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화불량 홍콩
중국의 소화불량 홍콩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0.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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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支那蝗蟲(지나황충)
 
‘중국 메뚜기떼’라는 이 표현은 홍콩으로 물밀 듯 들어오는 중국 대륙인들을 비하하는 홍콩인들의 말이다. 지나(支那)라는 말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중국을 얕잡아 불렀던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홍콩인들이 대륙 중국인들을 ‘지나’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인과 홍콩인을 ‘같은 중국사람’으로 보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홍콩의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뿌려진 전단지들의 내용을 보면 홍콩인들이 자신을 대륙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낸다.

   
 

“학우 여러분, 우리 언어인 광동말로 수업 받을 권리를 지켜냅시다!”
“광동말은 내 언어입니다. 광동말은 사투리가 아닙니다!”
“외국인 여러분! 제발 ‘중국 설날’이라고 하지 마세요. 음력 설날입니다.”

홍콩(香港)은 표준중국어, 즉 북경어로는 샹-강으로 불리고 광동어로는 흥-꽁이라 발음된다. 북경어와 광동어는 5%도 일치하지 않는다. 방언 관계가 아니라 아예 외국어나 다름없다. 그리고 홍콩영화들은 대개 광동어로 제작된다. 북경어를 사용하는 중국인들은 그러한 광동어를 조화(鳥話)라고 불렀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다는 은근한 비하다. 동시에 북방 중국인들은 광동인들을 경계해 왔다.

‘하늘이 무서우랴, 땅이 무서우랴, 광동사람 광동말 하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중국 격언은 과거 북방 중국인들이 오(吳), 월(越)과 같은 남방 광동인들의 용맹성과 뛰어난 상술에 대한 트라우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어떤 것

“광동인들은 광동음식을 먹고 광동말을 하며 광동식 옷과 머리를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죠. 한자도 광동문화에서는 간자체가 아니라 전자체로 씁니다. 그런 한자는 원래 북경어가 아니라 광동어를 적은 거에요.”

홍콩에서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으로 유학을 온 어느 홍콩 학생의 말이다.

이번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단지 직선제만을 요구하는 정치적 문제로 보는 시각들은 순진하다. 그 배경에는 보다 깊숙한 대륙 중국인들과 광동 홍콩인들 사이에 내재한 문화적 단층이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홍콩은 영국의 조차지를 통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자유와 민주’라는 이념적 가치로 자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8월 중국의 최고 의정기구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는 2017년 홍콩의 직선제를 보장하는 홍콩의 기본법(헌법)이 무시되는 결정이 있었다. 기본법에 명시된 2017년 행정 장관 직선제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추천하는 친중인사 후보들에 투표하는 간선제로 결의했던 것.

또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법원 판사들도 친중인사들로 임명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홍콩의 사법체계는 영국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그 공정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조치는 홍콩인들의 불만을 불러왔다. 2047년 중국이 홍콩을 통합함에 있어 홍콩을 사회주의 도시로 만들려 한다는 불신 때문이다.

홍콩 기본법은 중국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을 때 영국 측에 그 준수를 약속한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를 통해 대만과 홍콩, 마카오의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이 방안에 대해 홍콩인들은 영국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손으로 통치자를 선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전인대의 홍콩 행정 장관 간접선거 결정으로 그 약속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 속에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일국양제는 등소평의 전략이었다. 1984년 중국이 영국과 홍콩 반환 협상을 할 때 등소평은 2017년 홍콩에서 직선제를 실시하는 때와 중국이 홍콩을 하나로 통합하는 2047년에도 홍콩에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이때에도 서로 상이한 체제로 통합이 어렵다면 50년을 더 기다리는 조건을 제시했다.

