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상인 위한다며 그들을 울린 상가임대차보호법
영세상인 위한다며 그들을 울린 상가임대차보호법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2.18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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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임차인의 상가 권리금과 영업권을 보호해 준다는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우려대로 보증금과 월세의 급격한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0월 말 임차상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정안이 나온 후 월세 인상 요구를 받은 임차인이 45.4%였다. 실제 월세 17.6%, 보증금 30.3%가 올랐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임대인의 입장에서 권리금은 새로운 임차인과 기존 임차인 간에 영업권 프리미엄으로 주고받는 돈이다. 문제는 임대인이 자신과 상관없는 이 권리금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무다. 보호의 방법은 추상적이다.

정부가 발표한 법 개정 내용에 따르면 임대인은 기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에 대해 협력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를 위반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시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위해 2개월간의 협력의무기간 동안 임차인이 주선하는 새 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당연히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재산권 침해로 받아들여 반발할 수밖에 없다. 새 임차인을 전 임차인이 선택한다는 것은 임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건물가치나 상권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 보호냐, 임대료·보증금 올리기냐

상황이 이렇게 되면 임대인은 미래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에 보증금과 임대료를 더 받으려고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시장경제원리로는 ‘시간선호가 올랐다’고 한다.

시간선호란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느냐, 아니면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느냐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현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저축보다 소비를 늘리고,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현상이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도 미래에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불투명하고 판단될수록 이자를 더 많이 받으려고 하게 된다. 반대로 신용이 좋은 사람에게 낮은 이자를 쳐주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정부가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주에게 임차인 선택권을 포기하게 하면 건물주들은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게 된다. 자신의 건물에 임차해 들어오려는 사람이 어떤 장사를 하려는지,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낼 신용이 있을 사람인지에 대해 당연히 건물주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건물주에게 그런 선택권을 포기하도록 제도화하면 당연히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리스크를 보상받기 위해 현재 가치를 더 높이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 기준인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서울)을 넘을 경우 임대인은 임대료 상승률 제한(연 9%), 영업기간 보장(5년) 등 법적 규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개정법안에는 4억원을 넘지 않는 상가들도 영업기간 5년 보장을 임대인에게 의무화했다.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법의 취지가 반대로 임대료와 보증금을 올리게 만들어 임차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가 임차인들은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더 확대해서 단체로 정치권에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달 10일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전국상가세입자협회’ 등 영세상인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정안에 대해 상가세입자에 대한 퇴거 보상을 법으로 규정하려 한 점은 큰 의미가 있다며 환산보증금제도 폐지, 재건축시 임대인의 보상의무, 영업보장기간의 확대, 비영리로 1년 이상 상가 사용시 퇴거보상 의무 면제 신설 반대 등 미흡한 부분을 반영해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쯤이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막가자’는 이야기처럼 들리고도 남는다.

 

좋은 취지의 법 개정이 나쁜 결과 낳아

미국을 비롯해 권리금을 인정하는 선진국들은 없다. 권리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에 국가가 나서서 권리금을 계산해 주려고 하면 오히려 갈등만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이 상가 세입자들의 권리금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일부 건물주들이 장사가 잘 되는 세입자를 내쫓고 자신이 직업 영업을 하거나 중간에서 권리금을 가로채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자유주의 시장원리를 적용해 보면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물주가 열심히 일해서 영업이 잘되는 세입자를 내쫓고 자신이 동종업을 할 경우 이를 실제적인 ‘영업권 인수’로 보고 국가가 세입자와 주인 간에 영업권 양수도 계약을 명령하게 하는 방법이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기존 세입자는 법원에 기존 보증금과 월세를 공탁하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만일 건물주가 중간에서 권리금을 가로채는 경우는 따로 법을 만들지 않아도 기존의 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죽어 있던 상권이 어떤 이유로 활기를 띠게 되는 경우다. 이런 것을 경제학에서는 ‘외부경제’라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 권리금은 임차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없기에 법이 보호하려고 드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서 벗어난다.

결국 새로운 임차인이 기존의 임차인과 자발적인 거래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경우 건물주가 계약만료 후에 자신이 직접 영업을 하겠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심 상가 2억원 이상 올라

우리는 정부가 선한 의도로 시장에 규제하는 것들이 그 취지와는 달리 나쁜 결과로 귀결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목도한다. 휴대폰 단말기의 보조금이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정한 단말기유통법은 결국 소비자로 하여금 신형 단말기를 비싸게 주고 사게 하는 모순을 낳았다.

정부는 통신사들의 팔을 비틀어 단말기 출고가를 낮췄다지만 실제로 낮아진 것은 구형단말기 재고품들이거나 약정요금이 높은 신형단말기들이다.

그럴 거면 무슨 이유로 정부는 단통법을 만들었던 것일까. 도서 정가제도 그렇다. 동네 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로 모든 도서에 1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를 만든다고 해서 동네서점이 살아날 이유는 없다.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서적들을 사람들이 구매하는 곳은 온라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상가 문제로 돌아가 보자.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상가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었다. 임대료 상승제한을 뒀고 임대차 계약보호를 5년으로 늘렸다.

당연히 건물주 입장에서는 재산권 제약으로 인한 기회비용을 보상받기 위해 보증금을 올리는 상황이 왔다. 더구나 당시 이 법의 적용이 보증금 2억원이하의 상가에 적용됐는데 2억 원이하의 보증금 상가들이 급속하게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 도심의 상가들이 이 법을 피하기 위해 보증금을 2억원 이상으로 올렸던 것이다.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들이고, 지금 지지를 얻고 표를 얻어야 하는 그들은 과거의 실패가 지금 표가 된다면 얼마든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공공선택론(Public choice)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라는 자유주의 원리를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도 적용했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이익, 즉 승진이나 당선을 포기할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와 의회의 규제 권력에는 제약이 따라야 한다.

무제한의 민주주의로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지나간 역사들이 낱낱이 증명해 준 바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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