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농업’ 아닌 ‘농식품산업’ 시대
이젠 ‘농업’ 아닌 ‘농식품산업’ 시대
  • 미래한국
  • 승인 2015.03.02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인터뷰] 기업농의 선구자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 장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이다. 모자라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넘쳐나서 고민이 될 때 즐겨 쓰는 이 말이, 오늘날 한국의 쌀농사의 비효율적 정책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해마다 쌀 생산이 늘어나 올해 쌀 자급률이 97%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의무적으로 해외로부터 9%, 즉 40여만 톤에 이르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데 있다.

국내 생산과 해외 수입량을 합하면 쌀 소비량 100%를 넘어서서 쌀이 남아돌게 돼 있는 상황이다.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 장관으로부터 이에 대한 대책과 앞으로 어떤 개혁과 혁신으로 농업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들어본다.

▲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 장관

-모든 국가적 영역에서 개혁과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데, 유독 농업분야는 예외인 것 같습니다. 농업과 농민들이 최고 권익단체화돼 있다는 느낌입니다. 농업분야 혁신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혁신과 개혁은 그 주체의 역량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농업의 주체가 모호해서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농업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현재 국가가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농민 스스로가 주체가 돼 해결을 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농업인들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지난 농림식품부 장관 시절 변화를 모색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농산물 품목별로 국가대표조직을 만들어서 스스로가 그 품목에 대해 과제를 갖고 혁신과 개혁의 노력을 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체제가 돼야 합니다.

수십 년 국가중심에서 민간주체, 민간중심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품목별로 스스로 자족운동을 하고 부분적인 것을 전체적으로 확대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쌀 자급률 97% 기사가 나왔는데 자급률이 높을수록 반드시 좋은 것인지요? ‘식량안보’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관세화 유예를 계속하자는 동력을 잃어버린 이유입니다. 의무수입물량이 들어와도 안정된 소득보장을 하자는 과거의 논리가 설 곳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대부분이 쌀농사를 했습니다.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소득보장을 위해 쌀에 고정, 변동직불금을 지원하다보니까 쌀 한 품목만 자급률이 높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농작물 전체 자급률은 23%밖에 안 됩니다. 여전히 축산사료, 가공원료들은 1000만 톤 이상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품목간 자급률 불균형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대부분 농가에서 계속 쌀을 생산하다 보니까 다른 품목과 균형이 안 맞는 겁니다. 직불금은 사회안전망 차원, 복지적 차원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줄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쌀 문제만 가지고 자급률 100%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식량자급률이 23%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런 접근을 해야 합니다.

 

농업정책은 백년대계를 목표로 해야

 

-비용이 적게 든다면 쌀도 수입하거나 해외농장을 개발해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재 논란이 있는 해외자원개발이 에너지뿐만 아니라 식량에도 해당합니다. 일본은 대기업을 통해 해외식량자원개발을 계속 진행하면서 국제곡물시장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23%는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해외식량자원개발이 절실한, 아주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동남아지역인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을 공략해 식량자급률을 해외에서 보완하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해외 농지를 소유하든, 장기임대 방식이든, 기술지원을 통한 수확물량 확보방법이든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농’의 선구자이신데 우리나라 기업농 현황은 어떻습니까? 무엇이 문제인지요?

