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시장으로 가는 길목 ‘슬로바키아’
EU 시장으로 가는 길목 ‘슬로바키아’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5.02.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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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세계여행 41]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권에 묶여 있던 동유럽이 소련의 붕괴와 함께 어둠의 늪에서 깨어나 한창 도약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에게는 ‘체코슬로바키아’로 익숙한 이름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독립하면서 비로소 독립국가 슬로바키아가 됐다.

이 나라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여건을 십분 활용해 경제의 하이웨이를 건설해 나가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국가 중 가장 산업이 발달해 이미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놓았으므로 EU에 가입하면서 동유럽 국가들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특히 슬로바키아에는 한국 기업도 대거 진출해 다양화된 생산지기를 갖춰 대유럽 수출의 전략적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슬로바키아와 한국 양국이 경제 활성화를 통해 윈윈(Win Win)하는 상생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를 만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 현주소와 양국의 미래 비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 밀란 라이치악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슬로바키아라는 나라는 아직 많은 한국인들에게 낯섭니다. 먼저 슬로바키아에 대한 대략적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됐습니다. 1989년 전까지는 공산주의 진영에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비에트연방의 공산국가들 중에서도 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제일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이 매우 비슷한 두 국가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입니다. 유고슬라비아는 발칸전쟁의 결과로 분리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는 중앙 유럽에 있어 평화로운 분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OECD, EU 가입국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

-슬로바키아가 OECD와 EU 가입국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통계 몇 가지로 예를 들겠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인구의 98%가 고등교육을 이수하며 이는 EU에서 최상위 수준에 속합니다. 우리는 1년에 10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해 세계에서 1인당 차량 생산을 제일 많이 하는 국가입니다. 작년에 슬로바키아 공장이 전 세계 기아자동차 공장 중 제일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습니다.

푸조, 시트로엔, 폭스바겐 그리고 포드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로 국내에 들어와 있으며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포르쉐 카이엔, 폭스바겐 투아렉 및 아우디 Q7은 오직 슬로바키아에서만 생산됩니다. 현재는 고성능 차량 제조사인 벤틀리 람보르기니도 슬로바키아에 들어오려고 하는 추세입니다. 슬로바키아는 공학 분야의 지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단순히 부품들을 수입해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어떻게 높은 고등교육 이수율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특별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나요?

사회주의적인 배경을 가진 국가에서 교육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기본적인 교육이 제공되듯이 여기에서도 같은 제도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아이비리그 대학 등에 비하면 뒤처지지만 중간 수준의 대학들은 슬로바키아에 많이 있습니다. 사회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중간층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의 상류층과 정치의 모습은 중산층의 의견과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중산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민주주의와 자유경제 체제로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이 창조경제를 지향하듯 우리도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가진 사회로 바꾸는 중입니다.


90개 한국기업이 진출, 이유는?

-슬로바키아의 빠른 경제성장 비결, 특히 많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슬로바키아 경제의 큰 부분은 외국직접자본(FDI)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총 FDI 중 60%가 슬로바키아 GDP의 80%를 창출하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90~95% 정도의 GDP가 수출에서 발생하는 만큼 세계에서 제일 무역량이 많기도 하며 시장의 자유도 또한 높습니다. 우리는 수출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총 수출의 85%는 EU 국가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독일이 EU 중에서도 수출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독일의 경제 상황이 우리의 경제 지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슬로바키아가 부품을 생산해 독일로 보내면 독일은 완제품을 만들어 제3국가에 파는 수익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슬로바키아의 FDI 중 90%는 EU연합에서 유입됐고 나머지 10%는 외부에서 들어오는데 그 중 절반이 한국에서 들어옵니다. 기아, 현대모비스, 삼성 등 90개 업체들이 투자하고 있고 아마 주변 국가들 중 한국이 제일 큰 규모의 투자를 하는 나라일 것입니다.

   
 

-슬로바키아의 어떤 점이 한국 기업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했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전략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상품을 생산할 때 운송이 제일 큰 문제일 것입니다. 휴대폰 같은 경우 부피가 작아 운송에 별 다른 문제가 없지만 큰 텔레비전 패널 같은 경우는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야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2004년에 EU에 가입했기 때문에 일단 슬로바키아 진입에 성공하면 유럽 시장을 다 정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강한 공학적 배경이 잇고 고학력자들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슬로바키아가 놀라운 성장을 보인 부분은 1993년 EU회원국가의 평균 GDP의 47%였던 슬로바키아의 GDP가 2013년에 약 75%까지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므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기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기업 친화적 국가이므로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많이 줍니다. EU회원국이기에 인센티브 규정에 묶여 있지만 경제부 주관 하에 한국-슬로바키아 경제팀을 구성해 한국 기업들이 많은 인센티브와 업무를 진행하기 좋은 환경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상자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 ‘벨벳혁명’

-1989년 사회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벨벳혁명’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벨벳혁명의 시발점은 내부적인 요소와 외부적인 요소가 나뉘어 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주요 외부적 요인으로서, 그는 모든 국가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동유럽 공산체제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부에서도 정부와 공산주의에 대한 반체제운동이 펼쳐졌고 국외의 정세와 내부의 움직임이 합쳐져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헝가리의 국경이 열리고, 폴란드 무역연합의 자유보장 등 모든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벨벳’이라고 이 혁명을 이름 짓게 된 것은 우리가 중요시했던 혁명의 중점이 ‘사상자가 없는 부드러운 움직임’이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체코와의 분리는 또한 ‘벨벳 이혼’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현재 체코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한 국가나 연합의 분단 이후 나온 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존중하며 돕고 조언해주기에, 저는 긴급할 시에 제일 의존할 수 있는 국가는 당연히 체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국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같은 사고방식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국가였는데 슬로바키아와 체코 공화국은 어떻게 다릅니까?

