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술대학들의 ‘그림’ 같지 못한 현실
대한민국 미술대학들의 ‘그림’ 같지 못한 현실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4.11.07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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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대한민국의 대학진학 환경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내신 성적과 수능점수를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자신의 흥미 보다 성적에 맞춰 학과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바탕으로 진학을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미술계열’이다. 미술대학은 실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홍익대가 2년 전부터 100% 비실기 전형의 ‘모험’을 시작했지만 주요 미술대학들은 여전히 정시모집에서 실기비중을 40~60% 이상 유지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흥미를 따라 본인의 노력을 통해 미술 입시 관문을 통과해 대학 진학을 하게 된다.

지난 15일 ㄱ대에서는 어느 디자인학과의 졸업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졸업 학기를 앞둔 미술전공 대학생들은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졸업 작품에 매진할 정도로 졸전(졸업 전시회)을 위해 한 학기 이상의 시간 동안 공을 들인다. 전시를 코앞에 두고는 몇 주간 밤을 꼬박 지새우며 만들어낸다는 그들의 작품에는 노력의 숭고한 흔적이 느껴졌다.

졸업전시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부분 전공과 관련한 분야로의 취업을 모색한다. 따라서 미술계열은 특히 전문적인 대학교육과 양질의 배움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뜻밖에도 미술에 대한 숭고한 열정의 결과물 이면에 감춰진 미술대학 어두운 교육의 실태를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조금 더 시선을 넓혀 ㄱ대를 비롯한 ㄴ대, ㄷ대 등 우리나라 미술대학의 교육 실태를 취재하고 미술대학의 총체적 문제를 짚어보기에 이르렀다.

가장 우선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미술대학의 문제는 수업이 체계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계획성 없는 수업, 유명무실한 커리큘럼

ㄱ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커리큘럼의 유명무실함이었다. 환경디자인을 전공하는 A양은 “수업 커리큘럼에 문제가 많다. 수업의 계획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전공수업의 퀄리티가 떨어져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흥미를 많이 잃었다”고 입을 뗐다.

동일 전공의 B양은 “무엇보다 커리큘럼이 가장 부각되는 문제”라며 “비싼 등록금을 내는 데 비해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몇몇 교수는 역량이 의심스럽다”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ㄷ대는 커리큘럼의 문제는 물론 교수들의 태도까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서양화 전공의 A양은 “개설된 수업명과 강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일부 수업은 수강생 숫자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이름을 외우지 못해 명찰을 달게 한다”면서 “이는 교수가 학생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라고 토로했다. B양 역시 “강의계획서를 보고 수강신청을 했으나 전혀 다른 수업을 했던 경우도 많았다. 강의계획서의 필요성을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강의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 또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디자인과의 C양은 “미대는 4~5시간 동안의 수업이 이뤄지는 강의도 많다. 하지만 1시간 남짓 수업을 진행하고 끝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업의 질이 높은 것도 아니기에 수강료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D양은 “교수들의 잦은 휴강은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학생들에게 충분한 수업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수업 진행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교수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ㄴ대 산업디자인 전공 출신의 한 졸업생은 “미대에서 휴강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거의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교수도 있었다”며 “어느 한 교수는 미술계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교수인데 휴강을 밥 먹듯이 했다. 하루는 어김없이 휴강 통보를 받고 나서 학교 근처 호프집에 갔는데 해당 교수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불신을 양산하는 교수들과 대학 행정

ㄷ대의 경우 더 심한 증언도 나왔다. 회화를 전공하는 C양은 “교수들이 나태한 수업 진행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성향을 강요하고 강의 시간에 교수들끼리 동료 교수들을 서로 비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학생이 본인의 성향이나 의견에 따르지 동조하지 않으면 학생을 비난하고 편 가르기를 한다”면서 흑백논리를 내세우고 자신의 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B양은 “학생의 발표 도중 졸거나 잠을 자는 등 학생을 가르치는 태도가 갖춰지지 않은 교수들을 보면서 교수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미술대학 교수들의 공통적인 불성실한 수업태도 이외에도 미술대학 운영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 드러났다.

ㄴ대에 재학 중인 A양은 “교수의 부족, 실기실 부족, 협소한 수업 공간 등에 대해 학생회가 매년 개선을 건의하고 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는 학교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ㄴ대는 교수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임 교수의 인원을 감축했다. 또한 실기실 공간 확충 요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설 기업체 임대사업을 벌이는 등 불통 행정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ㄷ대는 미술대학의 인프라를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었다. A양은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의견 제안 없이 일방적으로 개설강좌수를 줄이고 교수진을 감축시켰다”면서 “이와 같은 학교 측의 예술대학 운영은 일말의 합당함도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양 역시 “학교에서 졸업전시회를 비롯한 각종 전시를 진행하던 갤러리의 규모를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장학금의 규모를 대폭 줄여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며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학교 운영 행태에 불만을 나타냈다.

실제로 ㄷ대는 최근 갤러리의 규모를 축소하고 성적장학금의 수혜 인원을 줄였다. 이뿐 아니라 근로장학금은 아예 폐지시켜 학생 장학복지 규모를 대폭 축소시켰다.

ㄱ대는 모든 디자인학과들이 동일한 등록금을 지불하는데도 불구하고 학과별로 부조리한 차별적 집행운영 사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양은 “같은 학교 내의 디자인학과별 시설 차이는 너무나 불공평하다.

시각디자인과는 MAC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비해 환경디자인과는 오래되고 낡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산업디자인과는 레이저 커팅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나 다른 학과 학생들은 학과 내에 구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외부 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미술시장 육성에 거꾸로 가는 대학

지난 9월 정부는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미술시장 전략적 육성, 미술인 전업환경 조성, 국민의 향유 증진 등 3대 추진전략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미술품 거래정보 온라인 제공시스템 구축과 작가보수제(Artists Fees) 도입 등 미술시장 선진국의 모범적인 시스템을 적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미술대학의 교육 현실과 학교 운영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만약 정부가 발표한 계획을 통해 미술학도들의 활동 환경을 성공적으로 마련한다한들 미술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교육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미술시장 활성화에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의 확대는 수요의 확충에서 시작된다. 한 산업의 수요가 증가하려면 해당 시장에 사람들이 돈을 지불할 만한 메리트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미술시장의 성장은 사람들의 구매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을 그려내는 화백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수 있는 요구를 작품에 반영해내는 훌륭한 디자이너의 배출이 선행돼야 함을 의미한다.

국내 미술시장의 내수 확대가 동반되려면 훌륭한 미술계의 인적자원들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배출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대학의 인재를 담아내는 그릇에는 오히려 금이 가고 있다면 훌륭한 인재 배출에도 한계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가 미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개선해 나갈 의지를 표명했다. 그렇다면 미술인들을 길러내는 것은 미술대학의 몫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밥상을 차려놓아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 밥상은 의미가 없다.

미술대학들이 예술이라는 명칭 하에 방관하는 불합리적인 운영 행태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그림’은 한국 미술계에선 너무 버거운 걸까. 만약 미술대학이 앞으로도 구태의연한 운영을 고집한다면 잘 차려진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은 이국 작가들의 밥상 잔치가 될지도 모른다.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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