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영웅인가 모반자인가
고르비, 영웅인가 모반자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02.06.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89년 아내 라이사와 함께 독일을 방문,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고르비는 구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애칭이다. 독일에서 고르비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을 시인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고 하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을 적극 유도한 시대적 인물이다. 독일의 고르비에 대한 인기는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믿었던 동서독 통일의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르비는 러시아 남부 스타로폴이라는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0년 최연소 정치국원, 1985년 공산당 서기장이 되는 초고속 성장을 한 인물이다. 그는 온화한 외모와 함께 늘 그 곁에 웃음짓고 서있던 라이사의 모습을 기억나게 한다. 1999년 9월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이사가 악성 백혈병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독일사회가 이들을 치료하고 따뜻하게 돌봐주었던 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그러나 이 시대의 인물 고르비에 대한 러시아 내에서의 평가는 매우 냉엄하다. ‘소비에트 연방의 장의사’라는 악평 속에는 위대한 초강대국의 몰락이 고르비에게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정적인 평가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깨닫고 개혁개방이라고 하는 조치를 감행한 용기는 더욱 값지다. 그와 함께 만약에 고르비의 개혁개방이 없었더라면 소비에트 연방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무책임하다.오히려 유고슬라비아가 민족간 반목으로 수십만의 희생자를 내고야 슬로베니아(1991년독립), 크로아티아(1991), 마케도니아(1991), 보즈니아-헤르체고비나(1992)와 신유고로 해체되었고 세르비아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았던 밀로세비치는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던 것처럼 소비에트연방도 이와 같은 피와 분노의 복수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역사의 순리는 유고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이미 입력해 놓았고 그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한 심판은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것이 또한 역사의 교훈이라는 사실에 겸허해야 한다.1989년 10월 24일 고르비는 동베를린에서 거행된 동독 건국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호네커 총서기에게 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고 이 권유를 거절한 호네커의 말로는 비참했다. 망명지 칠레에서 암과 투병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보며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