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폭행사건, ‘행복’한 변호사들을 ‘행동’하게 만들다
대리기사 폭행사건, ‘행복’한 변호사들을 ‘행동’하게 만들다
  • 정용승
  • 승인 2014.10.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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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甲들의 횡포로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乙들의 고통과 연대하고, 피해를 구제하고, 乙 살리기 입법을 추진하고, 우리 사회 전반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기 위함. 모두가 인간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의 대우와 생존권, 당연히 지녀야 할 사람다움을 되돌려주기 위함.’

▲ 이번 사건의 화두로 떠오른 새정지민주연합의 비례대표 김현 의원/연합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 ‘을지로위원회’의 구성 취지다. 이른바 을(乙)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새정치의 의지이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의 취지와 의도는 환영할 만하다. 당시 사회 전반적인 불공정 관행에 대해 국민들의 피로도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굳이 포스코 ‘라면 상무’ 사건 등을 언급하지 않아도 ‘을(乙)’이라는 용어가 사회적 용어로 떠오른 것에는 불공정 관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문제의식이 내포돼 있었다.

문제는 과연 새정치 을지로위원회가 주장하는 을(乙)을 위한 행보를 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지금 이 질문을 국민에게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할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아니, 일각에서는 을지로위원회가 아닌 ‘갑질위원회’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비치고 있다. 최근 새정치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대한 행동을 보면 말이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은 세월호 이슈를 끊어버릴 만큼 결정적인 분수령이 됐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지난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은 제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세월호 사건은 사회적 이슈가 아닌 정치적 이슈가 됐고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유병언 일가는 스리슬쩍 이슈의 바깥으로 비켜갔다.

乙 위한다는 그들의 ‘甲질’

광화문에 천막을 세우고 그들이 주장하는 단식(?)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목소리만 정치권에 맴돌았고 제1야당인 새정치는 유가족이 바라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아니면 다른 법안 통과도 없다는 막무가내식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꽉 막힌 정국에서 국민들은 극심한 피로를 느꼈고 “이제 생활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은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지난 9월 17일 새정치의 김현 의원과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 등 유가족 4명이 함께 여의도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자정이 넘은 0시 40분 쯤 자리를 파하고 김 의원은 대리기사를 불렀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김 의원이 30여분 정도를 지체하자 기다리던 대리기사 이모 씨가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국회의원임을 밝히자 이모 씨는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대리기사에게 “예의를 지키라”며 대리기사를 꾸짖었고 이를 지켜보던 행인이 인터넷에 명함을 찍어 올리겠다고 말하자, 김 의원의 “명함 뺏어”라는 말과 함께 유가족들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목격자 2명도 상황을 말리다 같이 폭행을 당했다.

▲ 김병권 전 세월호가족대책위윈회 위원장,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 한상철 전 대외협력분과 부위원장(왼쪽부터)/연합

국회의원 명함 건네며 “예의를 지키라”

목격자의 신고를 통해 112에 사건 신고가 접수됐지만 김 의원이 누군가와 수상한 통화를 한 후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흔히 출동하는 순찰차가 아닌 ‘경찰서 이송용’ 스타렉스 차량이었다. 피해자와 목격자 3명은 차에 태워져 지구대가 아닌 경찰서로 바로 향했고 새벽 1시경부터 약 3시간 동안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 의원과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은 현장에서 귀가조치됐다.

더 경악할 만한 사실은 폭행 가해자 당사자들이 사건 발생 직후 여의도성모병원으로 향해 입원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이 입원할 만한 부상이 아니라고 하자 폭언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 후 그들은 1시간20여분 거리의 안산한도병원으로 이동해 입원을 했고, 그 병원에서도 간호사에게 험담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튿날인 18일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당사자들은 쌍방 폭행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은 이빨 6개가 부러졌다는 주장을 했으며 김병권 전 위원장은 팔이 골절돼 깁스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후 김 전 수석부위원장이 주장한 부러진 치아는 보철치아인 것으로 드러났고 김 전 위원장은 손가락뼈에 금이 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모든 정황이 가해자인 김 의원과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주장이 속속 나왔다. 안행위 소속인 김 의원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김 의원은 아무런 사과도 없었고 새정치도 그녀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후에 김 의원이 사과를 했고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당 차원의 사과를 했지만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정작 이 사건의 피해자인 대리기사 이모 씨는 병원비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을위한변호사모임(이하 행변)이 무료 변론을 자처했다. 대리기사를 위한 모금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도 대리기사를 대변하고 있다.

