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 희망의 손을 출력하다
3D프린터 희망의 손을 출력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10.24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 버지니아주 헌돈(Herndon)에 사는 9살의 데이비드는 태어나면서부터 왼손이 없다. 정확히 왼쪽 팔꿈치에서 아래로 5센티미터까지만 있고 왼쪽 손목과 손이 없다. 데이비드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있다.

“너, 손이 어떻게 된 거니?(What happened to your hand?)”

그러면서 데이비드는 학교에 가거나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왼팔을 뒤로 숨기는 버릇이 생겼고 집에 와서는 부모들에게 자기도 왼손이 있으면 좋겠다고 투정을 부린다. 데이비드와 같이 손이나 손가락, 발, 다리가 없는 미국인들을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팔, 다리를 절단한 미군들이 인공 팔, 인공 다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병원에서는 이들에게 인공 손과 다리를 제작해주고 있지만 비용이 수만 달러에 달하고 일반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미국인 가정에서는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데이비드와 같은 상태로 태어났거나 어린 나이에 사고로 손발이 잃은 어린이들은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인공 손과 발을 계속 만들어줄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 9월 28일 데이비드의 가정은 메릴랜드 볼티모어에 소재한 미국의 유명한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이 컨퍼런스는 데이비드처럼 태어나면서 손이나 손가락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3D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손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주는 전국 규모의 첫 행사였다.


‘인공 손 제작’ 美 전역으로 확산

미국에서는 2011년부터 3D프린터를 통해 인공 손이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D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 이후 등장한 차세대 프린터로 얇은 플라스틱 팔라멘트를 녹인 후 이를 분사구를 통해 한 층 한 층 쌓아가면서 물체를 입체적으로 프린트한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이 3D프린터는 건축, 산업디자인, 자동차, 항공, 군사, 치과, 보석 등에서 사용돼 왔는데 값이 평균 2000달러까지 낮아지면서 일반 미국인들 가운데 애호가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1년 메사추세츠에서 손가락 없이 태어난 5살 아들을 위해 한 아버지가 3D프린터로 인공 손을 만든 것이 유튜브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3D프린터를 통한 인공 손 제작은 미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3D프린터를 통해 인공 손을 ‘프린트’하는 것은 무엇보다 비용이 50~300달러 정도 밖에 들지 않고 제작 시간이 빠르며 3D프린터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에 따라 3D프린터를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손가락, 손 없이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인공 손을 만들어주는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E-Nabling the future라는 비영리 네트워크(www.enablingthefuture.org)를 통해 이 자원봉사활동은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버지니아의 한 과학 동호회에서는 ‘3D프린터로 손이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인공 손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소개하자 하루만에 40명이 참여하겠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일부 대학과 재활 병원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이 자원봉사자들, 의사, 인공 손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와 그 가족을 위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3D 컴퓨터로 제작해 보내온 인공 손을 어린이와 그 가족이 직접 조립하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도 자신의 왼팔 팔꿈치 크기에 맞는 인공 손을 무료로 받아서 테이블에서 제작하기 시작했다. 설명서와 함께 받은 인공 손은 장난감 같았다. 나사, 끈, 벨크로, 3D프린터로 제작한 플라스틱 손가락과 손 등이 재료의 전부였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데이비드는 인공 손을 만들어갔다. 플라스틱 손가락을 플라스틱 손등에 나사로 끼우고 이를 끈으로 연결한 후 안쪽으로 푹신한 패드를 붙였다. 끈으로 손가락 하나하나를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른 테이블의 다른 아이들처럼 데이비드는 열심히 만들어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왼손에 물건을 잡은 순간

앨라배마주 오번에서 온 7살의 마이클은 왼쪽 손가락이 없다. 마이클은 엄마 멜리나와 함께 자신의 손목에 맞는 인공손을 만들었다. 데이비드처럼 왼쪽 팔꿈치까지만 있던 메릴랜드에 온 오스틴도 아버지와 함께 인공 손을 조립했다.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을 보면서 위로가 됐다는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손을 만들어갔다. 인공 손의 원리는 간단하다. 손목이나 팔꿈치를 인공 손 안에 넣고 이를 앞뒤로 움직이면 인공 손가락이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물건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공 손 안쪽으로 벨크로를 붙여 손목이나 팔꿈치를 붙잡아주고 있다. 약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데이비드는 자신의 인공 손 조립을 마쳤다. 인공 손에 자신의 왼쪽 팔꿈치를 넣은 후 안쪽으로 굽혔다. 인공 손가락이 쥐어졌다. 팔꿈치를 다시 펴니 인공 손가락들은 펴졌다. 성공이었다. 아버지는 데이비드에게 테이블에 위에 있던 빈 캔을 인공 손으로 집어보라고 했다.

 

데이비드는 팔꿈치를 굽혔고 인공 손가락은 빈 캔을 집어 올렸다. 데이비드가 태어나 처음으로 왼손으로 물건을 집는 순간이었다. 이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데이비드는 웃으며 “좋아요!”(Feel better!)라고 말했다. 비슷한 탄성이 멜리나에게서도 나왔다. 마이클이 자신이 조립한 인공 왼손을 쥐면서 물건을 잡자 그녀는 환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멜리나는 “내가 마이클에게 줄 수 없었던 손가락을 줄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3D프린터로 제작하는 인공 손은 새로운 모형이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손가락이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손목으로 움직이는 인공 손이 많았지만 데이비드처럼 팔꿈치만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중간에 긴 막대기를 넣는 등의 모형도 나오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모형의 제작법과 조립법을 웹사이트에 무료로 올려놓고 있어 누구든지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3D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이날 만든 인공 손과는 별도로 존스홉킨스병원팀으로부터 중간에 긴 막대기로 연결된 인공 손을 제작받기로 했다. 없던 왼손이 2개나 생기게 된 것이다.


워싱턴=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