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사건을 통해 본 의료사고의 진실과 오해
신해철 사건을 통해 본 의료사고의 진실과 오해
  • 미래한국
  • 승인 2014.12.19 11:4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환규의 청진기]
 

가수 신해철 씨가 복부수술의 후유증으로 생긴 장협착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술을 받고 사망했다. 20년 넘게 가수생활을 하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던 신해철 씨는 평소 건강했었고 최근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이 가져온 사회적 충격은 매우 컸다.

사망 직후부터 측근들은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제기했고, 의사협회는 이례적으로 사건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아직 경찰조사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위원회에 회부를 결정하는 등 발 빠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언론은 의료사고에 대한 해법으로 의료분쟁조정법이 생겼으나, 의사들의 불참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의사들이 강제로 조정에 참여하도록 의료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일부 시민들은 유명인조차 이렇게 진실을 밝히기 힘든데 보통 사람들은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의료인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도를 의료인이 무과실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의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이들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의료사고를 왜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의료분쟁의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소송으로 갈 텐데 의사들은 왜 의료분쟁의 조정에 응하지 않는 것일까? 의료사고의 해법은 무엇일까? 신해철 씨 사고를 통해 의료사고의 진실과 오해, 그리고 해법을 들여다보자.


질문1. 신해철 씨에게 일어난 천공이 의료과실의 핵심인가?

신해철 씨의 부검결과 소장과 심낭에서 발견된 천공이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시민 중에는 천공을 의료과실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천공 그 자체는 의료과실이라 말하기 어렵다. 천공은 기구를 이용해서 유착(인체조직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을 말함)을 서로 떼어내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 중 하나다.

심장수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심장을 재수술을 하는 경우에는 가슴 앞 흉골에 딱 달라붙어 있는 심장을 떼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심장에 구멍이 나서 출혈이 발생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특히 심장 기능이 나빠 심부전에 빠지면 심장벽이 크게 얇아지는데, 이 경우 더 자주 생긴다. 만일 이것을 의료과실이라고 한다면 심장재수술을 할 의사는 없을 것이다.

고(故) 신해철 씨의 경우 예전에 이미 두 차례 수술을 받아 복강 안에 섬유조직으로 이곳저곳이 달라붙어 있는 유착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유착된 조직을 떼어내는 박리를 하다보면 장기손상에 의한 장기천공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좁은 시야로 수술해야 하는 복강경 수술의 경우, 수술 중에 장기천공이 발생해도 모르는 채 지나가기 쉽다. 심장의 경우처럼 장 천공도 의료과오 혹은 과실이 아니라 수술에 따라올 수 있는 합병증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질문2. 신해철 씨의 경우 의심되는 의료과실은 무엇인가?

‘천공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천공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환자에게 심정지가 일어날 때까지 진단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럼으로써 환자가 천공으로 인한 염증 확산에 의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의료과실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수술 후에 천공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지, 그리고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의사가 최선을 다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의료과실의 판단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다.

신해철 씨의 경우 퇴원 당일 촬영한 엑스레이에서 장기들의 천공을 의심할 만한 소견들이 보였고, 심낭 천공으로 인한 급성 심낭염 증세를 보였으며 심한 고열증세를 보였는데 이때 의료진이 이러한 환자 상태의 원인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적절한 조치를 취한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료과실이 의심되는 것이다.

   
 

질문3. 의사협회의 감정 믿을 수 있나?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 법원에서는 전문적인 영역인 의학적 판단을 위해 전문가의 감정을 요청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동료의식을 가진 의사들이 일방적으로 의사편을 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실제로 의료소송 중에 감정을 요청받은 의료진들이 이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소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원이 특정 대학병원을 지정해 감정을 요청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고, 의사협회에 감정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정 결과가 나온다.

