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미국을 믿게 된 이유
이승만이 미국을 믿게 된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4.12.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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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은의 이승만 탐구] 이승만의 외교독립론②

청년 이승만은 러시아와 일본을 믿지 않았다. 미국도 믿지 않았다. 그는 미국 선교사의 입국이 상인을 불러오고 이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대가 파견된다고 생각했다.

그럴 의심을 할 만한 것도 알렌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한 이래 언더우드, 아펜젤러, 에이비슨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 공사관에도 해병대가 파견됐다. 인천과 서울에는 미국 상사가 입점했다. 때마침 하와이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병탄됐다. 그는 말한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한 직후 우리 한국인들은 어떻게 선교사들이 하와이 군도에 가서 원주민들을 다수 기독교로 개종시켰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선교사들 뒤에 미국 기업가들이 따라와서 원주민과 장사를 하면서 원주민들에게는 별로 이익을 끼치지 않고 자기들만 치부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그리고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기 조금 전에 미국 정부가 이 섬들을 모두 병합해 그 영토의 일부로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하와이의 여왕이 폐위됐음을 알았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은 당연히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똑같은 운명이 계획된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으로 하여금 문호를 개방하고 통상을 하도록 강요한 다음 선교사들이 왔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교와 통상의 원리를 깨닫다

▲ 테오도어 루스벨트를 접견할 때의 청년 이승만

그러나 이승만은 곧 선교와 통상에서 평화적 공생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이) 아직까지 부지하여 온 것은 다 외국들이 교제상 서로 관계한 형편에 달려 된 것이라. 만일 지금껏 통상이 아니 되었다면 어떤 강한 나라가 무슨 욕심을 부렸을는지 알 수 없을지니 오늘날 이 뜻을 깨쳐본 즉 전일에 까닭 없이 남을 의심하던 것이 어찌 어리석지 않으리오.”

이승만이 미국에게 영토적 야심이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대신 미국이 조선을 시장으로 본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이 생각의 대변화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가 감옥에서 쓴 글에 잘 표현돼 있다.

“옛적에는 각국의 다툼이 항상 병역으로 위주 하여 경의를 물러내고… 이기는 자는 토지를 차지하여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성공하여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투는 일뿐이니 근래에 각국이 교화로 위주 하매 공법과 경리로 조처하는 도리가 있어 화평을 보전하기 힘쓰니… 상업을 힘쓰는 나라들은 세상이 두루 평안 무사하기를 바라며… 남의 나라가 약해져가는 것을 더욱이 근심해 아무쪼록 붙들어 강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바이다.”

영토보다는 시장을 원하며 약해진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바는 그 나라에 보다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함이다. 이것이 통상의 장점인데 이것은 식민지가 모국에서 독립해야 비로소 가능하며 미국에게 영토 야심이 없는 이유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가혹한 배상금을 부과한 베르사유 강화회담을 보고 케인스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책으로 항의한 것도 같은 내용이다. 독일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이웃 국가들의 매출이 동반하락하기 때문이다.

그 교훈으로 2차 세게대전의 종결에는 마샬 플랜으로 독일시장을 살렸다. 이승만은 반세기 전에 이 점을 깨달은 것이다. 후일 이 깨달음을 학문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그의 박사학위논문 <미국 영향하의 중립>이다.

여기서 중립은 전쟁 상태에 있지 않는 비교전상태를 의미한다. 그의 논문은 비교전국가(미국)가 전시에도 교역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이를 반대하는 영국을 제압하고 성취돼 가는 초기 통상법제사를 추적한 것이다.

그의 학위 논문은 아담 스미스의 언급에서 시작한다.

“아담 스미스 시대 이전에는 오랫동안 유럽에서의 통상의 기조는 무력의 문제였지 권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의 식민 모국은 영토를 점령한 자신의 식민지 시장을 다른 나라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신생 독립국 미국은 최대 농산물 생산국이었는데 시장이 매우 제한됐다.

미국은 모든 지역에 자유로운 시장접근을 원했고, 이것은 식민지들이 독립국가로 전환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은 영토 점령보다도 시장을 원했던 것이다.

독립 이후 미국의 역사는 모든 나라가 식민제도를 청산하고 자유롭고 우호적으로 통상하는 제도를 범지구적으로 구축해가는 역사이다. 영국 식민지 스코틀랜드 백성인 스미스가 이 점을 꿰뚫어본 경제학자이다.


미국은 영토보다 시장에 관심

스미스는 호소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독립시키면 “대영제국은 그와 평화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에서 헤어 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자유통상으로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그러므로 “타국을 정복하는 것보다 통상을 하는 편이 낫다.” 필리핀 총독을 지낸 우드 장군이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온 세계의 식민지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들끓는 식민지 문제의 책임을 윌슨에게 돌렸을 때 이에 대해 윌슨은 미국 정부 역시 필리핀의 독립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고 답변했다.

카네기는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2000만달러에 인수한 필리핀에 2000만달러를 기부할 것을 제의했지만 필리핀은 반응하지 않았다. 카네기는 왜 그랬을까. 자유통상의 능력을 갖춘 독립국으로 전환되는 식민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미국에는 시장이 되어 이익이 되나니 미국이 영토적 야심이 없는 근본 이유가 된다.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도 그의 저서 <보편적 영구평화계획>에서 영국을 필두로 모든 식민 모국이 과감하게 식민지를 청산할 것을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문제가 식민지의 독립 승인과 그들의 권리 인정이었다. 여기에 근거해 이승만이 한국의 독립 권리를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에 집요하게 추궁한 것이 그의 외교 독립론이다.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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