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원유가격 위협하는 미국의 셰일가스
중동 원유가격 위협하는 미국의 셰일가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1.31 0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너지 전쟁]
 

미국 경제에 훈풍이 불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성장률 신호에 파란불이 계속 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가스로 인한 에너지 혁명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실제로 중동원유가격은 미국의 셰일가스 붐으로 인해 배럴당 100달러에서 60달러 선이 위협받고 있다. 중동정세의 불안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가격은 반등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 대부분의 견해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지나 포브스에는 연일 미국의 셰일가스가 미국 경기의 회복을 가져오고 있으며 특히 해외에 나갔던 생산기업들이 미국 내로 돌아오는 ‘on shore’ 현상이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모든 것이 장밋빛이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숨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지만 정말로 사악한 악마는 ‘원리’에 숨어 있다.


에너지는 자원무기가 될 수 없다

인류의 경제발전과 생활은 자원이 싸지거나 풍부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인류는 가혹한 자연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도구와 지식을 개발하면서 진화해 왔다.

형질 인류학에 의하면 선사시대 인류는 한 종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들 간의 경쟁에 의해 형성됐다. 그 가운데 가장 혹독한 환경에 놓인 인류의 종이 도구를 진화시키면서 살아남게 됐다.

항상 부족하기만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색은 ‘Economy’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그러한 경제의 개념은 시장(market)을 통한 교환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근대 이후 세계는 막대한 상품과 서비스를 국가 간에 자유롭게 교환하는 글로벌 경제를 추구해 왔지만 이 가운데는 미신적인 재화도 있었다. 바로 에너지와 식량이었다.

각국의 정치가들과 학자들은 ‘에너지 안보’라든지 ‘식량 안보’라는 개념을 만들어 가격과 관계없이 이들을 선구매해서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에너지주권과 같은 기이한 개념이 정당성을 인정받기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은 그러한 ‘에너지 안보’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국가였다. 자유무역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장 발전한 나라이며 심지어는 중동에 맞먹는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미국이지만 지금까지 에너지 관리법에 의해 자국의 석유 수출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

 

그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미국이 만일 자국의 석유를 수출하다가 전쟁이나 유가파동 등의 위기에 직면하면 막상 국내에서 사용할 에너지 부족으로 심각한 곤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에너지가 자원무기가 될 수 있다면 식량은 왜 안 될까.

독일은 자국이 원자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유럽 각국에서 전기를 사다 쓰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판단 하에 원전건설 중단을 국책사업으로 발표했다.

EU 전 국가가 담합해서 독일에게 전기를 팔지 않는 한, 독일이 전기 부족으로 국가위기에 처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 그런 판단의 토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관습적 지혜는 19세기 초반 영국이 프랑스 나폴레옹의 해상봉쇄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곡물법을 폐지했던 사례가 말해준다.

어느 나라든 영국에 곡물을 팔면 사겠다는 말에,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유럽봉쇄를 비웃으며 영국에 곡물을 대량을 팔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보복전을 폈으나 패했고 그 결과는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석유수출금지법도 그런 면이 있다. 중동은 OPEC 담합을 통해 석유를 무기화하려 했지만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강제적 진입규제가 없는 시장에서 독점은 이뤄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자국의 석유를 일찌감치 해외에 수출하는 전략을 썼어야 한다. 그랬다면 지금의 중동이 저 모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유전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중동전 개입도 없었을 것이고 9.11테러와 같은 세기말적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정책’이 최고 에너지 정책

미국의 유력한 시장경제 싱크탱크인 CATO연구소는 “가장 좋은 에너지 정책은 무정책”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있다. 석유나 에너지도 일반 재화처럼 자유롭게 시장에서 거래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CATO연구소는 미국의 에너지 보호 정책이 결국 셰일가스나 셰일오일의 해외수출도 금지시킬 것이며 그로 인해 미국 내 석유공급은 포화상태가 돼 셰일가스 기업들은 기술발전과 효율적 생산의 진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구나 셰일가스와 같은 화석 에너지는 지구 온난화라는 아젠다로 무장한 녹색주의의 주 공격대상이 될 거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세계기후협약은 논란이 많은 사이언스 포퓰리즘에 끌려가는 경향이 있다.

정치가들이나 언론은 그런 포퓰리즘을 통해 비즈니스와 권력의 기회를 끊임없이 탐색해 왔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녹색주의로 갈아탄 지 오래이며 이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 셰일가스로 옮겨가게 될 거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셰일가스 기업들이 환경기술을 적용해서 채굴로 일어나는 환경오염과 같은 불경제 요인을 저감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셰일가스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과거처럼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하느냐는 의문이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중동원유가의 하락을 이끌어서 오히려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인 중국에게 호재를 안겨줬다. 낮은 셰일가스의 가격이 유지된다면 중동의 원유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제조업의 부활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한국에서는 비효율적 산업들이 효율적 산업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을 흡수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낮은 에너지 가격이 대세라면 우리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전반적인 산업구조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과거처럼 기우제 지내듯이 하고 있다가는 말레이시아나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들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경제는 자원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제도가 발전시킨다. 자원이 싸고 풍부하다고 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라면 아프리카는 왜 여전히 후진국이고 중동은 그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판매하면서도 여전히 국민들의 삶은 고단한지 설명하지 못한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