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은 ‘돈, 돈, 돈!’ 전쟁이다
독립운동은 ‘돈, 돈, 돈!’ 전쟁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12.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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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은의 이승만 탐구] 이승만의 외교독립론①

식민지시대를 겪은 민족은 건국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은 그래서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외세에 지배를 당했던 다른 나라의 건국대통령들은 어떤 아픔과 인내와 고뇌로 나라를 세웠을까, 그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이 칼럼이 제공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

나라를 빼앗겨 총을 드는 것은 참으로 백성 된 자로서 마땅히 앞장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실천은 어렵다. 무장독립운동에는 첫째 돈, 둘째 돈, 셋째도 돈이 든다. 그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1900년 조선에서 하루 품삯이 30센트였다.

당시 출산율과 유아사망률 등을 고려해 가구당 가족수가 6인이라면, 하루 가장이 버는 돈을 가족수로 나눌 경우 1인당 하루 5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니 당시 선교사들은 조선에는 부자다운 부자가 없어서 학교와 병원을 지을 돈을 모을 수 없다고 미국 선교본부에 보고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1902~1905년 미주에 건너간 이주민은 5000명 정도였다. 이들도 낮은 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렸다. 일제가 강점한 1905년 이후에는 아예 이민 창구도 닫아버렸다.

미국 교포가 적어 채권판매의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목표로 하는 채권판매는 원칙적으로 불법이었다. 이것이 미국의 ‘청천법’(blue sky law)이다. (이승만이 이 법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우회했는지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돈을 조달한다 하여도 어디에서 군사훈련을 할 것인가. 박용만은 네브라스카에서 한국소년들을 모아 소년병학교를 세웠다. 이것은 미국 연방법에 위배된다. 1818년 4월 20일 미국의회를 통과한 법률이 있다. 이것을 보통 ‘1818중립법’이라고 부르는데 ‘항구적 입법’으로 일제시대에도 유효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평화관계에 있는 외국 군주의 영토나 지배자를 목표로 그곳에서 수행하려는 어떠한 군사적 원정이나 계획을 시작하거나 착수하거나 그 수단을 제공하거나 준비하는 자는 유죄이다. (2) 미국 관할 내에서 외국 군주, 식민지, 지역, 또는 국민에 봉사하기 위한 임관을 수락하거나 이의 사령을 한 모든 미국 시민은 중한 범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한다. (3) 모병하거나, 스스로 입대하거나, 입대할 의도로 관할권을 벗어나는 타인을 고용하거나 구하려는 자는 유죄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 미국과 평화관계에 있는 일본 국왕을 목표로 군사적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조선 국민에 봉사하기 위한 임관도 안 된다. 그러한 목적으로 모병도 안 된다.

1818중립법은 계속된다. (4) 어떤 선박의 장비를 갖춰 무장시키는 자, 이를 시도하는 자, 또는 설비하거나, 개조하거나 무장하는 데 고의적으로 관여하는 자는 유죄이다.

(5) 이러한 군함, 순양함, 기타 무장 선박의 화력을 증대, 증강시키는 자, 증대되거나 증강하도록 조달하는 자, 또는 증대시키거나 증강시키는 데 고의로 관여한 자는 유죄이다. (6) 세관원은 명백히 군사목적으로 건조됐거나 장비를 갖춘 모든 선박은 압류한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설혹 몰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해도 조선까지 그들을 싣고 갈 해상수송수단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강제로 비밀리에 하는 자는 유죄이다. 설사 운 좋게 병사와 무기를 실었다 해도 그 선박을 방문하고 수색할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무기와 병사는 전쟁금지목록에 속한다.

이 법에 추가해 타일러 대통령은 1941년 캐나다 접경인 미국 북부에 비밀집회, 동아리, 모임, 협회를 금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1850년과 60년대에 대통령은 서인도, 중미, 캐나다의 반란에 무기를 돕는 행위를 금하는 법률도 선포했다.

미국이 이 법에서 의도하는 것은 국민의 단결이다. 미국은 여러 민족의 집합체이다. 만일 민족마다 그 형편과 사정에 호소해서 군대를 만들도록 허용하면 미국 군대의 단합이 깨진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당시 미국에는 나라가 없는 한국민족뿐만 아니라 아일랜드민족, 체코민족, 슬로바키아민족, 아르메니아민족, 폴란드민족, 헝가리민족 등이 있었다.

이 1818중립법의 중요성은 이것이 1819년 영국의 외국모병법과 그 후 여러 유럽국가의 형법에서 채택됐던 유사한 법률의 기초가 됐다는 데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전쟁금지제품과 모병을 제한하면 식민지는 무기와 병사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

 

‘가재는 게 편’인 세상의 외로운 싸움

무장투쟁의 남은 방법은 한 가지. 모병금지법을 채택하지 않은 국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중국과 소련뿐이다. 그러나 소련은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소련에 주둔하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무장해제를 명했다.

만주사변으로 국제연맹에서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때 드러난 사실은 중국이 만주에 있는 조선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토지가 없으면 군사훈련은 불가능하다. 이 보고서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사실은 소련도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소련이 일본과 우호적일 때는 한국인이 보호받았지만 적대적일 때는 학살당했다.

추가해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동병상린 관계였다. 가재는 게 편인 세상이었다. 이승만은 이 모든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증거가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바, 위에서 인용한 문장의 출처가 그의 논문이다.

앞서 독립전쟁에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호소한다. “얼마 안 되는 무력을 써버려 장래에 원기를 다 탕비해 놓고 앉아 만 리 같이 창창한 독립운동의 길을 어찌 하고자 하느뇨.” 그에게 남은 길은 한 가지.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의 양심에 호소하는 외교독립방략뿐이었다.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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