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당신은 자신 있습니까?
친일파, 당신은 자신 있습니까?
  • 미래한국
  • 승인 2014.11.25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내에서 비교적 소수에 해당되는 이른바 ‘젊은 보수’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비난과 조롱들 중에서도 가장 코믹했던 것이 바로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비아냥거림이었다.

코믹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정말 필자가 친일파의 후손인지 여부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점도 웃겼지만, 만약 실제로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연좌제라는 전근대적 미개함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아냥거림을 코믹하다고 치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심각해진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친일이냐 아니냐’라는 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백범 김구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 한차례 논란을 빚었던 KBS 이인호 이사장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좌파진영은 ‘극우’와 ‘친일’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였다. 김구 선생이 훌륭한 독립 운동가였다는 발언이 무색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마저도 ‘친일’이라는 오해가 따라다니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 누구보다도 독립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던 항일 운동가 이승만을 ‘친일’로 만드는 메커니즘에는 결국 맘에 안 드는 자들에게 친일이라는 절대악의 꼬리표를 달아버림으로써 대중의 인식 자체를 오염시켜버리는 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미국이 암살계획을 세우게 만들 정도로 미국과 지독하게 싸웠던 이승만에게 ‘친미’라는 수식어까지 자연스럽게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 1952년 진해별장에서 성탄절 맞는 이승만


‘친일’과 ‘극우’라는 이름표 붙이기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매도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독재’나 ‘권위주의’라는 단어로 묘사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누구도 쉽게 빨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실제 종북 세력이 국회에 진출하여 버젓이 의정활동을 한답시고 국정에 혼란만 야기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대신 새로운 독재가 등장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친일로, 수구로, 꼴통으로, 독재 미화세력으로,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분법의 절망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젊은 보수에게 친일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작업이었으리라.

친일세력이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친일은 결코 옹호될 수 없다는 점까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실제 저 두 가지를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을 본적도 없고, 또 그런 사람을 봤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과연 우리나라 국민 중 몇 명이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찬양하겠는가.


‘그들’에게 2014년의 상식을 강요할 수야…

다만 우리는 좀 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볼 필요는 있겠다. 잠시 눈을 감고 1920~30년대로 우리의 시공간을 바꿔보자. 우리는 조선인으로 일본을 살아가고 있다.

절대 일본 본토인들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는 하등한 존재다. 우리 민족이 다 같이 봉기하여 일본과 싸워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의 경제력과 무력 앞에서 조선인의 힘은 초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전화는커녕 제대로 된 언론도 없다. 아니, 제대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조차 적다.

그런 시대에서 과연 항일이나 독립이라는 것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선택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 그 시대 수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절망했다.

도저히 앞길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시대였고, 그 암흑은 충분히 오판과 억측을 가능케 할 만큼 칠흑 같았다. 실제 그 암흑이 거두어지는 데에는 우리의 의지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심지어 우리는 완연한 독립을 제대로 이루지도 못했다. 이미 소련은 공산주의 위성국가를 만들 계획으로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였다. 한마디로 절망과 비극의 시대였던 셈이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행동을 과연 2014년의 생각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친일에 대해서는 역사적 단죄를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똑같은, 그리고 너무나도 평범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2014년의 상식을 강요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사상적 독재와 권위주의가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막연한 도덕적 우월감에 심취한 채 우리 인간의 솔직한 단면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정말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나부터 친일이라는 멍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나라고 해서 모든 것을 바쳐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 만큼 용기가 있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