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표는 ‘강하고 예리하며 현명한’ 一流 정보기관
그의 목표는 ‘강하고 예리하며 현명한’ 一流 정보기관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5.03.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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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

[인물탐구]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 

인류의 평화제전인 뮌헨 올림픽이 한창이던 1972년 9월 5일 새벽, 팔레스타인의 무장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리스트 8명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급습하여 이스라엘 국가대표 육상선수 두 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고 일본 적군파 지도자 오카모도 고조와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아랍 게릴라 234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구출작전 과정에서 인질 9명이 사망하고 테러범 5명이 사살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서 시리아와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게릴라 캠프를 공습하고 모사드의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메차다 요원들이 암살팀을 구성하여 뮌헨 참사 관련된 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 9월단의 로마 책임자 와엘 아부 즈에이터, 파리 조직의 마히문 함차리, 무하마드 나가르, 모하메드 부디아 등 지구촌 끝까지 추적하여 원격조종 폭탄 등을 이용하여 살해했다.

지난 2012년 1월 11일, 이란의 핵 과학자 모스타파 아마디 로샨이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2010년에도 이란 핵 과학자 3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련의 이란 핵 과학자 암살은 모사드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기드온의 스파이’ 번역한 프로 정보맨

‘미래한국’의 독자들은 정보기관이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론 지상에 보도된 우리의 국가 정보기관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장세동, 권영해, 임동원, 신건 등 정보기관의 수장(首長)들은 정권교체 때마다 줄줄이 구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원세훈 원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선거법 위반, 개인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도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가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그런 정보기관다운 정보기관을 가져볼 수는 없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기 국정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르면서 후임 국정원장을 자신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병호라는 인물에게 맡겼다. 이병호? 언론들도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 신임 이병호 원장이 번역한 '기드온의 스파이'는 이스라엘 모사드의 활약상을 그린 첩보 관련 서적이다.

중앙일보는 이 원장을 “대사님”이라고 소개했고, 인터넷 매체인 뉴데일리는 ‘스파이가 뭔질 아는 진짜 스파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정보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기자는 모사드의 역사를 정리한 고든 토마스의 ‘기드온의 스파이’라는 두 권짜리 책을 탐독한 바 있는데, 바로 그 책을 번역한 사람이 이병호 원장이라는 사실을 이번 취재 결과 알게 되었다.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은 역대 정부 정보기관에서 27년 간 근무한 베테랑 정보 전문가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1987년 안보학 석사를 취득했고, 최근에는 울산대에서 북한학과 국제관계학을 강의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던 그를 두고 국정원 내외의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국정원장 적임자”라고 평한다.

육사 출신이긴 하지만 주요 경력을 정보기관에서 쌓았기 때문에 사실상 내부 승진으로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에 임명된 것은 노무현 정부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후 두 번째다.

1940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이 원장은 국립철도고등학교의 전신인 교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19기)에 입학했다. 1963년 소위로 임관하여 군 생활 중이던 1970년, 그는 현역 신분으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부름을 받고 파견 근무를 나갔다.

그가 중정의 부름을 받은 것은 육사 생도 시절부터 갈고 닦은 영어 실력 덕분이다. 그는 중정 산하의 정보학교에서 영어 교관, 즉 스파이들에게 국제 언어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첫 임무를 시작했다.

이 원장은 육사 19기 가운데 영어가 가장 뛰어난 두 명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활동한 권진호 씨. 이때부터 정보기관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27년을 한 우물을 팠다.

그의 군 경력이 정리된 것은 1981년이다. 현역 군인으로 정보기관에 파견을 나간 사람들이 1981년 일괄 전역 처리되면서 그는 육군 중령 신분에서 명실상부한 정보맨으로 거듭났다.

▲ 이병호 국정원장

 

<이병호 국정원장 약력>

1940년 경기 시흥 출생. 교통고등학교 졸업.
1963년 육군사관학교 졸업(19기), 소위 임관.
1987년 조지타운대 안보학 석사
1988년 국가안전기획부 국제국장
1990년 주미 한국 대사관 공사
1993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1997년 주 말레이시아 대사
2000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해외通으로 맹활약

동시통역이 가능할 정도였던 영어 실력은 이후 정보세계에 입문한 이 원장의 행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유로운 영어 의사소통 능력 덕분에 주로 해외공작 파트에서 근무하게 된다.

중정의 정보학교에서 해외공작국으로 자리를 옮긴 이 원장은 본부 데스크에 앉아 정보 분석을 하는 것보다는 주로 해외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현장 활동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이 원장은 주미대사관 참사관(1977년)과 공사(1990년) 등으로 여러 차례 미국 근무를 했다.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는 CIA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선진 정보업무에 대한 식견을 쌓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그는 안기부의 해외파트를 책임지는 제2차장에 임명되었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의 안기부 제2차장 후임자다.

