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감동이 사라진 무대
영화의 감동이 사라진 무대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5.01.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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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컬계의 2015년 첫 대작’, ‘역사적인 아시아 초연’

지난 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개막을 앞두고 붙은 수식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초는 1936년 출간된 마거릿 미첼의 원작소설로,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명작이다.

3년 후 제작된 동명의 영화는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배우 비비언 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줬으며 이를 포함해 무려 10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는 기네스 기록도 세웠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03년 제작된 프랑스 뮤지컬이 그 원조다. 이 공연은 프랑스 최대 공연장인 ‘팔래 데 스포르 드 파리’ (Palais des Sports de Paris)에서 단 9개월 만에 90만 명이 관람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영화보다 개연성이 부족한 드라마

한국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를 통해 많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번 국내 뮤지컬 공연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초연작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뮤지컬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한국 관계자들은 아시아 초연의 성사를 위해 프랑스 제작자, 미국 원작자 저작권 관리 협회와 긴밀한 협의를 벌인 끝에 라이선스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책, 영화, 원작 뮤지컬을 통해 입증된 명작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막상 무대를 올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감동보다 아쉬움 가득한 무대였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원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철없는 명랑 소녀 스칼렛 오하라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겪어내는 인생의 역경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는 역경을 통한 스칼렛의 성장, 평범하지 않은 복잡한 사랑, 전쟁의 참상 등 수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국내 초연의 막을 올린 뮤지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인터미션을 제외한 순수 러닝타임은 140분이다. 이는 일반적인 뮤지컬의 평균적인 공연 시간이지만, 뮤지컬의 제작 모델이 됐을 영화의 러닝타임이 222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많은 메시지가 내포돼 있는 드라마를 디테일하게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적 무리가 느껴진다.

짧은 시간에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원작이 담은 중요한 주제들이 크게 함축돼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이 지닌 주제의 깊이를 살리지 못하고 전개 과정도 지나치게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처럼 드라마 사이의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보니 극의 단절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명장면과 명대사 역시도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레드 버틀러와 오하라의 키스 장면, 오하라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의 외침에서 전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요소다.


아쉬운 배우 역량과 MR사용의 한계

이번 공연을 앞두고 가장 큰 기대와 관심을 모은 인물은 바로 주진모다. 그는 이번 작품의 버틀러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화려한 데뷔를 했다.

그의 인기는 뮤지컬 흥행에 영향력을 주는 적지 않은 요소다. 뮤지컬 개막과 동시에 아시아 지역의 많은 외국 팬들이 객석을 찾은 이유 속에 주진모의 티켓파워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공연이 막상 시작되자 그에 대한 기대감은 아쉬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가 정상급의 연기력을 갖춘 명실상부한 ‘배우’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로 이제 막 데뷔한 주진모는 다소 아쉽다. 연기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노래를 통한 연기를 해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중요한 발음이 문제다. 부정확한 발음은 가사 전달력의 문제를 일으켜 관객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전해주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주진모 외에 함께 버틀러 역을 맡은 임태경과 김법래는 주어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스칼렛 역의 바다도 검증된 배우인 만큼 아쉬운 드라마의 구성 속에서도 다각적인 내면의 연기와 노래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더블 캐스팅된 서현 역시 데뷔작 <해를 품은 달> 이후 월등히 성장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뮤지컬 넘버가 오케스트라 연주가 아닌 MR 재생을 한다는 라이선스 계약 조건도 공연 몰입에 핸디캡 요소로 작용한다. 뮤지컬 속 오케스트라 연주는 생생한 라이브 음향과 배우들의 연기를 결합시켜 관객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MR이 사용되면서 배우의 대사가 노래에 묻혀 전달력을 흐리는 바람에 관객들의 무대 집중을 시종일관 불편하게 한다.

반면 연출은 세밀한 구성을 자랑한다. 세트는 세밀하고 웅장하며 남북전쟁의 배경과 무도회 장면 등 시각적 요소는 화려하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아깝지 않다.

의상 역시 훌륭하다. 특히 스칼렛의 커튼 드레스는 정말 압권이다. 이와 같은 화려한 연출 구성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몰입시키지 못한 극 요소의 한계가 아쉽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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