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IS에 속수무책인 이유 열쇠는 터키와 파키스탄에 있다
세계가 IS에 속수무책인 이유 열쇠는 터키와 파키스탄에 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2.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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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10대 한국인 ‘김군’이 가입하려고 했다는 테러 조직, 일본인 인질 2명의 몸값으로 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했던 테러 조직, 지금까지 수천여 명의 소수민족과 기독교도, 군인과 경찰, 관료를 처형한 테러 조직. 바로 IS, 즉 자칭 ‘이슬람국가’다.

테러조직 IS를 저지하기 위한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된 지 반 년이 다 돼가지만 그 효과는 예상보다 미미하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IS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은 분위기다.

최근 시리아와 터키 접경지역인 코바니 등에서는 IS가 퇴각하는 등 소소한 전과가 있었지만 이는 공습 직후 쿠르드 자치정부 소속의 노련한 민병대 ‘페쉬마르가’가 용감하게 전투를 벌인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공습만으로 게릴라 조직을 소탕할 수 없다는 것은 1970년대 베트남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테러조직 IS의 소탕을 바라는 중동 및 유럽 국가들은 지상군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제연합군의 공습을 이끌고 있는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꺼리고 있어 IS는 꽤 오랜 기간 활동을 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이런 가운데 안보기관 관계자들과 해외 언론들은 테러조직 IS가 엄청난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터키와 파키스탄 내부의 문제다.

터키는 알려진 것처럼 이슬람교도가 국민의 절대다수다. 그 가운데서도 대부분이 수니파다. 터키는 케말 파샤가 세속주의를 표방한 뒤 정치와 종교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 중동 전역으로 퍼지면서 불안한 움직임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IS는 어떻게 세력을 확장했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테러조직 알 카에다는 중동 전역과 아프리카 곳곳에 지부를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과 서방 정보기관들의 합동작전으로 대부분 소탕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1년 초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은 알 카에다를 넘어서는 테러조직 IS를 만들어 냈다.

테러조직 IS는 이슬람 가운데서도 수니파 살라피스트가 주도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IS의 두목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2003년 창설한 이라크 팔루자의 테러조직 ‘유일신과 성전’에 가담했다. 하지만 2006년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두목 아부 무사위 알 자르카위가 사살되자 조직을 이끌게 된다.

이후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유일신과 성전’을 알 카에다보다 더 종교 원리주의적인 조직으로 만든다. 그리고 2011년 재스민 혁명을 통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곳곳에 조직원을 심는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IS 조직원을 대폭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진 무슬림 형제단의 이념과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산 알 반나가 1920년대 이집트에서 설립한 무슬림 형제단은 1950년대 사이드 쿠틉이라는 종교학자의 논리를 통해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된다.

사이드 쿠틉이 내란 혐의로 이집트 정부에 의해 처형된 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에서는 큰 영향력이 없었지만 세계 곳곳의 이슬람 사회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 파키스탄 군학교 테러

여기에는 198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 이슬람을 포교하겠다고 나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후원에 파고 든 와하비즘(이슬람 근본주의 세계를 건설하자는 종교이념)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재스민 혁명 과정에서 리비아, 알제리, 이집트 등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나 IS가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잡았던 무슬림 형제단은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로 인해 조직이 와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권력을 세습한 알 아사드 정권은 재스민 혁명을 철저히 탄압했고 여기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한 ‘자유시리아군(FSA)’ 간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IS가 스며들 틈새가 생긴 것이다.

IS는 처음에는 알 카에다의 방계조직으로 위장, ‘자유시리아군’과 손을 잡는 모습을 연출한 뒤 배후를 공격하는 수법을 썼다. 이후 자유시리아군은 산산조각이 났고 IS는 시리아 곳곳을 장악하게 된다.

IS가 이라크에서 발호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미군 철수였다. 미군이 철수하자 그동안 숨어 지내던 사담 페다인 등 후세인 잔당 세력과 알 카에다 조직들은 곳곳에서 이라크 정부와 군대를 공격한다. 이때 이미 시리아에서 맹위를 떨치던 IS는 팔루자, 모술, 바그다드 인근에 있던 조직에서 활동을 명령한다.


터키인 1000여 명 IS에 가담

인구 대부분이 수니파인 이라크에서 수니파 살라피스트인 IS가 공격을 감행하자 거개의 이라크 경찰과 군인, 관료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한다.

주요 전략물자도 그대로 IS에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이라크와 시리아 주요 지역을 점령한 IS는 자칭 ‘이슬람국가’를 선포하게 된 것이다.