중국 문제에 정통한 정치학자들은 당시 등소평이 홍콩의 직선제가 이뤄지는 2017년경 이미 중국에 사회주의가 사라져 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는 해석을 내린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로 홍콩인들은 사회주의 중국이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무시된 약속, 그 분노의 폭발

그러한 의심은 중국의 상하이 개발과 타이완 교역 확대로 더 증폭됐다. 홍콩인들이 보기에 중국은 상해를 무역과 금융도시로 거점육성하고 타이완을 통해 직접투자교역을 늘림으로써 홍콩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홍콩은 중국에 그동안 ‘단물만 빨리고 버려지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홍콩인들 사이에 팽배해졌다.

실제로 홍콩은 대륙 중국인들의 대거 유입으로 치솟는 집값, 중국 정부의 개입 노골화, 대기오염 등의 문제로 인해 가장 경쟁력이 높았던 금융 허브의 매력을 점점 잃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연 0.5% 수준이었지만 요즘에는 3.4% 수준이라는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홍콩 반환 이후 중국 공산당은 홍콩을 유일한 자본주의 접점 창구로 활용해 왔다. 마치 소련의 자본주의 위성국 핀란드처럼 중국은 홍콩을 통해 투자유치와 무역을 해왔던 것. 그 규모는 중국 경제의 약 7%를 차지했다. 결코 작지 않은 경제권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 공산당에게 자유경제도시로서 홍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국제 금융시장에 공개할 수 있는 상하이 자본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울러 대만과의 경제협력을 통한 해외 직접투자의 루트도 충분히 확장시켜 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중국 경제의 홍콩 비중은 2.7%에 불과하다. 당연히 홍콩으로서는 토사구팽의 불안감과 분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중국 본토에서는 홍콩인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홍콩 여행을 하지 말자는 보이코트 운동이 일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단지들도 뿌려졌다.

“問: 대륙인(중국인)들이 홍콩에 다시 여행하러 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홍콩의 상점들에 있는 물건들을 다시는 사지 않는다면, 홍콩은 무슨 수로 살아갈 것인가?

答: 홍콩은 다시 국제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아 시민들의 생활에도 안정이 되돌아올 것이고, 상업 활동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전단지들의 내용이 모든 홍콩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홍콩인들은 여전히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민주화 시위에서 홍콩인들이 느끼는 반중 감정은 단순한 중국의 정치적 배신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대륙 중국인들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과 함께 경제적 불안이 더 크다. 그렇기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차라리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중국에서 독립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으로서는 ‘역린’이 건드려진 것이다.
 

‘역린’ 자극당한 중국의 속내는?

지난 3일 중국 인민일보는 미국 정치평론가 팡옌과의 인터뷰를 통해 “센트럴 점령 운동(홍콩 민주화 시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 등 외세 지원 아래 홍콩이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 실세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걸음 나아가 시위대 배후에 정치적 불순세력이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홍콩과 타이완, 신장 자치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중국 시위 배후에는 검은 세력인 미국이 있다”며 “미국은 중국이 미국 자신들과의 대결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 하려는 야욕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이 홍콩 시위 배경에 미국을 지목하고 나선 것이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워싱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헤리티지재단은 영국과 중국 간에 홍콩 반환 협약 시기부터 타이완 문제를 매개로 미국의 개입을 처음부터 주장해 왔다.

지난 7월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은 홍콩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주장의 배경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전 세계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세계 경찰’론이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을 시험대에 올린 것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홍콩 반환 이후 일명 ‘홍콩 이행 프로젝트(Hong Kong Transition Project)’를 통해 홍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1997년부터 홍콩 시민의 투표에 관한 정치적 태도를 3개월을 주기로 관찰해 정치적 쟁점과 홍콩인들의 심리적 태도를 분석, 미 국무부에 전략적 자료로 전달하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9월 4일 전보에 따르면 ‘홍콩 이행 프로젝트’의 예산은 미 국무부 소속 미국국제개발처(USAID)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2012년 USAID 홍콩 예산은 75만4552달러(약 8억원), 2010년에는 159만1547달러(약 17억원)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응하는 중국의 태도를 비판적 입장에서 보도한다. 특히 중국이 홍콩 시위에 관한 보도 통제를 가했던 9월 일본 교도통신은 이 문제를 중국 인사의 증언을 통해 최초로 보도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지도부가 홍콩 시위로 인한 중국내 정치적 영향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또한 중국 매체들이 홍콩의 시위를 ‘위법한 집회’로 규정하고 참가 학생의 목소리를 일절 전하고 있지 않지만 인권파 변호사가 최근 50명 넘게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에 참여하는 등 중국에서도 찬성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국제 여론을 의식해 천안문사태 때와는 달리 홍콩 민주화 시위를 분열책으로 다뤘다. 소위 ‘파란 리본’이라는 친중국인 시위대를 통해 대항 전략을 편 것이다. 여기에 홍콩 민주화 시위로 경제적 손실이 3500억 홍콩달러(한화 48조원)에 달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여기에는 상인들이 먼저 동요했다.

