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스마트폰, 안녕하십니까?
삼성 스마트폰, 안녕하십니까?
  • 미래한국
  • 승인 2015.03.18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커스] 삼성전자의 行路

심정택 저술가

마케팅 전문가들 퇴장, 기술 중심의 테크노크라트 전면에 등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갤럭시S6의 런칭을 앞두고 삼성전자에서는 연이어 스마트폰 마케팅 전문가들이 사퇴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이돈주 전략마케팅실장(사장)이 갤럭시S5 등 스마트폰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런데 삼성의 CEO들이면 으레 퇴사 전에 잠시 맡는 상담역도 거치지 않고 바로 퇴진했다.

올 2월 26일 온라인 뉴스매체인 ‘프리미엄 조선’은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 사장이 출장 중 불미스런 일을 저질러 회사 수뇌부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전문경영인에 대한 신상비리를 삼성 관계자(홍보라인)의 입을 통해 보도하는 일은 인재경영을 하는 삼성 입장에서 보면 거의 부관참시(剖棺斬屍) 수준이다.

이 사장이 오너 레벨의 경영진에게 지독한 괘씸죄를 저질렀거나, 갤럭시S6의 글로벌 런칭을 앞두고 이미 퇴임한 이사장을 강력하게 견제해야 할 어떤 이유가 있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 스마트폰 실적 악화 책임을 지고 물러난 '갤럭시 신화 창조'의 주인공 이돈주 사장.

이돈주 사장의 사퇴에 이어 그 후임인 김석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 실장(부사장)도 불과 두 달여 만인 2월 2일 ‘건강상 문제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삼성 측의 발표) 물러났다.

김 실장이 이돈주 전 사장 자리로 이동할 당시 김 전 부사장은 글로벌마케팅실장 겸 글로벌 B2B 센터장(부사장)으로서 해외 판로를 넓히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삼성전자의 올해 최대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6 공개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부임 두 달 만에 퇴진하면서 업계의 의구심은 증폭됐다.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은 삼성전자가 개발·판매하는 모든 스마트폰의 마케팅 방안을 통합 수립하는 핵심 부서다. 김 실장은 부임 후 갤럭시S6 마케팅 극대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마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이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려 건강을 해쳤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의 진짜 사퇴 이유는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 사장과의 의견 대립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희한하게도 ‘갤럭시 신화’를 창조한 이돈주와 신종균 사장 중 한 사람은 치욕스러운 퇴진을 한 반면, 신종균 사장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면에는 마케팅 전문가 그룹과 엔지니어 그룹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관측되고 있다.


기능주의 기술파들 전면 배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마케팅 전문가들의 연이은 사퇴로 인해 무선사업부 내 기술 테크노크라트들의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한다. 삼성의 경쟁사인 애플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제품력(기술)보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브랜드파워로 승부하고 있는데 반해, 삼성은 제품력 위주로 마케팅의 방향을 잡고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애플스토어의 각 지역별 런칭 광고는 한류(韓流) 스타에 의존하는 삼성의 광고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애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어쨌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은 브랜드까지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전면 쇄신파를 사퇴시키고, 신종균 사장 중심의 기능주의 기술파를 선택했다.

지난 3월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래스(MWC) 개막전의 갤럭시S6 런칭 과정에서도 신종균 사장이 선두에 서고, 이영희 부사장 등 마케터들은 보조적인 역할만 한 모양새로 비쳐졌다.

삼성의 유력 후계자인 이 부회장은 미국에서 열린 비즈니스 미팅을 이유로 런칭 발표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혹시라도 갤럭시S6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리스크 관리 차원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도 제기됐다.

과거 닛산 자동차는 영업부서 의견보다는 닛산기술연구소(NTC) 중심의 기술 테크노크라트들에게 힘이 실리면서 무너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력에서 도요타보다 앞서 있었던 닛산은 고객 집단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 개발보다는 엔지니어 집단이 만들고 싶은 제품 개발에 치중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삼성전자 마케팅 전문가들의 퇴진으로 닛산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는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할 시기다.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승패는 기술이 아닌 마케팅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정체성은 양산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 기업이었다. 기술 혁신이 없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마케팅에서 밀리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의 글로벌 런칭을 하면서 2014년 여름부터 제조부문의 공정 혁신을 해왔다고 밝혔다. 반면 마케팅부문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 삼성은 구글, 애플과 비교하면 독자 플랫폼 경쟁력에서 밀린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협력해온 세계 이동통신사들의 힘을 빌려야 버틸 수 있다.