등장한 행변, 말없는 민변

이 사건은 그동안 을지로위원회가 입이 닳도록 말해 왔던 ‘슈퍼갑의 횡포’의 전형적인 사건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 누가 생각해도 을(乙)의 위치에 있는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이다.

정작 을지로위원회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리기사가 사회적 을의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이런 사건에서 빠지지 않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해야 한다는 보도만 있을 뿐이다.

특정 세력을 위한 단체라서 그런 것일까. 혹은 대리기사를 변호하는 것은 민주사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행변과 민변의 행보는 이 지점에서 분명한 ‘색깔’의 차이를 노출시키고 있다.

다음은 행변 소속 차기환 변호사(본지 편집위원)와의 일문일답.

- 아직까지 김현 의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부족하다는 여론입니다. 만약 김 의원이 대리기사 이모 씨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면 합의할 용의가 있나요?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란 무엇인가요?

김 의원이 대리기사가 콜을 취소하고 돌아가려는 것을 못 가게 막은 것, 명함 빼앗으라는 말을 발단으로 대책위원회 간부들의 폭행이 시작된 것 등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한다면 이모 씨는 사과를 받을 것이라는 입장이에요. 굳이 사과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죠. 현재 이모 씨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지경인데 억지로 사건을 길게 끌어도 좋을 건 없어요.

- 김 의원이 이러한 모든 사실 관계를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본인의 잘못을 절대 시인하지 않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광재 전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병역기피 의혹을 끝까지 부인한 적 있죠. 또 본인이 운동권은 아니지만 주변 세력이 386세대인 문재인 의원도 2013년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NLL 대화록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깨끗하게 시인한 적이 없어요. 현 사건도 일반적인 정치인들이라면 CCTV에 찍힌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는 것이 정상이죠. 예를 들어 김병권 전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명함을 받아간 행인을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앞에 김 의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김 의원 본인은 때리는 것을 전혀 못 봤다고 진술하고 있죠. 이는 운동권 특유의 DNA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뜨거운 이슈였던 만큼 거의 마무리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행변의 입장을 정리해 주시죠.

이 사건의 원인은 김 의원이라고 봅니다. 대리가사가 콜센터에 콜을 취소하고 새로운 콜을 받기 위한 전화를 해서 돌아가려 했으나 김 의원이 고함을 지르고 방해해 10분 이상 취소를 받지 못하도록 불가능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대리기사에게 소속을 밝혀라, 명함을 내놓아라, 신분증 내 놓아라 등 몰지각한 언행을 했어요. 지나가던 행인이 보다 못해서 “국회의원이 이러면 안 된다. 명함 트윗에 올리면 된다”고 하자 그 말에 놀라서 명함을 빼앗으며 폭행이 시작된 거죠. 물론 김 의원이 직접적인 폭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유예 판결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동 폭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차기환 변호사(본지 편집위원)

“김현 의원 행태는 운동권의 전형적 문화”

- 행변이라는 단체는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됐는데요.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9월 초부터 직접 아는 변호사들 혹은 지인들에게 소개 받은 변호사들과 모여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보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논의를 해왔어요. 어떤 강령과 규약을 만들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에 본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행변은 개인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권리 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가치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물론 아직은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단계예요. 행변은 젊은 변호사들의 단체를 목표로 하고 있고 또 단순한 성명서를 내는 것을 넘어 실제 법률 활동을 하는 단체를 만들고자 해요. 이외에도 자매단체로 교수들 모임도 있었으면 좋겠고, 상위 그룹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률가 연대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죠.

- 모금운동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는데요. 앞으로의 행변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아직 준비단계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필요해요. 많은 동료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행변의 정식 명칭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변호사 모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행동하는 변호사 모임’이라고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가능하면 천천히 뜻이 있는 동지들을 많이 모아서 내실 있는 변호사 단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단체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정리/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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