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르헨티나와 닮은 ‘아시아의 라틴’입니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닮은 ‘아시아의 라틴’입니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5.02.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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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세계여행40] 호르헤 로발로 아르헨티나 대사

축구와 탱고, 그리고 뮤지컬 ‘에비타’와 감동적 음악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통해 드러나는 격동의 현대사. 아르헨티나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50,60년대 불었던 ‘선진국’ 남미로의 이민 행렬이 떠오르기도 한다.

올해는 아르헨티나 이민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8일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로발로(Jorge Roballo) 대사를 만나 양국의 현안과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대해 들어봤다. 

   
▲ 호르헤 로발로 아르헨티나 대사

-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수교를 한 지 50년이 넘었지요. 먼저 양국의 외교적 관계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1962년에 수교를 했으니 양국의 공식적 관계는 올해로 만 52년이 됐습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수교관계가 체결되고 한국전쟁의 여파가 끝나갈 무렵인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많은 한국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왔습니다.

그러한 추세는 80년대에까지 이어졌지요. 당시 집계된 한국인 이민자의 수는 4만~5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 중 많은 수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90년대 후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는 3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통계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내 한국 교민들은 모범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투명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민 초기부터 잘 조직된 한인단체를 형성해오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분류된 한인단체는 전국 통합 단체에 속해 있고 각 단체의 지도자들을 통해 합법적인 이민 절차와 정착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이민 초기 한국인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점차 방직 업종으로 이동해 현재는 이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이민 50주년

- 양국이 갖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요?

양국은 수교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국제적 이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 왔습니다. 특히 유엔 등 국제기구와 여러 국제포럼에서도 아르헨티나는 한반도의 통일과 비핵화 그리고 인권 문제에 관련된 부분들을 지지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양국이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한국은 포클랜드 섬 관련 분쟁 때와 같이 국제적인 문제가 있을 때 여러 번 아르헨티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좋은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지요.

- 한반도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북한인권에 대한 결의안이 최근 UN 총회에서 통과되고 안보리까지 회부됐습니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아르헨티나는 과거 독재 정권과 수차례의 군부 쿠데타를 통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통해 인권의 피해와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1983년 민주화 이후 아르헨티나는 라울 알폰신 대통령의 통치 하에 인권 신장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은 인권 보호 단체들이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물론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한국 등 기타 국가와 인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는 현재 북한과 수교하고 있지 않은데 기록을 보니 흥미롭게도 1973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가 불과 4년만에 관계를 단절했더군요. 당시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시 구체적으로 북한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만 외교관계가 있었던 그 짧은 기간에도 고위급 회담이나 공관 설립 등 제대로 된 교류도 없었기에 정상적인 수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에 대해 잠시 문호를 열었던 건 망명에서 돌아온 후안 페론의 2기 좌파 정권 때이며 정권이 교체된 이후 북한에 대한 모든 관계가 즉시 차단됐던 겁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인데 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와 북한과의 정치적 채널은 모두 닫힌 상태이며 우리는 북한에 대해 인권 문제를 개선하고 비핵화 등의 한반도 이슈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좌파 페론 정권이 북한과 수교, 포퓰리즘은 가치 중립적”

- 방금 언급하기도 하셨습니다만 아르헨티나 하면 먼저 떠오른 것 중 하나가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페론주의’입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의 온상, 혹은 그 근원지라는 오명과도 같은 인식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를 생각해 보면 페론 대통령은 국가 권력이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그가 추진했던 정책들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에 반대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포퓰리즘’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인식에서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정치를 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그 자체로 어떤 옳고 그름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부분은 포퓰리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포퓰리즘의 한계를 잊고 살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페론주의자인 키르츠네르 대통령과 영부인 출신의 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부 안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금년 말 들어설 차기 정부는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이번 정부의 좋은 부분들을 잘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 영화 ‘에비타’는 언제 봐도 감동적입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주인공 에바 페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후안 페론 대통령을 바라보는 인식과 차이점이 있는지요?

에바 페론과 후안 페론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에바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성 중 한 명이었지요.

후안 페론에 대해 논쟁이 있지만 그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확고한 주관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페론주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페론주의 운동은 이후 우파, 중도 그리고 좌파 등 여러 갈래로 나뉘었지만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르헨티나 인구의 30% 정도가 페론주의자라고 보면 됩니다.