2014년 하반기 IS가 이라크 북부의 소수민족과 기독교도 수천여 명을 처형하고 수백여 명을 노예로 만들어 인신매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각국이 공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이에 미국과 유럽 각국은 IS 점령지역과 터키 국경 사이에 있는 쿠르드 자치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반 년 동안의 공습과 서방진영 최정예 특수부대들의 투입에도 IS 지도부를 처치하기는 커녕 그 세력이 줄어들지 않자 미국과 서방진영은 당황했다. 왜 그런지 이유도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2014년 말부터 그 이유가 서서히 드러났다. 바로 SNS를 통한 조직원 모집, 그리고 터키와 파키스탄의 IS 지지 세력이 문제였다.

 

SNS를 통한 조직원 모집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IS 조직원의 SNS 계정을 차단하는 조치도 취했다. 한국도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 사건’ 이후에는 ‘차단조치’를 선택했다. 하지만 터키와 파키스탄 문제는 미국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언론에는 잘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터키 내부의 IS 지지세력은 규모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학생 등 20대 가운데서 IS를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9월 하순 터키 이스탄불의 한 대학에서는 IS를 지지하는 학생들과 이를 비난하는 좌파 학생들 간에 충돌이 발생, 40여 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외신들은 “이스탄불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테러조직 IS를 지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며 이 사건이 단순한 학내 충돌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실제 터키 내부에는 테러조직 IS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넘쳐나고 있다. 터키 집권여당이 수니파 살라피즘 실현을 추구하며 세속주의를 벗어나려고 군부와 대결 중인 ‘정의개발당(AKP)’이라는 점도 IS 지지세력들이 거리낌 없이 나서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1월 10일 터키 남동부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사라진 ‘김군’이 SNS를 통해 접촉한 하산이 터키의 IS 지부 간부라는 것도 이런 터키 내부 상황을 이해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터키 내부에는 IS 지부가 16개 있으며 터키인 1000여 명이 이미 IS에 가담해 싸우고 있다고 한다. 일부 외신들은 ‘정의개발당’과 군부 간의 갈등 등 터키의 정정 불안과 국민들의 생활 불안 등으로 터키에서 IS 지지세력이 더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파키스탄 탈레반도 IS 지지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2014년 말 외신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던 파키스탄 탈레반(TTP)이 IS를 지지하기 시작했으며 IS를 위해 1만 명에서 1만5000여 명의 조직원을 모집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보냈다고 전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쫓겨난 탈레반 소수세력과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던 수니파 와하비스트 군소 테러조직 17개가 결합한 파키스탄 탈레반은 ‘신정일치국가’를 목표로 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살아 있던 2011년 초까지만 해도 알 카에다를 지지하며 곳곳에서 파키스탄 정부와 서방 국가 공관, 여학교, 복지시설 등을 공격했다.

하지만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이 미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 당하고 이후 탈레반 지도자인 뮬라 오마르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활동이 줄어들었다.

지도부가 사라지고 3년 동안 헤매던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슬람이 다스리는 국가를 만들겠다”며 실제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나타나자 열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그가 스스로를 ‘칼리프’라고 선언하며 충성맹세를 요구하자 이에 따르게 됐다는 것이다.

▲ 터키 이스탄불 IS 기념품가게 데일리 메일 특파원 트위터

IS가 출현한 뒤 파키스탄 탈레반은 과거 알 카에다를 지지할 때보다 더 과격한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12월 1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 주의 군 부설학교 테러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정부군의 군복을 입고 군 부설학교를 습격,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총격을 가했다. 이 테러로 140여 명이 숨지고 13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 당시 파키스탄 탈레반은 여성과 열 살 미만의 어린이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하거나 ‘처형’을 했다고 한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공식적으로 밝힌 테러 이유는 “파키스탄 군부가 우리 가족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서구식 교육을 받는 이단자들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신념을 가진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제 본격적으로 IS를 위해 조직원을 모집하고 현지에서 테러를 저지르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파키스탄 정부는 물론 주변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까지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IS 소탕을 위해 터키와 파키스탄에 ‘압력’을 가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문제가 생길 경우 그나마 세속주의적인 터키와 파키스탄까지 서방진영에 등을 돌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IS 소탕이 ‘이슬람 대 서방’의 전쟁으로 비춰져 세계 16억 명인 이슬람 전체와 싸우게 되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해체다.

이렇게 되면 서방국가들은 ‘패권’을 빼앗으려는 수니파 살라피스트와 이들을 지원하는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 세력들과, 전 세계를 무대로 ‘전선 없는 세계대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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