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해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해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 정용승
  • 승인 2015.03.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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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오늘날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경작을 하는 자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농업정책의 철학은 봉건적 지주제를 혁파하고 소작농을 자영농으로 전환시킨 이승만 정권의 혁명적인 토지개혁 이념이었다.

그러한 경자유전의 관념은 남한의 6.25 공산치하에서 자기 땅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반공이념으로도 작용했다. 동시에 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에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 이 경자유전의 원칙은 21세기 농업혁명의 길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거의 빛나는 전통은 미래를 위해 그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필요하다면 개혁돼야 한다.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위해 토지개혁의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해 온 이영조 교수(경희대 국제정치학)를 미래한국이 만나봤다.

▲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6·25가 발발하고 한반도는 이념전쟁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토지정책이 남한의 공산주의화를 막았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사실이라고 봅니다. 토지개혁이 언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약간의 논란이 있는데 확인된 바에 의하면 전쟁발발 직전에 토지개혁이 이뤄졌다는 거예요. 농민들에게 돌아갈 땅이 다 돌아갔다는 의미죠.

그러니 농민들은 이미 자신들의 땅이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던 거죠. 만약 가진 토지가 없었다면 공산주의 세력이 자신들이 토지를 나눠주겠다고 선동하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꼈겠죠.


‘경자유전’의 토지개혁이 남한 공산화 막아

-이승만 정부의 토지정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렇죠. 몇까지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데 우선 토지자본이 산업자본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고 두 번째로 부의 분배가 평등하게 이뤄짐에 따라서 상당기간 동안 산업중심의 경제성장을 펼칠 수 있었죠. 분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우선 이승만 정부의 토지정책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개도국들과 달리 이승만 정부는 산업화 이전에 농지 재분배를 실행했는데요, 농지 재분배를 실행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선 산업화 이전에 농지개혁이 일어났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해방되는 시점에서 농지의 집중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죠. 조선 말부터 토지가 일부 지주들에게 집중된 것은 사실이에요. 더 심각한 것은 일제치하 35년을 거치면서 토지집중이 더 심화됐고 자영농보다 소작인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어요.

해방 당시 3%의 사람이 60% 정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하면 상상이 가세요? 그렇기 때문에 해방 후 토지재분배 문제가 등장한 것이죠. 그래서 우선적으로 미(美)군정 하에 있던 신한공사(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들을 분배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미처 다 이뤄지기 전인 1948년에 이 문제가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게 된 것이죠. 결국 이승만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러면 결과부터 물어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성공입니까, 실패입니까?

복잡한 문제예요. 지금까지 토지개혁 문제에서 두 개의 상반된 입장이 있었어요. 대부분의 국내 경제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승만 정부가 토지개혁에 실패했다고 주장하죠. 반면 외국인들은 한국이 평등함을 유지하면서 발전했던 모습을 근거로 토지개혁에 성공했다고 말해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면 농지재분배라는 부분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분배가 이뤄졌지만 공식적인 토지개혁만 두고 보면 논란이 있다는 것이 제 입장이죠.

해방 이후 1949년 농지개혁법이 통과되고 1950년 5월 말까지 토지 증명서가 교부됐는데 이때 실제로 분배가 이뤄진 땅은 일본인 지주나 혹은 신한공사가 가지고 있던 땅이었어요. 반면 조선인 지주가 가지고 있던 토지 중 분배된 토지의 비율은 굉장히 낮았죠.

 

그래서 대개 실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배 대상이 된 토지 가운데 굉장히 적은 부분만 실제로 분배가 되고 나머지는 토지개혁을 피해갔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토지개혁을 예상한 지주들이 토지를 팔아치웠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하죠.

또 하나는 법적인 허점, 그러니까 1949년 통과된 농지개혁법은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 혹은 과수원 같은 곳에 기부된 토지들을 분배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돼 있어요. 그래서 지주들이 이런 식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역 농지위원회에 지목 변경을 하고 땅을 빼돌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반대로 외국인들은 한국, 대만, 일본을 보니 이른바 평등한 성장이 이뤄진 나라인데 공통적으로 토지개혁이 다 있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이 성공했다고 외삽을 하는 것이죠. 데이터를 보고 주장하는 게 아니고요.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농지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시기는 1947년 정도부터예요. 정부 수립 1년 전부터 농지분배가 개선되는 것을 데이터 상으로 볼 수 있어요. 1947년에는 미군정이 토지재분배를 대규모로 했던 게 아니었어요.

즉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팔았기 때문에 이런 데이터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법적인 허점을 이용했다는 얘기도 말이 안 돼요.

법을 이용하려면 법이 통과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토지분배가 개선되고 있었어요. 그렇다는 말은 이미 지주들이 땅을 팔고 있었다는 거죠.

또 토지개혁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주들이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터무니없이 높은 값으로 강매했다고 말해요. 이 또한 말이 안 되죠. 그 당시 소작인 외에는 땅을 살 사람이 없었어요. 당시 사회 분위기상 토지개혁이 이뤄질 것을 대부분 알았기 때문에 살 사람은 소작인 밖에 없었고, 지주들은 토지를 팔려고 했죠.

결국은 구매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이 됐고 구매자들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서 실제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 점에 대해 예전에 영남대에 계셨던 권영탁 교수님이 대구·경북지역에 위치한 노인대학을 찾아다니며 토지개혁을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채록한 게 있어요.

