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30대 보수’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30대 보수’로 산다는 것
  • 이원우
  • 승인 2014.12.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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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 독자님들께 처음 인사드린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라는 코너 명을 떠올렸을 때만 해도 내내 서른일 것 같았다. 아니 그 코너가 1년 이상 갈 거라는 생각을 감히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빨랐다. ‘서른 살의 자유주의’가 ‘블랙스완’으로 바뀌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덧 미래한국에서의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의 이른바 ‘보수’ 진영에는 상징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선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의 변화와 19대 총선. 일련의 흐름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영조 당시 대표의 공천 탈락이다.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함의를 내포하는 사건인지를 정작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나 이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나름의 소신을 견지하려는 인사들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라는 새누리당이 어떻게 응대할지를 예고하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2014년 6월 24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가 자진사퇴를 할 때 생각난 것도 바로 이 사건이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정말로 ‘제왕’일까

어쨌든 당선은 박근혜 후보의 몫이었다. 조갑제 기자는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18대 대선의 하루를 ‘우리 생애의 가장 길었던 날’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에 관심을 보이고 각종 전체주의적 정책을 공익(公益)의 이름으로 남발한다 할지라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과거가 의심스런 A를 장관으로, 미래가 의심스런 B를 총리로 임명하는 것보다야 낫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러나 2014년 1월 철도노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이도저도 아닌 채로 끝나버렸을 때, 과연 박근혜에게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를 염원했던 기대감이 적합한 것이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대처의 강인한 대처를 그녀에게서 기대하기엔,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 날짜가 정해져 있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일시적 수장일 뿐이다. ‘제왕적 대통령’ 운운하는 소리는 전부 거짓말이다.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게 아무리 천하의 박근혜라도 그렇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은 그런 대통령을 향한 반(反) 박근혜 진영의 화살로 결국은 비화되고 말았다. 요즘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유머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세계 각국의 반응: 프랑스인은 배우자의 애인을 죽인다. 이탈리아인은 배우자를 죽인다. 스페인인은 둘 다 죽인다. 미국인은 변호사를 물색한다. 한국인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데모를 한다.>

세월호 비극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대처하고 때로는 극복하느라 한 해가 다 가버린 느낌이지만, 그렇다 해도 2014년 6월 24일 문창극 후보의 사퇴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04년부터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관심을 가져 올해로 ‘이 바닥’에 진입한 지 딱 10년째가 되는 나는 이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겠다. 미래한국이라는 잡지에 글을 써온 나나 그걸 읽고 계신 여러분이나 비슷하다. 문창극 후보가 국영언론의 날조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꼴통’이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문창극 사태는 거칠게 알려줬다.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제1보수정당 새누리당이 판을 그렇게 만드는 데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왔다는 점이다. 여론이 정당을 만들어간다고? 유권자는 그 수준에 맞는 정당을 갖는다고?

맞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그 ‘여론’에 포함될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슬프지만 진실’이다. 새누리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미약하지만 강경했던 일각의 목소리마저 7·30 재보궐 선거와 함께 완벽하게 사라져 버리고 만 채 2014년도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시점에서 기억나는 것은 미래한국 기자로서 했던 마지막 인터뷰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과의 대화는 결국 ‘언론’으로 결착이 났다. 세상 어떤 선진국의 대중(mass)도 똑똑하거나 지혜롭지 않다. 언론이 그들에게 어떤 가치에 입각해서 어떤 정보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일 따름이다.

 

절망적인 경제수치 속에 2015년의 변화를 모색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연합

2015년은 ‘절대평가’의 시간 돼야

현재는 이 메커니즘이 역방향으로 무너진 상황이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은 ‘여론’이라는 이름의 불확실한 어떤 에너지-사실은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편견과 아집의 집합체에 불과한 선입견에 맞게 스스로의 의견을 만든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뭘 듣고 싶어 하는지’를 지레짐작해서 뉴스랍시고 펼쳐놓는 것이다.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 신문들의 사설에 적힌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이 악순환에 충실하게 복무한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틈에 원칙도 이념도 사라져 버리고 없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가운데 대다수의 경제지표는 절망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 30대 보수로 산다는 것은 이와 같은 무능과 무의미의 원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what is to be done?)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른둘의 나는 더 이상 새누리당과 함께 ‘보수’라는 단어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모든 고민이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새누리당이 보수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새정치민주연합보다는 오른쪽에 서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새누리당보다 더 무능한 새민련이 새누리를 상대평가의 승자로 만들어 줬던 셈이다.

20년 후, 30년 후를 고민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2030은 이제 이 바보 같은 상대평가의 질곡을 깨고 원칙에 입각한 절대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선거가 없는 2015년은 그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도 내심 그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이원우 기자 wonwoop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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