곳곳에서 허점 노출

삼성은 미국 모바일 결제 기술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하고 독자적인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런데 올 2월 23일 미국의 이통사들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구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 월렛’을 선탑재한다고 밝혔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만큼은 구글의 영향력에서 탈피하려고 애쓴 삼성 전략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세계 이통사들마저 구글, 애플에 넘어가면 삼성은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마케팅 부서 중심의 전면 쇄신파들이 물러나면서 나타난 결과가 바로 이런 현상들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확고한 재산 상속 및 경영승계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경영실적 측면에서도 당장 자신의 성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사업 외에는 특별한 아이템이 없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지원 아래 갤럭시 신화를 창조한 신종균 사장에게 대임을 맡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스마트폰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재신임을 받은 신종균 사장. 그는 공고, 공대 출신으로 뼛속까지 엔지니어 체질이 배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신종균 사장의 캐릭터를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신 사장은 공고·공대 출신으로 뼛속까지 엔지니어 체질이 배어 있는 인물이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실적 하락으로 인해 신종균 사장이 2선으로 후퇴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2014년 12월 1일 그룹 인사에서 유임되면서 그는 갑자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 안착되지 않은 경영권 승계권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신 사장에게 걸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종균 사장이 도전해야 할 과제는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한 빅 마켓에서 저가 폰을 얼마나 잘 팔 수 있느냐의 여부다. 문제는 과거의 성공 스토리에 안주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룹의 사업과 경영승계의 전환점에서 의사결정권자의 캐릭터는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세계는 IT와 자동차의 융합 시대를 맞고 있지만 삼성은 이런 호기를 누릴 수 없다.

1994년에 삼성이 어렵게 자동차 사업에 진입하고서도 1998년 사업을 철수했던 배경에는 외환위기라는 외부 환경 요인, 그리고 삼성그룹 내 재무라인들로의 힘이 쏠린 측면도 있지만, 자동차 사업을 책임졌던 기획 라인들의 뚝심과 돌파능력이 부족한 캐릭터들도 한 몫 했다.

반면 재무라인들은 자기 홍보에 강했다. 삼성전자의 이돈주 전 사장이나 김석필 전 부사장은 너무 얌전했고, 신종균 사장 등은 그 반대 성향의 캐릭터다. 따라서 사업의 전략도 조직 내의 조직 내 힘의 쏠림, 각 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좌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갤럭시S6 성공할 것인가?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부회장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뚜렷한 전략을 제시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상황은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상훈 CFO(사장)의 입김도 그다지 강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균 사장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갤럭시S6의 판매에 주력할 것이다. 마케팅 투자비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은 이상훈 CFO가 유력하지만, 전통적으로 삼성 그룹의 재무 라인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신종균 사장에게 많은 힘이 쏠릴 것이 분명하지만 갤럭시S6의 성공은 예측 불허다. 프리미엄폰의 주력 시장인 미국은 애플 아이폰의 여전한 아성이다.

유럽은 아직도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은 가전부문에 관한한 삼성전자에 폐쇄적이다. 중국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시장 주도권이 애플에 넘어갔다. 갤럭시S6 신제품 효과를 세계 4대 주요 시장이 떠받쳐줄 긍정적 요인은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결국 신종균 사장이 타개책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중저가 및 저가 시장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내부 역량은 마케팅과 R&D 부문에서 애플을 상대하기에 벅차다.

또한 시장 점유율 중심의 저가 시장 공략은 당장 수익을 기대하기 곤란하다. 인도 시장은 낮은 국민소득으로 인해 저가 소비자 집단이 프리미엄급으로 전이된다는 보장도 없다.

삼성전자는 단기 승부처로 갤럭시S6에 운명을 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것은 제품 경쟁력인데 엣지폰 같은 경우 LG디스플레이가 중국 업체 샤오미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삼성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우선 그룹의 CI(Corporate Identity)부터 바꾼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 현재 삼성의 CI는 삼성전자의 그룹 내 비중이 지금처럼 높지 않을 때인 1991년, 글로벌 기업으로의 지향점을 담기 위해 채택한 것이다. 은하계를 상징하는 로고도 이때 개편됐다.

요즘 풍속도를 보면 스타벅스 커피숍 등에서 젊은 대학생들이 애플 로고가 선명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는 것이 문화 행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은 가전 소비집단군으로서 대학생층이 처음 접하는 아이템들이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의 노트북 센스는 30대 초반의 대기업 광고회사 등 감성민감업종의 직장인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그들은 지금 50대가 됐다.

오늘날 노트북, 스마트폰의 주요 타깃층은 10대 후반이다. 삼성은 이들에게 걸맞는 마케팅 전략 수립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 인간 삶의 확장된 감각 영역의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이 분야만큼은 빈부의 격차가 없다. 그러나 예상되는 갤럭시S6의 국내 시판 가격 90만원 대는 이들 주력 소비자층에게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승용차는 전 인구를 상대로 파는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아동층이나 초고령층을 제외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세대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 전략이 제품의 승패를 좌우한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휴대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현재까지 삼성전자 수원 본사는 새벽 출근을 하고 있다. 기획부서는 새벽 6시 반에 브리핑이 시작된다.

임원이나 직원들이 오랜 새벽 근무로 인해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 일부 부서는 맹목적인 경쟁주의에 내몰린 소수 영웅주의자들이 지나친 책임 의식으로 정상적인 근무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과거에도 숱하게 시행했던 시대에 뒤처진 업무 관성에서 무슨 혁신이 나오겠는가.

혁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잘 파악하고, 일의 순서를 정하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전체를 말한다.

옳은 주장을 존중하고, 머리를 맞대어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 당연한 사안들을 패권으로 몰고 가고, 인신공격을 해 패가망신 시키는 식의 폭력적 경영 방식은 삼성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삼성 스마트폰의 몰락은 삼성그룹의 몰락뿐만 아니라, 삼성 한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삼성이 사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성공신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 심정택
- 단국대 행정학과 졸업
- 삼성자동차 경영기획실 및 삼성그룹 대외협력단 근무.
- <삼성의 몰락> 저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