그 증언에 의하면 토지 구매 조건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작인들한테 유리했어요. 단적으로 얘기해서 토지가격이 1년 소출(所出)의 1.5배로 책정되는데 이것보다 더 유리한 조건인 한 해 소출로 토지 값을 갚을 수 있었던 사례도 많습니다. 그래서 두 방법을 합쳐보면 토지분배가 매우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가 성공의 핵심 요인

-토지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우리 정부가 토지개혁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그런 인식을 지주들이나 소작인들에게 심어줬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런 계획을 사람들이 예상하니 정부보다 시장에서 거래가 생겨났어요.

한 쪽은 급하게 팔려고 하고 또 한 쪽은 시간을 끌면서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사려고 한 것이죠. 그렇게 상당부분 실제 토지개혁보다 시장에서 소작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의 거래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도 한몫했죠. 왜냐하면 이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땅 한 평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토지분배에 대해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어요. 그런 이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한다고 하니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게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한민당은 호남의 지주 출신이 주도하고 있었어요. 이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하는 것이 한민당의 물질적인 기반을 무너뜨리는 길이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반드시 토지개혁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었던 거죠.

정부가 확실하게 토지개혁을 할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그런 예상을 뒷받침하는 이 대통령의 무연고와 정치적인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농지 재분배의 효과와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농업분야 생산구조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직접 경작하는 자영농이 됐죠. 소작인이 없어졌다는 말이죠.

그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어떻게 보면 그 당시까지 농민조직이나 농민운동을 주도하는 공산주의 세력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 있어요. 또한 농민들이 정부하고 바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어요.

물론 당장 농민들의 삶이 극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어요. 유상몰수를 할 때 농지가격은 연 소출의 1.5배로 책정됐고 1년 생산에 30%씩 5년 동안 걸쳐서 상환하게 돼 있었어요. 30%라고 하면 대략 그 전에 지대를 내던 것과 비슷한 거죠.

그리고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시토지수득세라고 해서 현물로 내야 했거든요. 합치면 50%에 육박하는데 이게 과거에 지주들에게 내던 지대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죠. 때문에 농민들의 삶이 적어도 50년대 말까지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지주계급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지주들은 5년 동안 땅 값을 받게 돼 있는데 이게 함정이었죠. 소출의 1.5배를 계산하면 1년에 몇 석이라고 값이 나와요. 그런데 이걸 쌀로 주는 게 아니라 현금으로 줍니다. 결국 쌀값을 돈으로 환산해야 하는데 정부가 공시하는 가격에 따라야 해요.

시장가격이 아니고. 그런데 이 가격이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았던 거죠. 게다가 정부가 거둬들이는 것은 제때에 하는데 지주들에게 돈을 갚는 것은 질질 끌어요. 그럼 인플레이션 때문에 처음 책정가치의 반도 안 되는 현상이 나오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더 떨어지고. 결국 정부가 지주한테 보상해주는 것은 1960년대 중반에 끝납니다.

1950년 토지 분배가 이뤄졌으니 1955년에 끝나야 정상인데 10년을 더 가요. 그동안에 이 땅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는 거죠. 또한 당시 정부는 토지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시키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지가증권을 가져오면 적산공장을 불하(拂下)해주는 대금으로 지불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랬더니 도시에 있는 장사꾼들이 시골의 지가증권을 사러 다닌 거죠. 도시 상인들이 적산공장들을 인수하는 과정을 우리나라 산업자본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죠.


전용농지에 대한 규제 풀어야

-당시 농지개혁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남한의 안정화를 가져오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개념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지보호, 농민보호라는 관념에서 아직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시나요?

우리나라 농촌지역에 가보면 지목(地目)이 나뉘어 있습니다. 농지와 임야가 있죠. 임야 같은 잡종지 같은 경우는 개발도 용이하고 매매도 용이한데 농지의 경우에는 규제가 많아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죠.

하나는 과거 토지개혁을 엄격하게 해놨는데 외지인들이 다시 농지를 사들여 농민들이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식량안보라는 차원에서 농업생산을 계속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농지를 전용(轉用)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거죠.

그런데 지금 이 두 가지 이유는 모두 의미를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농민의 숫자가 이제 많이 줄어서 전체 인구의 7~8%정도 밖에 되지 않고, 농업부문이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부분도 GDP의 3%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실제로 농촌에 가보면 농지가 없는 게 아니라 일손이 없어서 농지가 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소작인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죠.

식량안보의 경우 우리는 쌀을 자급자족하고도 남아요. 곡물류에서는 수입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식량안보를 위해서 땅을 놀린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식량안보는 그렇게 근거가 미약하다고 볼 수 있어요.

-현재 농지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땅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은 농민들입니다. 그러나 농지의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방향이 있다면 어떤 쪽으로 가야 할까요?

저는 전용농지에 대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봐요. 오히려 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평한 농지도 못 쓰니까, 멀쩡한 산을 깎아서 건물을 짓고 하잖아요. 이상한 일이죠. 규제만 풀리면 사람들이 골프장을 짓든 체육시설을 짓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겁니다. 규제만 풀면 돼요.
 

* 이 기사는 '미래한국TV'를 통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해당 영상 링크 : http://youtu.be/N8UhodaUiZM


인터뷰/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사진/황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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