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로 끝난 전쟁, 또 다른 전쟁의 불씨 된다
미해결로 끝난 전쟁, 또 다른 전쟁의 불씨 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12.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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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12회 기획 /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完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이전에 발생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 큰 전쟁이었다. 인명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참전국의 숫자에서도 그랬다. 1차 세계대전은 그 목적에 있어서도 이전에 치른 전쟁과 달리 지역적 범위를 넘어섰다.

즉 과거 나폴레옹 전쟁 등은 누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를 두고 벌였지만, 1차 세계대전은 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것이냐를 두고 싸운 범지구적 전쟁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World War)이었지만, 이 전쟁은 결국 패권을 가리지 못한 채 수백만의 목숨만 희생시킨 무모한 전쟁이 되고 말았다.

후발 산업국가 독일이 영국에 대해 도전장을 내민 1차 세계대전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기왕의 패권을 공고히 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쟁이 종결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을 치르면서 영국의 세계 지배권은 형편없이 약화되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을 통해 경제력·군사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된 미국은, 당시 ‘패권(Hegemony)’이라는 개념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혀 그런 실력 행사를 할 의지도 없는 나라였다.

사실 1914~1918년의 전쟁은 발발 이후 한창 전투 중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종전 20년 후 또 다른 큰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1차 세계대전(First World War)’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그저 ‘큰 전쟁(Great War)’이라고 불렸던 전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끝났기 때문에, 이 전쟁은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을 불러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말았다. 1939년 발발한 두 번째 전쟁 이후에 비로소 1914년의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리게 됐고, 두 번째 전쟁은 자동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제국의 무덤이 돼 버린 1차 세계대전

물론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도 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1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에 참여했지만, 종국에 가서는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경합하는 상황이 창출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45년 정도가 더 소요됐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의 잔혹성을 경험한 인류는, 지구촌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됐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인류의 공포는 한동안 ‘냉전체제’로 바뀌면서 불안한 가운데 평화 상태를 유지해 나갔으나, 그렇다고 그 여진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90년 소련이 몰락하면서부터 미국이 진정한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했다.

1차 세계대전은 누가 패권국이 될 것이냐의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패권 경쟁을 비교적 단순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면도 있다. 능히 세계의 패권을 꿈꿀 수 있는 역사상의 막강한 대제국들을 게임의 판에서 밀어내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정리·폐기된 대제국이 3개가 있었다. 곧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그리고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몰락의 운명을 맞게 된 오토만 제국이다.

우리는 <Sound of Music>이라는 명화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직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예비역 해군 대령의 가족이 겪는 슬픈 이야기를 간접 경험한 바 있다.

러시아 제국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국내적인 혼란의 와중에 발발한 대전쟁을 기회로 삼아 공산혁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할 기회를 잡았다. 결국 러시아 제국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 소련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등장했다.

그러나 소련도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활하기는 했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74년 만에 붕괴되면서 옛 이름을 되찾은 러시아가 지금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토만 제국의 경우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한 편이 돼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전국이 됐을 뿐만 아니라, 아예 제국이 와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오토만 제국의 구 영토들이 영국, 프랑스 등 승전국에 의해 분할 점령돼 버렸던 것이다. 그 여진이 지금까지 남아 오늘날 ‘중동문제’라 불리는 골치 아픈 문제의 연원이 됐으며, 이러한 오토만 제국의 몰락은 조국의 땅으로 돌아가려는(Exodus) 유대인들의 노력에도 불을 지피는 계기로 작용했다.

