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비리 수술 방법은 있다
방위산업 비리 수술 방법은 있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1.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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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1970년 7월 6일 미국은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의 손에’라는 닉슨 독특린에 따라 주한 미군 1개 사단 철수를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그리고 1971년 3월 27일 미 7사단을 결국 철수시켰다. 한국 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한창 월남전 패망의 기운이 짙어가던 터였고, 미국은 줄곧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초연했다. 그는 닉슨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그 실행에 대비한 ‘한국군 현대화’ 협상 카드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율곡사업’이라는 암호명으로 시작된 자주국방, 군현대화사업은 40년 전인 1974년 그렇게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민하게도 국방산업을 중화학공업과 연계하는 전략을 썼다. 율곡사업의 담당부서는 국방부가 아니라 당시 청와대 경제2수석실이었다. 이 사업의 총책임자였던 오원철 전 경제2수석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미 고위관계자가 김정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얘기한 것이 있어요. 미국은 일본 같은 공업국에서는 철군하지 않지만 베트남이나 한국과 같은 농업국은 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사업을 중화학공업과 연계하면서 ‘군산복합 모델’을 전략적으로 채택했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창원공업단지였다.

1978년 미군철수계획을 결정하기 위해 미(美) 시찰단이 창원공업단지를 둘러 본 결과는 박정희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곳에서 엄청난 무기제조창을 둘러본 미 관리들은 만일 한국이 공산화돼 소련의 수중으로 들어갈 경우 그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미 하원 현지 확인반은 귀국 전 김포공항에서 “한국은 이미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으므로 우방으로 남겨두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 보고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떠났다. 이후 1979년 방한한 카터 미 대통령은 귀국 후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국민을 분노케 한 방위산업 비리들

40년 전 그렇게 시작된 대한민국 국방산업은 박정희 정권 이후 비리로 얼룩졌다. 그칠 줄 모르는 방위산업 비리는 2006년 노무현 정권에서 ‘방위사업청’의 등장으로 그 투명성과 효율성을 기대했지만 역시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 최강이라던 K-9국산 자주포는 연평도 피격 시에 고장 났으며 대잠수함 어뢰 홍상어는 아예 시험성적표를 조작했다가 실전 배치에서 무용지물 판정을 받았다.

세계적 전차라고 자랑하던 K-2 흑표전차는 국산 파워팩이 문제되자 그 성능을 낮춰 실전에 배치하기로 했다. 사실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연평해전의 계기로 1600억원이 투입돼 개발된 최초의 국산 전함 통영함은 핵심부품들이 짝퉁이어서 기동도 못하고 처박혀 있다. 최근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에 대응사격하려 했던 국내 함정에서는 함포가 아예 작동하지를 않았다.

이쯤 되면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두려움을 갖는다. 과연 우리 군은 북한군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전투에서 무기들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막연한 우려를 갖기보다는 우리 국방산업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 해결방법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방산업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완전실패’라기보다는 ‘부족한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국내 방산수출액은 2007년 8억4000만달러에서 2012년 23억5000만달러로 5년 사이 3배 정도 증가했다. 세계가 우리 국산무기의 성능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방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방산업 연구개발은 선진국 대비 약 80% 정도 수준이다. 연구개발비로 비교할 때 선진국 수준인 10~15%에도 못 미치는 7~8%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우리의 국방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첨단 핵심 부분을 제외하면 그렇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방기술력을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지상무기체계(92%)가 가장 높고 그 다음 정보전자전(83%), 정밀타격(82%), 해상(79%), 지휘통제(70%), 감시정찰(49%), 항공(48%), 신특수(40%) 순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국산무기들이 현실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 국방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 수요자는 국방부 한 곳이며, 개발자도 국방기술원 한 곳이고, 조달자도 방위사업청 한 곳이며, 오더를 받는 주력 생산자는 몇 개의 대기업들이다. 다시 말해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의 나라에서는 군수기업들이 자국을 포함해 전 세계 국가를 수요자로 무기를 개발한다. 판매용 무기를 만드는 나라들의 무기 수준과 자급자족형 무기를 만드는 나라의 무기 수준이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한국 국방산업에 시장이 미미한 이유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른바 ‘조기전력화’라는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빨리 빨리’와 ‘지상최고’가 원흉

조기전력화란 쉽게 말해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빨리 빨리’와 ‘지상최고’라는 군의 무기개발 요구사항을 말한다.

