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곡 속에 젊은 순정을 담다
불후의 명곡 속에 젊은 순정을 담다
  • 이성은 기자
  • 승인 2015.03.16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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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쎄시봉>

최근 국내 대중문화계의 복고 열풍이 대단하다. ‘복고’는 회상에 잠겨 있는 동안 현재의 시간을 멈추고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복고는 지금 대세다. 현재의 복고바람은 과거의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에는 복고가 이따금씩 찾아오는 인기 코드 중 하나였다면, 지금의 상황은 기존 문화 코드를 앞지를 정도로 주류 테마가 됐다. 따라서 현재 문화 시장은 다양한 복고 아이템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드라마분야에서 2012년 <응답하라 1997>와 2013년 <응답하라 1994>로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더니 예능분야에서 MBC <무한도전>이 1990년대에 초점을 두고 당시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스타들을 다시 무대에 올린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영화계에서는 작년 12월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 2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69일차에는 14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명량에 이은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2위 영화로 등극하며 최근까지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복고 열풍 속에서 주목하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쎄시봉>이다. 영화 <쎄시봉>은 1960년대 후반 서울 무교동에 위치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다.

쎄시봉의 주역들을 다룬 작품인 만큼 당시 이들이 불렀던 명곡들은 영화 흐름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 각각 20대 시절의 윤형주와 송창식 역을 맡은 강하늘과 조복래는 놀라운 외모 싱크로율 뿐만 아니라 수준급의 가창력으로 그들의 창법까지 훌륭하게 모방해낸다.

하지만 영화 전개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인물인 ‘오근태(정우 분)’와 ‘민자영(한효주 분)’이다. 오근태는 충무(지금의 통영) 출신의 지고지순한 시골 청년이다. 그는 라이벌 관계인 윤형주와 송창식 사이에서 중저음의 보이스로 음색의 조화를 이루며 음악적인 성장을 키워나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한편 민자영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배우 지망생으로 ‘트리오 쎄시봉’ 멤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뮤즈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는 건 마성의 고음을 가진 윤형주도 매력적 창법의 송창식도 아닌 ‘촌스러운’ 시골 청년 오근태다.

그는 가진 건 없지만 평생 민자영을 위해 노래하겠다는 순정남이다. 하지만 ‘예쁘면서 착하기까지 한 여자’는 없다고 했던가. 민자영은 오근태와 달리 순진하지만은 않은 여인이다. 그녀는 오근태의 간섭에 언제든 자신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는 여인이다.

결국 민자영은 꿈에 그리던 연기자가 된 이후 순정남 오근태의 사랑을 저버리고 어린 시절 동경했던 교회 오빠이자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강명찬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한 오근태는 충격에 빠져 노래할 이유를 상실했고 쎄시봉을 떠나 자취를 감춘다. 이후 영화는 후반부로 전환된다.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미국을 배경으로, 40대가 된 오근태(김윤석 분)와 민자영(김희애 분), 이장희(장현성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40대의 오근태는 젊은 시절의 순진무구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차갑고 어둡다. 오근태는 20년 만에 우연히 마주한 민자영을 시종일관 비정한 모습으로 대한다.

영화 <쎄시봉>에 대해 혹평을 내놓는 이들은 하나같이 위와 같은 후반부의 전개에 문제 제기를한다. 오근태와 민자영의 재회 이후부터 통속적이기 짝이 없는 신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의 해답은 오근태가 그녀를 등지고 뒤돌아선 이후 비행기 통로에 힘없이 주저 않아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에 담겨 있다. 이 장면에 대한 이해 유무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끝으로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러닝타임 동안 시간이 멈춰 있던 느낌이었다”는 한 기성세대의 감상평을 옮겨 본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개인들의 자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젊은 세대들이 60~70년대 당시 젊은 남녀들의 순정 코드를 공감하지 못할 만큼 현 시대의 사랑 코드가 너무나도 변해버린 탓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다.


이성은 기자 nomadworker@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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