 

▲ 윌슨 대통령

결정적으로 끝나지 못한 전쟁

적대적인 두 국가 사이에서 발발된 전쟁이 결정적으로(decisively) 끝났느냐의 여부는, 전쟁 이후 평화의 지속 시간을 결정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끝난 전쟁의 경우 패자는 승자의 규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다시 힘을 길러 도전을 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끝나지 못한 전쟁은 그 이후 ‘평화’의 지속 시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그런 평화를 진정한 평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1차 세계대전은 결정적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었다. 가장 주요한 적대적의 세력을 영국과 독일이라 본다면, 그리고 해결했어야 할 문제가 세계 패권을 결정하는 것이었다면, 1차 세계대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 승자가 하나 있었다면 미국인데, 이때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유럽의 균형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의 이상주의적인 국제연맹은 사실상 사산아(死産兒)였다. 창설을 주도한 미국이 회원국이 되지 못한 국제기구였으니 말이다. 윌슨은 민족자결을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전쟁에 패배한 지역이 억누르고 있던 민족에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일본에 의해 지배당한 조선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돼 3·1 운동을 일으켰지만 목적을 전혀 성취하지 못했다.

놀라운 일은 진정한 승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프랑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아예 ‘죽여 버리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과도한 대 독일정책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독일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전쟁 배상금을 부과하는가 하면, 아예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다. 영국과 미국이 프랑스의 대독 정책을 뜯어 말리려고 할 정도였다.

결국 독일은 완전한 경제 파탄 상황에 봉착했다. 1년에 몇 천 %씩 오르는 물가와 인플레는 독일 국민들에게 파멸이냐 히틀러냐의 둘 중 하나에 대한 선택을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빵 하나의 가격이 수천, 수만 마르크가 된 나라의 국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히틀러밖에 없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20년 만에 그보다 훨씬 더 큰 전쟁이 터졌다. 1939년 히틀러의 군대가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그 전쟁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전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침략을 눈감아 줬던 영국은 물론 독일군의 기습 전격전 앞에 몇 달도 버티지 못한 프랑스를 비롯한 소련, 일본, 그리고 결국 미국도 그 전쟁에 참전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20년 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던 베르사이유 강화조약과, 이를 통해 형성된 베르사이유 평화체제는 불과 20년 만에 무참히 해체되고 만 것이다. 사실 그것은 평화 체제라고 말 할 수도 없었다. 이 시기를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Carr)는 ‘20년간의 위기’라고 묘사했다.

그가 저술한 유명한 책의 제목이 바로 이것이다. 카 교수는 이 책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윌슨 대통령이 제창했고 당시 많은 정치가 및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이상주의적 접근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제정치학의 이상주의적 접근 방법이란 국가들은 좋은 국제법, 국제기구, 외교 제도, 대화, 훌륭한 외교관, 국제무역의 활성화, 국가 간 빈번한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전쟁은 불필요한 것이고 오해에 의한 것이다, 인간은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이성과 능력을 가졌다고 보는 견해다.

▲ 베르사이유 조약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의 접근 방법은 또 하나의 전쟁을 막는 데 실패했다. 카 교수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20년을 ‘위기’라고 진단한 책에서 평화를 진정 지키려면, 국제정치를 현실주의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여기서 현실주의라는 말은 국어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국가들의 행동은 도덕적 법칙에 의거하지 않는다.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가장 중요한 이익은 국가안보다. 국가안보가 위태로울 경우 국가들은 전쟁도 불사한다. 군사력은 그래서 국가의 궁극적인 행동 수단이다. 국제정치는 어느 국가도 다른 나라보다 상위의 권위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정부적(anarchic)이다.

무정부적 국제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안전판은 자국의 힘이다. 국제정치는 궁극적으로 힘에 의해 규정된다. 국제정치에 좋은 나라, 나쁜 나라란 없다.

무서운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경험에 의거한 명제들에 기반을 둔 국제정치 이론 체계를 현실주의(Real Politics)라고 말한다.

E. H. 카 교수의 책은 국제정치학의 학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책이 됐다. 허무한 전쟁을 막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적 접근방법’인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이 급속히 발전했다. 처음에는 이상주의적 접근이 대세였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좋은 국제제도, 국제법, 외교관, 그리고 ‘대화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 대신 도래한 ‘위기’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조망인 현실주의가 국제정치학을 지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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