   
 

- 다시 한국과 아르헨티나 양국 관계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양국의 경제적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한국의 경우는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반면 아르헨티나는 대외부채 상환을 중지한 디폴트 선언을 했던 2001년 무렵의 정황을 기억하신다면 아직도 경제적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데 라 루아는 사의를 표했고 두알데 대통령이 그의 자리를 이어받아 남은 임기를 채웠습니다. 후에 선출된 네스토 키르치네르는 경제를 회복 기조로 돌려놓았습니다.

임기 동안 기계들이 재가동됐으며 생산과 수입 수출이 늘어났고 국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발전 과정에서 혼란도 있었지만 성장에 동반되는 상승과 하락의 일부로 봅니다.

한국과 상호적인 관계를 생각하자면 우리의 무역 총액은 20억 달러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총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자동차와 휴대폰 등의 기기들을 주로 수입하고 있으며 한국이 필요로 하는 식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농림수산부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시장을 아르헨티나에 개방 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상하고 있습니다. 과일의 경우 최근 오렌지에 대한 시장 개방을 허락 받았으며 레몬과 귤에 대해서는 아직 협상 중에 있습니다.

- 한국정부는 남미의 칠레를 비롯 많은 국가들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고 있는데 한-아르헨티나 FTA 체결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세계의 모든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꼭 필요로 하는 일부 국가들을 선택해 체결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다른 남미 국가들이 FTA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만약 FTA가 시행될 경우 내수 산업시장이 고통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FTA 효용성에 의문, “한-아르헨티나 FTA 없을 것”

한국은 칠레와 10년 전 첫 FTA를 체결했지만 그 기간 동안 칠레는 자국 상품 5~6개 정도에 대한 승인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국과 FTA 체결하는 국가들이 1000여 가지 품목에 대한 협약을 맺는 것을 보면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잘 검토해야 봐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언제 FTA를 체결할 것이냐고 물어보지만 저는 그럴 있이 없을 거라고 답합니다. 그것이 어려운 또 다른 기술적 이유를 들자면 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체결된 일종의 자유무역 협약 때문입니다. 한국과 FTA 협의가 있더라도 우리는 단독이 아니라 공동으로 협약을 맺게 될 것입니다.

- 최근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작년엔 2001년 이후 13년만에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졌고. 근본적인 경제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007년 12월부터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국가 경영권을 넘겨 받았을 때 경제 상태는 좋았습니다. 그녀는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그녀는 재임에 성공했는데 두 번째 임기 기간에 했던 정치적 결정들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봅니다.

   
 

-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문화적 교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아쉽게도 양국 사이에 문화적 교류는 매우 적습니다. 올해는 첫 이민 행렬이 시작된 지 50년이 된 기념으로 아르헨티나의 한인사회에서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아르헨티나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현지에서만 이뤄집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지리적으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공연팀들을 위한 교통과 숙식을 제공해야 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갑니다. 예산적인 여유가 없어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K-pop은 아르헨티나 젊은이들 가운데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많은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이 한국 가요를 부르며 음악에 따라 춤을 춥니다. 한국 가요는 아르헨티나 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 한국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나 오해를 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를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 두 나라 국민들은 모두 축구도 좋아하고 춤도 좋아하는 등 많은 부분이 닮았습니다. 우리는 한국을 ‘아시아의 라틴’이라고 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우리가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듯 한국인들도 포옹과 키스를 하고 손을 잡아주는 등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잘 나타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다는 점도 느끼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 소비자들이 아르헨티나산 육류와 와인의 우수함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바랍니다. 한국에 오신 지 1년 반 정도가 되셨다고 하셨죠.

저는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시오네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학부과정을 마쳤고 1982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근무지는 도쿄였고 이후 베를린, 도미니카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재국을 바꾸기 전에 반드시 아르헨티나에서 근무를 하도록 하는데 이는 국내 사정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 때문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아제르바이잔에 첫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개척한 것입니다.

- 한국에 계시는 동안 남기고 싶은 업적이 있다면요?

한국의 시장을 개방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투자 자본을 아르헨티나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포스코의 경우는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미래한국TV'를 통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영상 링크 : http://youtu.be/jPFGzeznwnU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bskim@futurekorea.co.kr
정리/박종하 인턴기자 saintjoepark@gmail.com
사진·영상/이모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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