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와 ‘지라시’ 뒤에 숨은 진실은?
‘십상시’와 ‘지라시’ 뒤에 숨은 진실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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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뿜어내는 독기와 독설에 국민은 귀가 따갑고 눈이 아프다.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청와대 3인방 비서관들과 정윤회 씨, 그리고 자칭 ‘짖는 개’라는 공직기강 비서관과 대통령의 남동생이 ‘지라시’를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국민은 없었다.

사건의 요체도 본질도 파악하기 어렵다. 청와대 공직기강실의 감찰 문건이 어느 날 ‘지라시’라 불리더니 청와대 파견 경찰관이 자살하는 황당한 사건도 벌어졌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건의 줄기에선 밝히고 숨기고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곁가지들이 생성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청와대 비선 실세 투쟁은 ‘왜?’라는 물음이 생략돼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란한 사건은 결국 ‘나는 결백하다’고 처음 주장했던, 그 지라시 문건의 작성자 박관천 경정의 단독 조작극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규명돼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다. 박 경정에게 적용된 죄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용서류 은닉, 무고죄 등이다. 정씨의 박 회장 미행설이 담긴 허위 문건을 박 회장에게 전달한 데 대해서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단지 경찰에 불과한 그가 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언론에 문건을 유출했다는 최 경위는 정작 유서로 자신의 억울함을 고하고 자살했다. 마치 한편의 서스펜스 음모 영화 같은 이 사건에서, 정윤회와 박지만은 마치 영화 포스터 속의 주인공이나 되는 듯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역사의 라이벌이라도 되는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에 의해 기용된 사람들이 역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왔다는 점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마치 부당한 인사개입인 양 언급했고,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대통령이 지라시 수준이라고 말한 문건에 대해 ‘6할 이상이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 관측통들은 청와대에 파견된 박 경정이 자신의 상관인 조 전 비서관을 이용해 반대세력으로 여겼던 청와대 ‘실세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정윤회 씨, 박지만 EG 회장 등을 서로 이간질시켜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사전 기획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나름 능력을 인정받는 데다 저돌적이고 인정 욕구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박지만 회장을 중심으로 정윤회 씨와 비서관 3인방을 축출하고 좀 더 권력의 핵심부로 다가가려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양천그룹(박관천·조응천) 내에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세계일보의 특정 언론인도 이 기획에 가담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아무런 언급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측근들의 권력 암투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벌어진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지지율이 바닥이라는 30%선에 접근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떤 묘수를 쓰더라도 대통령이 입은 권위의 상처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다.

▲ 박지원(왼쪽)과 정윤회(오른쪽)


‘외교적 문제’ 확산은 경계해야 할 일

무엇보다 정윤회 씨와 특별한 관계를 언급했던 산케이신문 보도는 재판 과정에서 그 변수가 더 커졌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재판중인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추문 의혹 보도에 대해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제3자의 명예훼손 고발 사건임에도 아직 처벌을 원한다든지, 아니라든지 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터진 이번 사건으로 정윤회 씨는 비서실 3인방과 보이지 않는 비선 실세를 형성하고 있음이 모두 공개됐고, 대통령은 산케이신문 재판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을 맞게 됐다.

이 재판에서 산케이측이 무죄가 될 경우, 대통령은 국제적 망신을 당할 처지다. 유죄가 난다면 산케이신문은 항소할 것이고, 이미 이 사건을 ‘외교적 문제’라고 말한 일본과의 관계는 더 첨예해 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든 비선이 없는 집권세력은 없다. 정치권력의 속성상 최고 권력의 주변에는 어떤 형태로든 정무조직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공식적인 자리에 있는 자들로 이뤄진 조직인지, 아니면 비공식적 자리에 있는 자들로 꾸며진 비밀조직인지의 차이만 존재한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도 자신의 동생을 보이지 않는 정무 책임자로 활용했다.

미 중앙정보국 내 비선조직, 이른바 ‘팀B’는 CIA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활동하지만, CIA의 전략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교란하는 테스터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음모론으로 지목하는 많은 루머들이 다름 아닌 이 ‘팀B’에 의해 흘러나온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문제는 비선이란 그야말로 비선이야 한다는 것이고, 이 비선조직에 의한 정무 결정 역시 모두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비선그룹의 행위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 순간, 대통령의 모든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며 ‘고통이 끝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한 박근혜 대통령은 현명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국정농단 지라시 사건은 하루속히 정리가 돼야 한다. 이 사건은 결국 양천모임이라는 친 박지만 회장 그룹의 패배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통령은 어쨌든 자신과 오래 일해 온 그룹의 손을 들어준 정황이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지만 회장도 결심을 해야 한다. 서운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며, 더 이상 대통령의 권위가 손상되는 일들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박지만 회장은 차라리 자신의 모든 활동과 가산을 정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동안 대통령을 떠나 있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장기간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레임덕에 의한 여러 공격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 한 가운데 박지만 회장도 있다.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유지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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