그 이유는 첫째, 대한의사협회로 들어오는 감정 요청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협회의 명성과 신뢰가 달려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공정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며 둘째, 이를 위해 감정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신분을 철저히 보안하고 오직 대한의사협회장 이름으로 감정결과가 발송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을 수 있다’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질문4. 왜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료사고를 감추려고 하나?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경우 이를 감추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사고를 있는 그대로 신고하고 책임을 인정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자동차보험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의료사고를 감추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 보험을 통해 보호받지 못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은 사고의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보호한다. 그런데 의료사고 보험에 가입한 의사들은 많지 않다. 의사들은 보험수가가 이윤을 보장하지 않고 원가 이하로 책정돼 있기 때문에 가입이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거액의 배상책임을 의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 의사 개인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의사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다면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가 보호받을 수 없다.

의사들이 의료사고를 감추려는 두 번째 이유는 민사적 책임 외에 형사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 많은 나라들이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의사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우지 않고 면책한다.

의료과실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그 동기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료행위 중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형사적 책임을 함께 지운다. 이것이 의사들이 의료사고를 감추려는 이유다.


질문5. 의사들이 의료분쟁조정원의 역할에 부정적인 이유는?

의료분쟁조정원의 설치는 원래 의사협회에서 20여 년 전부터 강력히 요구했던 사안이다. 그렇게 원해서 의료분쟁조정법이 만들어지고 의료분쟁조정원이 설립됐는데 의사들이 조정의 참여에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변동사항들이 생기면서 독소조항들이 삽입됐기 때문이다.

첫째, 의료사고를 감정하는 감정부에 비의사들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의료사고에 대한 정확한 감정은 의사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사고를 감정할 때 감정단 5명 중 2명만 의사로 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 의사들은 치과의사, 한의사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며 2명 중 1명은 외국인 면허 소지자가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즉 비전문가들로 감정단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해외의 경우 이런 사례는 없다. 대부분 의사들로 감정단을 구성하거나 적어도 절반 이상을 의사로 구성한다.

유독 우리나라 의료분쟁조정법에서 감정단의 의사 비율을 낮춘 이유는 의사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의사들로 하여금 의료분쟁조정법을 불신하고 참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조정을 결정하는 조정부의 경우에는 5명의 조정위원 중 의사가 1명에 불과하다.)

둘째, 성과주의에 집착한 의료분쟁조정원이 분쟁조정 성과를 높이기 위해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무조건 조정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 의료분쟁조정원은 의료인의 과실이 없어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무과실의료보상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 재원 중 일부를 의사들에게 부담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의사들이 생각하기에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보완이나 해결 없이 의료분쟁조정에 참여를 강요하는 의료법으로 개정된다면 의사들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진료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절대 환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질문6. 그렇다면 의료사고의 해법은 무엇인가?

의료행위는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실을 수반한다. 과실에 의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이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해결 방안은 과실이 있는 경우 과실에 대한 인정과 보상뿐이다. 따라서 돈 문제, 즉 재원 마련이 핵심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운영하는 단일건강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건강보험에서 탈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건강보험 재정의 일부를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비용으로 책정해 의료사고 보상공단을 운영하는 방안이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해법이 될 것이다. 뉴질랜드가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과실이 발생할 경우 의료진에게 형사적 책임을 면책하거나 최소화하고 민사적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것이 의료진으로 하여금 의료사고를 부인하거나 감추지 않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대다수 OECD 국가는 의료사고의 통계수치를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의료사고와 관련한 통계자료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는 경우 전문지식이 없는 피해자나 유가족측은 속 시원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억울하고 답답해하며, 의사는 의사대로 보호받지 못해 언제 의료사고라는 크레바스에 빠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환자와 의사 양쪽 모두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의료사고 해법을 위한 조치가 매우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노환규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배철구 2016-12-04 12:07:30
촛불집회의 유튜브를 보다가, 신해철님이 돌아가신걸보고, 검색을 해 봤습니다.
(www.youtube.com/watch?v=2KIkjAcBorY)
제도와 현실의 문제점을 알기쉽게 설명해 주셨네요.
의료사고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법제도와 운용속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차이를 하나씩 매꾸어나가는 현명한 한국의 리더들이 많이 늘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www.goo.gl/jcblV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