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이가 의료사고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기를…”
“종현이가 의료사고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기를…”
  • 미래한국
  • 승인 2015.01.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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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청진기]

2010년 5월 19일, 만 8살 종현이는 어느 대학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위한 12사이클의 항암치료 중 마지막 항암주사 두 대를 맞았다. 그 주사가 끝이었다. 이제 이 주사만 맞고 퇴원할 예정이었다. 항암주사는 2개였다. ‘시타라빈’이라는 항암제는 척수강에, 그리고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는 정맥주사를 통해 투여될 예정이었다.

주사가 들어간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뛰어다니던 소아청소년과 1년차 전공의는 2개의 항암제 중 하나를 정맥주사로, 그리고 또 하나는 척수강에 주사했다.

그런데 2개의 항암제가 투여되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난 후 종현이는 엉덩이 부위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통증은 진통제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점차 사지의 마비가 진행됐다. 다리부터 시작돼 상체로 진행되는 상행성 마비였다.

콩팥기능도 상실됐다. 이틀이 채 안 돼 중환자실로 옮겨진 종현이는 곧 의식을 잃었고 1주일만에 사망했다. 마지막 항암제 주사를 맞은 지 9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종현이 부모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의료진은 급성뇌수막염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드물게 나타나는 시타라빈의 부작용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몸에 차마 칼을 댈 수 없었던 부모는 부검을 하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고자 애를 썼다. 그리고 그들은 종현이가 맞았던 두 개의 항암제 중 하나인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가 정맥주사가 아닌 척수강으로 주입되는 경우 종현이와 동일한 증세가 나타나고 거의 모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종현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사망한 사례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에서도 10건 가까이 동일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현이에게 2개의 항암제가 서로 뒤바뀌어 주입됨으로 인해 종현이가 사망하게 됐다는 확신을 갖게 된 부모는 의료진에게 의료사고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의료진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던 종현이 부모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부검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였다. 의료사고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양심고백, 종현이 의료사고 진실로 드러나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종현이의 치료과정에 참여했던 의료진 중 한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종현이 부모에게 진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는 종현이에게 주사제가 들어간 직후, 의료진도 2개의 항암제 주사가 뒤바뀌어 들어간 것을 의심했다는 사실을 종현이 부모에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항암제 주사 직후 척수강 안에 들어 있는 척수액의 세척을 시도했었다는 사실과 병원측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혹시나 했던 의심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종현이가 사고를 당하기 이전에도 10여 명 가까운 이들이 똑 같은 이유로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같은 사고가 반복돼 아들이 희생된 것은, 의료사고가 일어난 후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혈병환우회를 찾아 이 사정을 호소했고, 2011년 5월 당시 안기종 백혈병환우회장에 의해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약 7000여명의 의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의사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전국의사총연합의 대표였던 필자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무려 6개의 대학병원이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진실은 감춰지지 않으며 그 무엇도 진실은 이길 수 없다.

모든 의사들이 입을 닫고 진실을 감추는 편에 선다면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떨어질 것이며 그것은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 이유는 종현이의 사망 원인이 명백한 의료과실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종현이는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주입됐을 때의 매우 특이하고 특징적인 임상적 경과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세번째 이유는 의료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일어났는데, 그때는 아침 일찍 근무를 시작하는 전공의들이 피로에 지쳐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이다. 이번 의료사고의 주범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환자 편에 선 의사들

전국의사총연합의 운영위원들은 이 의료사고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진실의 목소리를 낼 것인지를 두고 회의를 했다. 새벽 4시에 이뤄진 마지막 투표에서 찬성 19명, 반대 1명으로 전국의사총연합은 이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결정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먼저 병원측에 편지를 보내 이번 사고가 의료과오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할 것, 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측은 이를 거절했다 .

그러자 전국의사총연합 대표는 병원 앞에서 두 차례 1인 시위를 했다. 의사가 가운을 입은 채 대학병원 앞에서 의료사고의 진실을 고백하라는 매우 이례적 광경이 벌어졌다.

1인 시위까지 강행하며 병원을 압박했던 이유는 당시 이 사건이 공중파 방송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의사들이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보도가 되면 또 다시 의사들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원은 끝내 진실을 외면했다. 법원의 감정 요청을 받은 대학병원들이 감정을 거부하는 바람에 재판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해가 바뀌어 2012년이 됐다.

그 사이 전국의사총연합의 대표였던 필자는 의사협회장이 됐고, 사건을 촬영하고도 기자들의 파업 때문에 방영을 미뤘던 MBC는 파업이 종료됨에 따라 방송을 내보내게 됐다.

