 성남에는 재미있는 장이 선다. 끝자리가 4나 9로 끝나는 날이면 시외버스 터미널 앞길은 차가 밀리고 사람들이 북적댄다. 뒷짐진 노인네, 딸인지 며느린지 손을 꼭 잡고 이끄는 중년의 아낙, 유모차를 끄는 젊은 내외, 하나같이 편한 차림에 느릿한 걸음걸이다. 이들을 따라 알록달록 차양이 쳐진 장터로 들어서노라니, 장판의 왁자한 소리에 기분이 슬슬 뜬다. 잘하면 휘파람이라도 불만하다.모란시장. 이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봄을 먼저 데려오는 것만은 사실이다. 잔가지를 쳐내어 줄기만 덜렁 남은 포도나무와 장미 묘목이 화훼전을 연다. 철쭉, 연산홍, 홍매화, 감나무, 대추나무... 한란, 양란이 채 화분에 심어지지도 않은 채 쌓였고, 리어카에 담긴 아마릴리스 어린 싹이 앙증스럽다. 난전에 벌여 놓은 곡물전은 온갖 곡식을 담은 자루와 ‘다라이’로 그득하다. 여주, 이천쌀은 여기서도 흔하고 DMZ쌀, 오리쌀에 무공해 쌀이 있고, 영양쌀, 검정쌀, 녹색쌀에 약쌀까지, 이른바 차별화된 쌀들이 수북수북 담겼다. 그냥 찹쌀도 있고 현미찹쌀에 찰보리, 찰수수, 차조도 있다. 콩자루의 딱지도 비뚤비뚤 쓴 글씨만큼이나 재미있다. 백태, 흑태, 왕태, 서리태, 쥐눈이콩, 울타리콩, 신토불이콩, 메주콩, 콩나물콩.. 눈에 띄는 변화는 ‘무공해’외에 국산 또는 원산지를 따로 표시한 것이다. 철에 안 맞게 ‘햇콩’, ‘햇팥’ 등 햇것임을 강조한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어물전에는 건어물이 풍성하다. 명태, 오징어, 멸치, 문어, 가오리와 대구포, 김, 미역에 다시마… 냉장시설이 없었던 옛날부터 건어물과 젓갈은 5일장의 주력 품목이었다. 며느리 몸이 무거워지면 장에 가서 ‘울산각’을 사다 놓고, 김장 외에 겨울 갈무리로는 소금절인 간잽이와 젓갈이었다. 소금은 지금 사두어 포대째로 간수를 빼야 쓴맛이 가신단다. 바다 생선이 많지 않은 대신, 살아있는 민물고기가 눈길을 끈다. 잉어가 귀족이고 메기와 가물치가 중신이라면 붕어, 모래무지는 지방관이다. 자꾸만 기어 나오는 자라란 놈은 여기가 미꾸라지 판인걸 모르나? 지천으로 쌓아 놓은 제주감귤과 충주능금이 곱다. 상주 곶감 때깔이 좋고, 진영단감은 겨울을 나고도 싱싱하다. 미끈한 오렌지 앞줄에 큼직한 한라봉이 보기에도 좋다. 밀려들어오는 수입 과일에 얼마나 버틸까? 채소전엔 봄나물이 흐드러졌다. 냉이, 쑥, 씀바귀, 돌미나리는 일찍도 나왔구나. 이름도 고소한 봄동은 새큼한 양념에 무쳐 놓으면 봄타는 노인네 입맛을 되찾아줄 것도 같다.줄 맞추어 펴놓은 씨앗 봉투들을 보고 시골집 텃밭에 상추 갈 생각을 해 본다. 호박, 고추, 가지, 오이와 방울토마토도 모종을 직접 내어봐? 그 시간을 어디서 잘라내지? 장돌뱅이의 여유라도 좀 빌리고 싶지만, 이렇게 쫓기듯 사는 건 일 때문일까, 마음 탓일까? 횡성 씨감자 옆에 널린 저 알토란 역시 씨앗으로 심을 것이겠지. 고구마는 언제쯤 순을 내어야 하나? 그릇 전엔 양은 냄비, 스텐리스 양푼, 던져도 깨지지 않는 접시들에다 플라스틱 ‘다라이’, 목기, 생활자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제품이 널려 있다. 밥솥과 프라이팬 같은 전기 제품도 구색 갖추기로 끼어 있고. 혼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릇 전 옆에는 언제나 이불이 수북이 쌓여 있다.포목상은 줄었지만 옷가게는 여전히 많다. 세일 딱지가 붙은 신사정장은 내 눈에도 유행이 지난 것 같은데 그만큼 값도 싸다. 저놈의 물 바랜 청바지와 영문약자를 큼직하게 쓴 티셔츠들이 결국 여기까지 점령했구나. 아뿔싸! 높다랗게 걸어 놓아 바람에 펄럭이는 저것은 여인네 속고쟁이가 아닌가? 저만치 ‘숙녀용 3천원’이라고 써 붙인 것은 같은 속옷이라도 양장용이란다. 신발과 양말은 정말 싸 보인다. 내가 할 걱정이 아니지만, 원가가 나올까?확성기 가락 따라 어릿광대가 춤을 추고 있다. 뽕짝 조의 흘러간 가요들을 시골 장터에서 듣고 섰으니, 처연한 생각까지 든다. 일 속에 빠져 세월 가는 줄도 몰랐더니, 어느새 청산대상이라니! 5공6공이라고? “어, 어?”하는 사이 고약한 덤터기까지 뒤집어쓰지 않았나! 골목 안쪽에 또 다른 마이크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니, 남정네들이 삥 둘러선 가운데 한 사내가 뭘 치켜들고 입심 좋게 떠들어 대고 있다. 아! 약장수로구나. “그게 다, 속이 허해서 그렁겨, 기죽지 말어!” 이 친구야, 누군 기죽고 싶은 줄 알아? 세상이 주는 병은 약으로 고치는 게 아녀. 담벼락 밑 짐차들 사이에도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뭘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야바위꾼들이 아니면 내기장기 판일 게다. 안 보고 안 끼는 게 상책이다. 고추전이 꽤 넓다. 성남, 분당과 인근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까지 음식점 주인이나 알뜰한 주부들이 어울려 와서 자루째 사 가지고 방앗간에서 빻아간단다. 햇볕에 말린 ‘?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