   
 

‘하나’로 꿰뚫기엔 너무도 커다란 중국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중국 공산당의 분열 전략에 의해 동력을 잃어가는 듯했으나 홍콩 행정 장관 렁춘잉의 호주 기업 자금 미신고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동력이 붙었다. 홍콩 행정 장관에 대한 ‘직선제 불가’라는 중국 공산당의 입장이 행정 장관의 도덕성 문제로 코너에 몰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홍콩 정부와 학생 시위대 간의 대화는 무산됐다.

한때 홍콩 시위대에 대한 발포도 검토했다고 전해지는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여간 곤란한 문제가 아니다. 호주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홍콩 민주화 시위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직선제 요구 속에 감춰진 홍콩인들의 정체성 문제와 중국 문화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는 시진핑 지도부가 홍콩에 직선제를 허락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홍콩인들에게 중국이란 바로 북경이 아니라 광동이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면 그 주역은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 내에 존재하는 ‘문화적 단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단층은 중국 곳곳에 산재한다. 티베트가 그렇고 내몽고가 그러하며 신장의 위구르와 동북 3성의 조선족도 본질적으로는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역시 타이완이다. 타이완은 홍콩, 상하이와 연대감이 강하다. 특히 홍콩과는 동병상련의 입장마저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자유와 민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이념적 연대가 튼튼하다는 뜻. 상하이 역시 북경어와 다른 상하이어를 사용한다. 상하이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개인주의가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다만 이 상이한 문화적 단층지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이라는 이해관계에 맞물려 그 갈등의 인자들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중국 공산당이 자신들이 약속한 홍콩에 대한 직선제를 포기하고 사법체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유는 일국양제라는 방식으로 홍콩이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치의 본질이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면 홍콩은 중국에게 동지가 아닌 정적(政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적은 말살하는 것이 중국통치의 기본철학이다.

흥미로운 것은 홍콩과 베트남이다. 신화통신 직영 신화출판사가 발간한 ‘香港의 역사’에는 베트남에서 향나무를 수입하던 선박이 쉬어가던 장소라서 香港(향항:홍콩)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베트남과 홍콩의 광동인들은 오래 전부터 많은 교류가 있어왔다. 광동어를 백월(白越)어라고 부르는 것은 베트남과 홍콩의 문화적 기층에 어떤 연속층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을 상대로 한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베트남은 명나라와 청 제국에 의해 혹독하게 다뤄졌지만 중국과 맞서 끝내 이를 물리쳤다.

홍콩과 싱가포르 간에도 문화적 연속층이 존재한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중국인들은 이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사회주의 중국인들보다는 홍콩인들과 친숙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점과 양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중국어로서 광동어가 싱가포르의 3위권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홍콩인들의 연속층을 이어줄 수 있는 주체는 역시 미국과 일본이다. 해양세력으로서 미국과 일본은 베트남, 타이완, 싱가포르와 친숙하다. 이미 이들 국가에 막대한 투자도 돼 있다. 그런 점에서 홍콩은 미-일의 대륙 전진기지라는 지정학적 가치를 갖는다.

‘중국이 분열해야 홍콩이 산다.’ (中國分裂, 香港重生)
홍콩 시위 현장에 뿌려진 한 전단지의 주장은 어쩌면 홍콩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속내는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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