체코 공화국은 조금 더 산업화된 국가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 당시 노조의 봉기와 투쟁을 싫었했던 왕은 산업을 멀리했고 그 대신 체코 지역에 모든 산업화를 이뤘습니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의 경우 산업은 노동력을 뜻하고 노동력은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죠.

반면 헝가리의 왕은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아 그 영향권에 있었던 슬로바키아는 산업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결성된 다음에는 철강, 국방산업 등 중공업 관련 시설들이 모두 슬로바키아 지역에 건설됐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체코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슬로바키아의 경우는 헝가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산업적으로 볼 때 우리는 생산성으로서 승부를 보고 있지만 체코의 경우는 섬세한 기술력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밀란 라이치악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왼쪽)와 미래한국 김범수 발행인(오른쪽)

-한국과 슬로바키아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V4(Visegrad four Group : 비세그라드 그룹-EU회원국인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및 헝가리 4개국으로 이뤄진 그룹)는 강한 협조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7월에 슬로바키아가 처음으로 V4 국가들의 대표가 됐는데 마침 제가 아시아 지역 담당이라 V4와 한국 사이의 장관급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참여한 매우 흥미로운 만남이었는데 이 회담에서 비세그라드 펀드와 협력약정이 체결됐습니다. 이 약정을 통해 동유럽 및 발칸 국가들의 사회기반을 한국의 이름을 내걸고 지원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한국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슬로바키아의 외교관계는 3단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상호간의 외교이고 둘째, 대한민국과 V4의 외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EU의 외교를 뜻합니다.


외세 침략에도 문화 정체성 유지

-한국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관광지가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유럽 관광지를 고르라면 런던, 프랑스, 베를린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슬로바키아가 중앙 유럽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깊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슬로바키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33개의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산과 강, 들판, 동굴, 건축물, 성곽 그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유일하게 없는 한 가지는 바다뿐이죠. 만약 중세시대의 삶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하루 종일 중세시대의 식생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기 원하는 사람을 위한 여행지도 있으며, 암벽등반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갈 만한 협곡 등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양조장 투어를 할 수도 있는데 매우 독특한 점은 소믈리에가 관광객들을 여러 포도밭으로 안내하며 각 농장의 역사와 와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흥미로운 관광 상품입니다. 슬로바키아는 셍곈 조약(Schengen Treaty)을 맺었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과의 사이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슬로바키아는 중앙 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유로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유로 통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부채, 적자 등 다양한 분야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슬로바키아는 유로를 통화로 받아들일 조건을 충족한 유일한 중앙 유럽국가입니다.

-또 슬로바키아의 어떤 특징들이 있나요?

슬로바키아도 한국과 같이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말한 스포츠도 하계부터 동계까지 다양한 종목이 존재합니다. 한국의 현대같이 큰 조선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조선 능력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리공예도 매우 발달돼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유리공예품 또는 자기를 문화유산으로 가지고 있는데 슬로바키아도 그런 국가 중 하나로 국빈이나 귀한 손님에게 선물을 전할 때는 유리공예품을 주곤 합니다.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의 통치하에 약 1000년간 있었는데 어떻게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한국도 일제강점기 36년과 그 전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우리 역시 비슷합니다. 최근 한국의 경주시와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시가 결연을 맺었습니다. 경주의 경우는 고대 신라의 수도였고 니트라도 해당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우리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침략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문화의 발판을 다지게 됐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기초를 단단하게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헝가리가 한 문화를 가진 국가를 건설하려고 많이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바키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가 결성됐을 때 우리는 체코와 같이 슬라브계 문화를 가지고 있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양권에서만 20여 년 ‘아시아 전문가’

-대사님 본인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작년 8월에 한국에 왔고 아시아에 20년 이상 있었습니다. 제 첫 언어는 중국어였으며 중국으로 2번, 연수로는 8년을 파견을 나갔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나라들을 다녔고 아시아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아시아의 정서가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는 것을 지원했기에 이렇게 지내게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파견지를 지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성공적인 일들을 이뤄낸 나라이기 때문에 배워가고 싶은 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최근 들어 창조적인 경제를 추구하고 있어 여기서도 참고할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양 국가가 협조 관계에 있어서 낮은 등급의 교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국의 학생과 일반 시민들을 통한 일반적인 문화나 경제적인 교류로 더 역동적인 협조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이 무엇인가요.

세계의 어떤 사회를 봐도 젊은 세대를 키워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은 매우 수직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어 젊은 세대들이 나이 또는 학력 등의 장벽에 부딪혀 한 단계 위로 도약하는 데 좌절하기 쉽다는 부분입니다. 

또한 재벌이 경제의 모든 부분을 주관하고 있기에 중소기업이 끼어들 자리가 부족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가 사회에 참여할 자리를 제공하고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모두의 골칫거리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의 많은 학생들은 수면부족인 것 같습니다. 밤 11시까지 과외를 받아 동급생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모습은 매우 좋지 않아 보입니다. 

만약 한국이 창조적인 경제의 건설을 추구한다면 창조력의 원천인 젊은 세대들이 꿈꿀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한국의 장점은 문제가 있을 경우 피하지 않고 직면해 해결하는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주제를 놓고 토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 이 기사는 '미래한국TV'를 통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영상 링크 : http://youtu.be/EMRv8sV0Hqo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bskim@futurekorea.co.kr
정리/박종하 인턴기자 saintjoepark@gmail.com
사진·영상/이모람 객원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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