1993년부터 농민 5명 이상이 법인화를 해서 생산에서 유통까지 하는 영농조합이 생겼습니다. 기업농 역할을 할 수 있는 영농조합법인이 1만여 개 이상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중심체제의 농업구조에서는 영농조합들이 스스로 중추적인 역할을 못하고 계속 정부에 기대는 상황입니다. 제가 참다래유통조합을 운영하면서 배운 점은 농업분야에 장기적으로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또한 집중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체가 국가에서 농민, 농민조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범위가 생산만이 아니라 선별, 포장, 유통, 가공 모든 단계로 넓어져야 합니다. 과거에 생산자 중심에서 지금은 소비자 중심으로 이동했습니다. 농산물 시대가 아니라 농식품 시대입니다. 농업이 농식품산업으로 바뀌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모든 게 변화해야 하는데 미흡한 실정입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는 규모, 조직, 차별화, 기업가 정신 4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4가지를 조합해서 완벽한 수출농업시대를 열었습니다. 300억 달러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150억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농민 스스로 주체가 돼서 농업을 성장· 발전시키는 주체가 된다는 기업가정신이 부족합니다. 규모화도 안 돼 있습니다. 조직화도 느슨합니다. 차별화도 미흡합니다. 앞으로 농업의 패러다임이 전부 바뀌어야 합니다.

-농업의 대형화·기업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 맞을는지요?

농업의 기업화는 우리나라에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 300만 평이 있는데 생산품목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선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서 특화가 가능하고 팔 수 있는 한 품목을 정합니다. 그러면 생산의 규모화가 됩니다.

조합 회원들이 모였으니 조직화가 됩니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람이 경영을 하면 그때부터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농업은 10년, 100년 계획을 세우고 쌓아가야 합니다.

-정부의 농가 직불금제도, 농업의 현황과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직불금이 단순히 쌀만을 위한 제도라면 변경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모두가 하고 있는 쌀농사를 중심으로 해서 소득을 보장시켜 주도록 하는 정치적 목적도 있습니다. 여기에 매년 재원이 7000억-8000억 원이 사용됩니다.

반면에 개개인이 받는 직불금으로 가계농업소득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습니다. 개개인 직불금의 반씩만 모아서 일정단위로 자본화를 해야 합니다. 그 지역 유통이나 인프라 개선에 사용하는 정책을 구상해야 합니다.

예전 새마을운동처럼 농촌살리기운동(가칭) 같은 지역 발전을 위한 주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산적, 창조적 차원으로 의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농업과 산림을 함께 살리는 정책 필요

-농민, 농촌 출신 국회의원의 과도한 대표성 문제(최근 선거구 헌재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이 농업을 성역화하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닌지요?

지역의 대표성을 고려하지 않은 헌재의 결정에 불만이 있습니다. 인구수만 고려해서 선거구 개편을 하면 문제점이 생깁니다. 제가 활동하는 전북 무주, 진안, 장수, 임실 4개군 인구는 합쳐도 10만 명이 안 됩니다. 그러나 지역 넓이는 전라북도의 1/3정도입니다.

도시 아파트 단지에 2000명이 산다고 정치적 수요가 많아지고, 농촌에 500명이 산다고 적어지지는 않습니다. 지역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수요도 있습니다. 인구의 대표성만 고려하고 지역의 대표성을 읽지 못하는 점은 지역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MB정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서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 비전 등을 말씀해주시죠.

그 당시 엄청난 위기를 기회의 에너지로 만들어 낸 것이 원산지표시제도입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식당마다 원산지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원산지표시제도를 통해 굉장히 어려운 축산산업을 살려냈습니다. 이 때문에 농가에 상당한 이익이 생겼습니다.

현장 전문가로서 실질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사람, 조직, 인프라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농어촌 뉴타운정책을 해서 중앙의 젊은 인력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유통 개혁을 위해 시·군 단위 유통회사를 만들고, 국가품목별대표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간척지를 대규모 농업회사로 통해 규모화하는 모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시했던 일은 7단계를 거쳐야 하는 농산물 판매단계를 간소화한 것입니다. 이런 5대 전략을 구상하고 임기 동안 열심히 해보자고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주춧돌만 놓고 끝났습니다.

앞으로 산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지의 3배가 산지입니다. 예전에는 산림녹화만 해서 원시림이 됐습니다. 전체 국토의 66%인 산지를 산림자원녹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켜서, 농업과 산림을 함께 살려나가는 창조경제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강시영 기자 ksiyeong@futurekorea.co.kr
정리/박진우 기자 newsthat@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