그런데 방송이 임박했는데도 병원측이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자 이번에는 의사협회가 나섰다. ‘종현이 사건은 명백한 의료사고’라는 성명을 내고 의사들이 성금을 거둬 유가족에게 소정의 위로금을 전달한 것이다.

병원측도 태도를 바꿨다. 방송이 나가기 하루 전날, “의료사고의 개연성이 있다”고 사실상 의료과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고 방송이 나간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유가족에게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병원은 유가족과 합의했고 소송은 취하됐다.

   
 

음주운전만큼 위험한 전공의의 수면 근무

현재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48시간을 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미국의 경우 최대 80시간이다. 우리나라 전공의의 경우 1년차의 평균 근무시간은 100시간을 넘으며 외과계열의 경우 120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만큼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전공의의 졸음 근무는 얼마나 위험할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가 코 수술과 편도선 쪽 수술을 한꺼번에 받았다. 수술 당일 밤에 출혈이 생겼다. 병원에서 전공의에게 콜을 했는데, 전공의가 피곤해서 자느라 못 받았다. 대처가 늦어져서 환자가 사망했다.”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일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밤새우고 잠을 못 자면 술 취한 상태와 비슷하게 된다. 의료진의 성의나 도덕성 문제로 돌릴 일이 아니다.”

“무리하게 환자를 많이 받아 항암치료를 하다가 적정 용량의 10배를 투약하기도 했다.”

이상은 어느 기자를 만난 전공의들이 토해 놓은 솔직한 고백들이다. 종현이가 겪은 사건과 유사한 의료사고들이 실제로는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고백하지 않았을 뿐이고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 열악한 수련 환경에 대해 전공의들의 반발 조짐이 있자 정부가 전공의 최대 근무시간을 88시간으로 제한하는 지침을 만들었지만 이 지침은 유명무실하다.

그 이유는 전공의의 근무환경을 포함한 수련환경을 평가하는 주체가 전공의를 고용한 병원협회이기 때문이다. 감사를 받아야 하는 피감자가 감사를 하는 주체가 돼 있으니 평가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왜 우리나라 전공의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힘든 중노동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정부는 왜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낮은 건강보험수가 아래서 박리다매와 비보험으로 병원경영을 유지해야 하는 기형적인 건강보험제도 때문이다. 원가를 밑돌고 있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수가의 수준은 OECD 평균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보험수가 아래에서 병원이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낮은 인건비’가 필수조치다.

그래서 병원들마다 해마다 더 많은 전공의들을 채용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모든 병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의가 채용되면 교육은 뒷전이고 오직 진료업무에 투여하기 위한 저가의사인력으로 사용하는 병원들도 많다.

병원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최근 몇 개 대학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이 수련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공의의 무리한 근무환경 개선에 대해 정부가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전공의의 무리한 근무환경이 ‘낮은 건강보험수가’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전공의 근무환경을 비롯한 수련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일반 업무를 담당하는 더 많은 의사(hospitalist)를 고용해야 한다.

그러자면 인건비가 증가하고 병원은 현재의 낮은 건강보험수가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기형적 건강보험제도에 희생되는 국민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호주머니를 더 많이 열어야 할까? 아니다. 국민은 이미 많은 보험료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사실 큰병이 생기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각종 비급여 부담이 많아 의료비 부담이 적지 않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또 가입해 건강보험료 외에 민간의료보험료의 이중지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싼값으로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생색을 내는 동안 대형병원은 진료비를 적게 주는 건강보험공단의 횡포에 적응하느라 전공의에게 무리한 근무를 요구하고, 이는 곧 사고로 돌아오고 있다.

사실상 종현이 사고의 주범은 저수가로 인해 충분한 의료진을 가용할 수 없는 열악한 의료환경이었다.

저가노동자가 돼버린 전공의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주사를 놓아야 하는 환경, 이를 이중 점검할 간호 인력을 두기 어려운 의료환경이 사고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의료사고가 일어나는 경우 의사와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한 것, 이로 인해 의료사고의 발생을 보고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

종현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노력은 환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환자안전법 제정’으로 확대됐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환자안전법에는 국가적인 환자안전관리종합계획의 수립, 국가환자안전위원회의 설치, 환자안전사고에 대한 보고시스템 구축, 환자안전전담인력배치에 대한 의무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환자안전법의 추진 과정에서 종현이 사건의 원인이 됐던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수련환경개선 부분이 누락됐다.

사건의 원인이 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빠진 것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의 개선은 기형적인 건강보험제도의 개선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여전히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지금의 기형적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은근히 전공의들이 희생을 감수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의 희생은 환자의 희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정부는 입을 닫고 있다. 의사들마저 입을 열지 않으면 기형적인 건강보험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의사들이 입을 열 때다.

 

노환규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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