그렇기에 조기전력화는 국방기술을 담당하는 연구소의 개발자들에게는 하청 용역이 되고 그나마도 충분한 시간과 성능시험의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

설령 시험단계에서 완벽한 성능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모든 공산품은 양산 과정에서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조기전력화의 문제와 함께 지나치게 경직된 국방기술의 R&D 운용문제도 제기된다. 과도한 규제와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면 불이익’이라는 국방산업의 개발 현주소는 국방산업을 일반 과학기술 산업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책임사업’으로 만든다.

이러한 현실은 국방기술 개발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소외감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선택적 연구를 한다든가, 만약의 경우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없다.

무조건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일로매진해야 하고, 반드시 그 결과는 성공적이어야만 한다. 국방기술 연구 개발자들의 사정이 그런 반면, 무기획득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의 경우는 비전문성이 문제가 된다.

개발자들이 무기 스펙을 결정하면 방사청은 이를 바탕으로 방위산업 기업들에게 생산 오더를 낸다. 문제는 방사청 관료들의 70% 이상이 비전문 군 출신이라는 점이다.

무기 획득 결정이 위원회를 통해 투명하게 결정된다지만 이 투명함 속에는 ‘공동책임, 무책임’이라는 안일함과 기술 전문가들이 배제되는 ‘무지함’이 있다.

결국 사업자들의 로비가 먹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생산 오더를 통해 무기 획득을 담당하는 방사청의 관료들이라면 군수무기와 부품 등에 대한 기술적 이해가 개발자와 동등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프로페셔널 정신이 작동하게 된다.

문제는 개발이 아닌 무기 획득 행정업무가 주인 방사청에 그러한 인력이 거의 없다는 점과 그러한 인력들이 대개 비전문 군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방사청 군인들이 애국심이 없다거나 타락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군인들은 계급 정년이 있기에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러한 불안감이 비리 유혹이 있을 경우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동시에 군의 선배들이 방산기업의 로비스트로 접근하게 되면 그러한 비리 유혹은 더 강해진다.

“아무래도 업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껴주던 선배를 술자리 같은 곳에서 만나는 것이니 만큼 긴장감이 없죠. 그런 분이 ‘걱정하지 마라. 아무 문제없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가 자네를 위험하게 하겠나.’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흔들리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 제안하는 한 순간의 결정으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면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방사청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전직 인사의 말이다.

물론 방사청의 입장은 다르다. 전술무기에 대해서는 군이 가장 잘 안다는 이유로 방사청에서 군 인력이 줄어드는 데 반대한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그런 입장을 대변한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산 비리로 물의가 빚어질 때마다 민간인 숫자만 늘렸다”며 “안보산업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되는 경향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채우석 회장이 말하는 민간인이란 비 군출신의 전문가를 말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방사청의 비리는 민간 전문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퇴역 장성들을 비롯해 군관계자들의 로비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는 통영함의 경우 잘 드러난다.


2억원짜리 부품을 40억원에 구입

지난 2009년 11월 방사청의 실무회의에서 통영함에 탑재할 음파탐지기 기종이 최종 결정됐다. 당시 참석자는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등 총 7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황기철 총장은 당시 방사청 함정사업부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 참석자 7명 가운데 공무원은 1명, 나머지 6명은 모두 현역 해군장교였다. 이 가운데 5명의 장교들은 모두 해군사관학교 선후배들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날 결정된 통영함의 음파 탐지기가 생산도 되지 않은 제품이었다는 사실과, 납품사는 방산업에 단 한 차례도 납품 실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해당사는 방사청으로부터 모두 2000억원에 달하는 납품 용역을 받았으며 방사청은 2억원짜리 성능미달 음파 탐지기를 40억원에 구입했다.

