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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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4.10.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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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맹자
   
 

흔히 유교를 ‘공맹(孔孟)의 도(道)’라 일컫는다. 그만큼 맹자는 공자의 가장 충실한 제자다. 공자가 무질서한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仁)과 서(恕)와 함께 예(禮)의 실천을 특별하게 더 역설했지만, 맹자는 인의(仁義)와 함께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강조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맹자는 인(仁)을 주장한 공자를 계승하면서 의(義)를 추가로 부각시켰다. 양혜왕이 그를 처음 만나 “장차 무엇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묻자 “하필 이로운 것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반박한 데 그의 핵심 철학이 드러난다.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대한 역설이 ‘맹자’의 전편에 거듭된다.

맹자의 왕도정치의 방법은 무엇인가? 맹자는 제선왕이 자신에게 병통이 있어 왕도정치를 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회피하려 하자, 용기를 좋아하는 병통에는 세상을 평안케 하는 진정한 용기를, 즐거움을 탐하는 병통에는 백성과 함께 나누는 진정한 즐거움을 권고한다. 곧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주문한 것이다.

맹자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의 혼란한 상황에서 제후들이 땅과 백성을 늘리는 데 몰두하는 패권적 행태를 질타했다. 나라의 크기가 왕업(王業)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심은 곧 천심(天心)이기 때문이다. 요순(堯舜)의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인의의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맹자는 왕권에 대해 혁신적인 발상을 하기도 했다. “임금이 큰 허물이 있을 때 간하고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자리를 바꿉니다”라며 귀척(貴戚)의 경(卿)의 입장을 제기했다. 즉 나라 정치에 공동의 책임이 있는 척실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의 실정은 왕의 척실 중에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맹자의 이런 기개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국가가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벼운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어야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어야 대부(大夫)가 된다”는 설파로 나아간다. 사생취의(捨生取義)의 기상이 느껴진다.

인의와 왕도정치를 주장한 맹자의 철학은 당시 제후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제후들이 ‘공맹의 도’를 겉으로 내세워 도덕정치를 하는 양 포장하면서도 실제의 통치에 유효한 법가 철학에 더 매료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에서 수용되지 못했던 것이 공맹의 인의철학의 한계였다. 유교의 가르침이 개인적 윤리철학으로서 더없이 훌륭한 가치체계를 제공했지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가를 보위하는 생존전략으로서는 미흡했던 것이다.

어떻든 맹자는 도덕정치를 통해 이상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인의(仁義)와 도덕이 쇠락해진 현대 사회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일깨워주는 맹자의 철학은 여전히 수양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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