그는 오랜 기간 음지에서 일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굵직한 공도 세웠다. 1997년 2월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황장엽 씨가 망명을 신청하고 67일 만에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도 이 원장이 기여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정보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그 동안 정권교체 과정에서 극심한 부침을 거듭하며 조직 자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2차장으로 회의에 참석한 이병호 원장. 좌로부터 이병호 원장, 당시 정형근 1차장, 권영해 안기부장, 김영삼 대통령

김영삼 정부 시절의 어설픈 안기부 개혁, 좌파정부 하에서의 베테랑 정보요원 숙청을 비롯하여 사상이나 국가관이 불분명한 외부 인사들의 대거 영입,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정치개입 의혹 등으로 인해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조차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부에서는 이빨, 손톱, 발톱 다 빠지고 패기마저 사라진 데다 정체성마저 의심받는 ‘치매 걸린 맹수(猛獸)’ 국정원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을 창설해야 한다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세계의 전문가들은 무장해제 된 정보기관의 기백을 되살리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신임 이병호 원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기관의 업무영역과 관련하여 자신의 소신을 확실하게 밝힌 바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안기부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기부가 산업정보 수집 업무에도 역량을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자, 이 원장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지론은 정보기관은 국가안보에 핵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책임을 져야 할 산업정보 수집 분야까지 국가 정보기관이 맡게 되면 그것은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역량이 분산돼 국가안보에 투입해야 할 능력이 손상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국정원의 역할과 관련하여 이 원장의 소신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CIA나 이스라엘 모사드, 영국의 MI6처럼 정보기관 고유 업무, 즉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고도의 첩보수집과 방첩업무, 정보 분석, 대북 정보 수집 및 주변국의 정보 위협에 대한 대응 등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리더십

이병호 원장은 1997년 주 말레이시아 대사로 부임하며 정보기관을 떠나 외교관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세상이다. 한국의 10년은 다른 나라의 30~40년에 해당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에서 정보세계와 18년 간 단절된 삶을 살았다는 것이 그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원장의 지인(知人)들은 그가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언론에 칼럼을 집필하며 지속적으로 국정원의 정체성 확립과 21세기를 리드하는 정보기관으로의 방향 정립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사색하고 공부를 해 왔다고 증언한다.

그는 18년 전 국정원을 떠난 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보기관과 고락을 함께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이병기 씨가 국정원장에 임명되었을 때 청문회 준비를 위해 조언을 구했던 사람이 이병호 원장이었다.

또 이 원장은 최근까지 국정원 자문단장으로 활동하며 조직 전반에 관한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전임자와 후임 원장의 끈끈한 인연이 사령탑 교체로 인한 조직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올해 75세라는 물리적 나이도 국정원장으로서의 격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핸디캡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술도 거의 하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건강과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축구, 배구 등 가리지 않고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고, 특히 골프는 에이지 슈터(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그 이하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사람) 수준으로 알려졌다.

인간 이병호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어떨까. 정보기관의 요직을 거친 사람답게 강직하고 국가관이 투철하지만,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든 현재의 국정원이든 우리 정보기관은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조직의 특성상 상명하복의 엄격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원장은 전통적인 우리 정보기관의 조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안기부 해외공작국에 근무할 때 이 원장을 상사로 보필했던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원장은 “우리 정보기관의 조직 분위기는 상사가 집어던진 서류가 날아다니고 군대식의 엄한 말투가 오가는 게 다반사인데, 이 원장은 부하 직원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썼으며, 한 번도 반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통에 노력하는 스타일이어서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도 매우 높았다고 한다.


‘진정한 광복’을 위한 국가지략센터로 탈바꿈 기대

이 원장은 지난 2013년(8월 28일자), 2006년(11월 28일) 등 두 차례 ‘미래한국’에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이 글에 국가 정보기관의 위상과 활동 방향 등이 확고부동하게 표현되어 있다.

2006년 칼럼에서 이 원장은 ‘대공(對共) 및 대북(對北) 정보 분야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간첩을 잡는 일은 어느 사이엔가 더 이상 애국적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정부가 싫어할까봐 눈치를 살펴야 하고, 통일 인사 탄압이라는 역공세를 걱정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 되었다’고 질타했다. 이를 뒤집어 유추하면 이 원장은 앞으로 대공 및 대북 정보 분야를 대대적으로 강화할 것이며, 간첩을 잡는 일이 가장 애국적인 일로 만들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13년 칼럼에서 이 원장은 ‘정보 업무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고도로 프로화돼 있는 전문 영역의 업무다. 국가정보(National Intelligence)란 국가안위 정보이기 때문이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청, 매수, 절취 등 특수한 방법이 총동원된다.

국정원은 바로 이러한 특수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라고 마련된 국가적 장치다. 다양한 국가이익 중에서 국가생존이익(national srvival interest)은 어떤 방법을 쓰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 국가정보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세번재 원장을 맞았다. 과연 신임 이병호 원장은 국정원의 모습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원장은 또 ‘국가안보를 위한 프로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의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 통일은 자유민주적 통일 여건을 확충해 나가는 공세적 작업을 통해 이뤄내야 하는 현상 타파의 과제다. 국정원만이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대북 기능이다.

단순히 간첩을 잡는 기능 차원을 초월하여 진정한 광복을 위한 국가지략센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강하고 예리하며 현명한(Strong, Sharp, Smart) 3S의 일류 정보기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방향을 정립했다.

이러한 이 원장이 비전이 성취된다면, 이제 우리 정보기관도 정권 안보를 위해 골방에서 댓글이나 날리다가 야당 인사들에게 근거지를 습격당하는 한심한 수준에서 벗어나 자국(自國)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 핵 과학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차례로 폭살시키고, 우리 국민과 군인을 사상케 한 범인들을 지구촌 끝까지라도 추적하여 처리해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우리 내부 단속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정원의 당면 과제는 국내에서 암약하는 종북 좌파,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정치권의 친북 세력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일이다. 국정원이 이병호 원장의 표현대로 ‘국가안보를 위한 프로 정보기관’으로서 이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국기(國基)를 지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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