그 가운데는 통영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어군탐지기’도 있어 물의를 빚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전 해군대위 로비스트가 구속됐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채우석 회장이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주장한 내용은 가관이다.

“군 출신이야말로 최고의 전문가로서 업체의 눈속임을 가장 잘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 방위산업 관련 학과에서 수업을 듣는 이들 대부분이 군 출신이지요. 제대 이후에도 이쪽 분야 전문가가 되려는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출신 성분만 갖고 민간인으로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발상입니다.”

방사청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방사청의 무기획득 과정에 국방기술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페셔널 엔지니어의 직업적 양심이 없다면 국방산업 부품들을 감별해 내는 과정은 로비에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군피아(군 마피아)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방사청 내에서의 밥그릇 싸움에서 민간 전문가들의 이런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국방산업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지난 40여 년 동안 국방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는 16조원이 투자돼 그 12배인 187조원의 경제효과가 달성됐다. 또 390개에 달하는 민간기술이전으로 총 1조 1000억원의 민수 파급효과를 우리 국방과학기술이 달성해냈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국방산업이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는 산업으로서 그 미래가 충분히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역시 시장이다.

이제까지 내수용에만 그쳤던 무기개발 사업에서 이제는 눈을 돌려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생산하는 국방산업으로 도약할 시기가 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독일의 전차 엔진을 개발했던 BMW나 미국의 전투기 제조사였던 보잉은 그런 군산복합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DARPA라는 고등국방기술연구원을 통해 오늘날 인터넷, GPS, 내비게이션과 같은 민군공용 기술을 개발해왔다. 그 산업적 가치는 무한하다.

 


국방산업에 민간기업 참여 절실

이러한 국방산업을 경제적 산업으로 키우려면 국방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주장은 단지 국방산업으로 부를 창출하자는 단순한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국내 방산업의 비리를 막는 방법 역시 시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길병옥 충남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방위산업학회의 한 논문을 통해 국방산업의 안보가치와 경제가치를 극대화하는 ‘창조적 국방산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논문에서 과거 군이 주도하던 국방산업을 1세대로, 정부 주도 국방산업을 2세대로 규정하고, 군과 정부에 민간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3세대 국방산업의 모델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무기체계의 개발과 생산, 획득 전 과정에 기업이 배제되지 않고 참여하는 모델이다. 이는 미국의 무기개발이 군과 정부 외에 기업이 초기부터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3.0국방산업’ 모델에서는 국내 무기 개발에 처음부터 글로벌 판매 전략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무기개발 인력도 지금처럼 국방과학기술원과 같은 관치 연구기관 외에 민간기업 연구소들이 참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대학의 인력들도 참가할 수 있어서 그 자원과 스펙의 범위는 더 넓어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국방기술의 보안이나 유지는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에도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도화되고 복잡한 기술체계에서 분업화된 지식은 어느 한 사람이 모두 인지할 수 없다. 심지어 컴퓨터의 마우스조차 그 제조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이는 없다고 한다.

수많은 부품사들과 협력하는 삼성과 엘지의 첨단 냉장고 설계도를 중국의 전문기업이 100% 확보했지만 생산에서 실패했다는 일화는 전문화·분업화된 생산체계에서 공정이 갖는 진화적 비밀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유럽의 국방산업에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치열한 스파이전이 벌어져도 신무기체계를 후발국이 카피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이렇듯 국방산업에 민간기업 참여를 활성화시켜 성공을 거두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방산기업과 민간기업의 구분이 모호하다.

우리처럼 방산기업으로 지정되면 그 시설로 민수용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도 없다.

누구나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국방산업에 제안할 수 있고 채택이 이뤄지면 군수에 맞게 수정·개발된다. 또 국방기술로 개발된 기술들이 민간에 이전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가진 첨단 방위산업 기술은 바로 그러한 민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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