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어디까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통일, 어디까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 미래한국
  • 승인 2014.10.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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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 사회에서도 통일이 적잖은 관심사라는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듣곤 한다. 현장에서 여론을 청취하는 여러 시민단체들로부터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전해들을 수 있고, 실제 통일이나 북한인권과 관련한 여러 세미나나 컨퍼런스에서 대학생들의 얼굴을 예전보다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다.

과거 북한인권이라는 단어를 좌우, 진보-보수의 사상적 괴리라는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던 것에서, 이제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한때나마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른바 ‘우리가 북한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상당히 낯설고 촌스럽게 느껴지게 됐다. 물론 김정은이라는 다소 코믹하고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키우는 큰 양분이 됐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겠다.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바로 통일에 대한 기대론이다. 최근 한 대학생은 필자에게 이런 분석을 피력한 바 있다. 워낙 취업이 어렵고, 이렇다 할 경제성장이나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 어쩌면 통일이 마지막 남은 ‘카드’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은 미미한 변화일지 모르겠으나, 아주 조금씩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한번쯤 마음속에 그려보는 그런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카드’로서의 통일?

하지만 필자는 본 글에서 한번 어깃장을 놓아 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는 적극적인 ‘흡수통일론자’에 해당되며,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 제3조를 그 누구보다도 지지한다. 그런 필자가 굳이 이 글에서 이른바 ‘통일반대론’을 한번 펼쳐보려고 하는 것은,

여전히 자유민주 흡수통일이라는 것이 보수세력 내부에서는 절대로 반박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절대명제로 자리잡아버렸고 그 배경에는 북한의 적화통일노선이나 혹은 국내 좌파세력의 이른바 ‘연방제 통일론’을 배격하기 위한 당위적 차원의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전략적 선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통일 그 자체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보다는 ‘논쟁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왔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특성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는 좌파의 통일론과 그 성격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 서슬 퍼런 군사정부에 저항하던 민주화세력이 대중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출구가 바로 ‘민족통일’이라는 개념이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반미는 물론 주체사상까지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좌파의 통일론은 그야말로 원칙도, 보편적 가치도 반영돼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우리민족끼리” 밖에 제시할 수 없는 초라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배경에는 무엇인가에 대한 저항의식에 기반을 둔 통일론이었다는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수의 수단으로서의 통일론도 적잖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보수세력에 ‘통일반대론’이라는 걸쭉한 잉크를 한 방울 떨어트려 보려는 것이다. 한 번 상상으로나마 “통일? 그거 안하면 어때?”라는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면 어떨까.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론되는 것들을 대입해 봤을 때, 과연 정말 통일만이 유일한 해답이자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

일단 헌법 제3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헌법에 나와 있어서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또 통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헌법 제3조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순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껍질을 한 번 더 까봐야 한다.

반드시 하나의 국가가 돼야만 그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얼마든지 김씨 체제의 붕괴 이후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나름의 갈등과 고민을 거치면서 더 나은 인권 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의 민주화라는 것도, 김씨 체제 붕괴 이후 즉각 실시돼야 하는 것인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성숙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문을 막는 난해하고 복잡한 질문들

당위적 차원이 아닌 실리적 차원에서의 통일이라는 것도 일단은 통일 반대론의 극점에서 시작해 평가해 봐야 한다. 정말 통일은 우리에게 엄청난 성장과 번영을 가져다줄까? 예컨대 통일을 했을 때 북한 주민들에게는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복지의 수준을 그대로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해야 할까.

국제관계나 안보로도 관점을 옮겨보자. 예컨대 북한이 붕괴되고 흡수통일에 성공했다고 가정했을 때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철수해야 하는가. 남아 있다고 쳐도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평양 북단에 주한미군이 배치될 때 중국이나 러시아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통일을 위해서 주한미군을 포기할 만큼 우리는 간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우리의 말문을 막는 난해하고 복잡한 질문들이 소위 ‘쌓여’ 있다. 과연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통일부나 통일준비위원회 같은 정부 기구들만의 몫인지도 의문일 뿐더러 그들조차도 어느 수준에서 얼마만큼의 답변을 준비해뒀었는지도 의문이다. 능력이나 열정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사회 자체가 통일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런 점에서 실패로 끝난 햇볕정책이 차라리 더 실질적인 변화를 염두에 뒀던 정책이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통일반대론이 필자의 견해는 아니다.

다만,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를 우리 사회에 크게 세워보자는 의도다. 당위적이든 실리적이든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합의이고 과제라면, 그것을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면서 동시에 더 나은 통일한국의 기초적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스파링 파트너로서의 ‘통일반대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독일 통일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본질이 다른 그런 통일의 시대가 올 것이다. 현실이라는 렌즈로 통일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보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에게는 통일 대박론이라는 긍정의 전망과, 통일 반대론이라는 부정의 전망이 모두 필요하다. 

 

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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