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살리는 길은 ‘개방’이다
K리그 살리는 길은 ‘개방’이다
  • 정용승
  • 승인 2015.02.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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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난 후 이렇게 불만이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차범근 감독이 중도 경질됐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쳤고 다음 월드컵을 기약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에는 축구 팬들이 분노해 심지어 엿을 던지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홍명보 당시 감독은 1년이라는 초라한 임기 기간만 채우고 불명예 퇴진하기 이르렀다.

최악의 월드컵이었다는 평가까지 들으며 귀국한 홍 감독은 또 한 번의 실수를 하게 된다. “왜 K리그 선수들을 선발하지 않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홍 감독은 “K리그 선수들은 B급 선수”라는 ‘황당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의도야 어쨌든, K리그 팬들에게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리그를 무시한 발언이었다.

이쯤 되면 감이 잡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시아를 호령하며 AFC에서도 인정한 아시아 1위 리그인 K리그는 겉만 1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실력을 인정받으면 바로 해외로 이적을 하는,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잠시 몸을 담는 ‘거쳐가는 리그’가 돼 버렸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이제는 유럽리그가 아닌 중동, 중국, 일본 심지어 동남아 리그로 이적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5 호주 아시안컵 명단에서 K리그 선수가 23명 중 단지 5명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쟁력 잃은 K리그

물론 몸값을 더 받기 위해 이적을 하는 선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선택이고 그들 스스로가 원해서 이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왜 K리그는 경쟁력을 잃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K리그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K리그는 외국인 골키퍼 영입을 금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은 ‘신의 손’(現 부산아이파크 골키퍼 코치)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샤리체프 골키퍼가 발단이었다.

천안일화에서 선수 생활을 한 샤리체프는 당시 천안일화 전력의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니폼니시 전 부천SK 감독은 그를 두고 “천안을 못 이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대충 그의 위상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외국인 골키퍼의 활약을 본 다른 구단의 감독들은 당연히 한국 골키퍼보다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 골키퍼를 선호하게 됐고 K리그에서 한국인 골키퍼라고는 김병지 선수밖에 남지 않을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이 되자 축구연맹에서 ‘자국인 선수 보호’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골키퍼 영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금지 조항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자국인 선수 보호라는 명분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결과는 의문을 남겼다. 그 시절에 살아남았던 김병지와 이운재 선수를 제외하고 자국인 선수 보호 후 내세울 만한 골키퍼를 찾기 어려워졌다.

물론 한국 골키퍼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간 것은 맞는다. 그러나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조민국 전 울산현대 감독의 “우수한 외국인 골키퍼가 오면 K리그 수준이 올라간다.

실력 있는 골키퍼를 뚫기 위해 공격수들의 슈팅 질부터 좋아진다. 또한 함께 훈련하면서 국내 골키퍼들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지금 한국 축구의 현실을 말해준다.

▲ EPL의 경기 모습

국가대항전 후에 나오는 ‘골 결정력 부재’라는 신문 타이틀은 새로울 것도 없다. 결국 자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폐쇄’를 택했고 ‘경쟁’을 포기했다. 폐쇄의 당연한 결말은 ‘혁신의 종말’이듯 혁신적인 골키퍼와 스트라이커는 나오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현재 K리그의 외국인 용병 제한은 비(非)아시아리그 3명과 아시아리그 1명이다. 총 4명까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손꼽히는 EPL(English Premier League)에는 외국인 선수 제한이 없다.

용병이 갖는 의미는 ‘경쟁’이다. 규제가 없을수록, 개방이 많이 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준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소위 빅경기라고 불리는 EPL 경기를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국내에서만 20만 명이 넘어섰을 정도다.

EPL의 인기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참고로 광주FC와 경남FC의 플레이오프 경기 관중 수는 2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선수들의 경기력이 보여주는 힘이다.


선수 영입 개방이 관건

해답은 ‘개방’이다. 물론 개방을 한다고 해서 EPL급의 경기력이 당장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리그의 질은 높아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구단 수입은 늘어나고 다시 선수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이 생기게 된다. 또한 개방이 된 후 K리그에서 살아남은 한국 선수들은 자연스레 자부심과 동시에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리그에 대한 자부심까지 동시에 올라가는 것이다. 선순환의 끝에는 FC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축구를 볼 수 있는 K리그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일각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K리그 클래식리그(1부리그)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은 챌린지리그(2부리그)로 내려가면 된다.

▲ 아스널에서 활약 중인 칠레 국가대표팀 선수 산체스

그 마저도 안 되면 3부리그로 가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타국 리그를 노리면 된다. 입지가 줄어든다는 말은 ‘국내’에서만, 그것도 1부리그에서만 한정된 말이다. 오히려 지금 1부리그에서 볼 수 있는 경기력을 2부리그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스포츠도 산업이다. 산업은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시장경제논리가 있을 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지금 K리그는 지자체가 운영하고 정치 논리가 개입되는 구단이 대다수다.

오히려 이대로 가다가는 리그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시점이다. 이대로 멈추느냐 반등하느냐는 결국 ‘개방’에 달려 있다.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K리그는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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