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자유 사용법
규제와 자유 사용법
  • 미래한국
  • 승인 2014.11.0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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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에콰도르에 사는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순교를 당한 짐 엘리웃의 부인은 그가 선교지에 가기 전에 크리스천이라면 규격 있는 옷을 입고 품위 있게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에콰도르에 가보니 거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이방인이 됐음을 알았다고 ‘순종의 자유’라는 책에서 그녀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장발족이나 미니스커트 입은 이들을 거리에서 단속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인간적 규범이나 규칙이 시공의 제약을 받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원리는 우리의 난해한 상황 해석에 도움을 줄 것이다.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자유에 대한 변증을 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도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몫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줄을 믿노라.”
초대교회의 율법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은혜의 승리를 외친 것이다.

규칙이나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그 문제에 대한 잘못 적용된 법에 다른 대항이 생겨 결국 문제는 계속 엉키게 된다. 법정 판결이 나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공동체는 깨지거나 흠집이 커진다.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방법으로 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은혜를 더 하려고 죄를 짓겠느냐”.이는 논리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법으로 따지면 감정의 고리만 깊어간다. 사도 바울은 은혜로 말미암은 삶은 거룩으로 인도됨으로 우리의 애매모호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규정과 규례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규제개혁은 법률 개혁의 하나로서 보통 기업 활동과 관련된 경제규제에 대한 개혁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규제개혁을 규제 합리화라고 정의한다.

규제만능주의에 매몰된 우리나라를 소생시키기 위해 최근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경제규제 철폐를 추진하고 있으나 상황은 역행적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결혼생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법으로 사는 가정이다. 다른 가정은 사랑과 신뢰로 사는 가정이 있다. 전자는 의무 이상을 피차 하지 않는다. 후자는 서로 희생하고 돕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율법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았는지는 모르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법 안에서가 아니라 은혜 받은 자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규제개혁은 규제 합리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 했다 해서 하나님이 죄까지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가령 음식물 중에도 몸에는 좋으나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정신을 진정시키나 몸엔 크게 해로운 것이 있다.

이처럼 음식, 성(sex), 약, 집, 심지어 자기 몸을 포함한 모든 것을 크리스천에게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모든 것이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즉 얽매이면 그것들의 종이 되기 때문이라 한 것이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저해한다면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될 수 없다”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위한 일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과 성장을 도모시킬 수 있는 덕을 세워야 한다. 타인의 말이나 생각하는 것에 당신의 행동기준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당신은 위선자나 미친 사람이 될 것이다.


내게 있는 자유는 남을 돕는 일에 사용돼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해를 주지 않기 위해 포기할 때, 덕을 세우는 경우가 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남의 유익을 구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다.

내게 있는 자유는 남을 돕는 일에 사용돼야지 다른 이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로 인해 어떤 이가 신앙 열심이나 소득에 손해를 봤다면 성경에서는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물에 빠져야 할 것이라 가르친다. 크리스천은 자기 일뿐 아니라 남에게 덕을 세워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모든 진리(과학, 학문), 모든 명예(윤리), 모든 정당한 것(법률), 모든 순수한 것(도덕), 모든 사랑할 만한 것(예술, 개인적 매력)을 항상 생각하되 이 모든 희랍문화의 이상들을 그것이 옳다면 따라야 하고 이를 하나님을 위해 성화시킬 의무가 있다.

잘못된 유대주의(율법주의), 완전주의, 자유방임주의 사상은 따르지 말고 현실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행동하는 이상주의자인 선지자처럼 살아야 한다.

로마서 2장 17절부터 시작되는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의 말씀은 종교적, 경제적 기득권을 갖고 습관과 윤리적 독선에 빠진 우리 사회에 던져진 메시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자랑한 유대인에게처럼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실 것과 행한 대로 심판하시고, 내가 남을 판단한 그 기준대로 심판을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 욕을 듣게 되지 않도록 규제개혁을 해야 하지만 알찬, 신령한, 내실 있는 참 유대인이 돼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유인이 되자.

 

이종윤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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