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을 아는 한국인’이 될 수는 없을까?
‘고마움을 아는 한국인’이 될 수는 없을까?
  • 미래한국
  • 승인 2015.03.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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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문가 장상인의 일본탐구]

일본이 아무리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도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기술 선진국,
노하우 선진국이다. 북한이 급변사태를 겪을 때 우리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나라도 미국과 일본이다.
일본과 위안부 문제,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갈등이 계속되면 우리에게도 손해다.

“제가 방금 명동에 왔습니다. 소문대로 중국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더군요. 과거에 일본 관광객들이 다니던 거리를 중국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도미타 가즈나리 씨

일본의 유명 종합상사 출신인 도미타 가즈나리(富田一成·61) 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3년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그의 전공분야는 식품 유통이다. CJ, 롯데, GS 등의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어서 급히 내한(來韓) 했다고 했다.

지난 3월 6일 저녁 서소문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도미타 씨와 만났다. 먼저 소주로 건배를 했다. 그는 삼겹살이나 순대 등 한국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그는 한 때 ‘새마을 식당’을 즐겨 찾았다.

‘새마을 식당’이 값이 싸면서 한국적인 맛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연탄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란다. 도미타 씨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소폭’을 즐긴다. 소폭이 몇 잔 돌자 진솔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일본의 아베(安倍晉三) 총리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한일관계가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두 사람 공히 한 발자국도 물러서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에서는 양국 관계의 호전은 물 건너갔어요. 차기 후임자들을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격론(激論)! 콜로세움’의 현장

양국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말이다.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되면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피해를 본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정치인들에 대해 실망을 한다. 도미타 씨도 이번의 한국 방문에서 일이 잘 안 풀렸는지 평소와 다르게 강한 어조로 양국의 정치를 비판했다.

필자는 지난 해 한일 간의 현안 문제에 대해 논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나고야의 TV 아이치가 방영한 ‘격론(激論)! 콜로세움(Colosseum)’이라는 시청률이 제법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메인 진행자는 배우이자 기상 캐스터인 이시하라 요시후미(石原良純), 사회자는 저널리스트이자 전 NHK 아나운서인 호리준(堀潤), 그리고 정치를 좋아한다는 탤런트 하루카(春香) 양이었다.

고정 논객으로는 호소카와 마사히코(細川昌彦)와 탤런트 기타노 마코도(北野誠) 씨가 출연하고 이날 게스트 논객으로는 오사카 시립대의 박일 교수, 서울에서 온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실장, 다지마 요코(田嶋陽子) 전 참의원 등이 출연했다.

그날 토의된 여러 가지 현안 중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가장 뜨거웠고, 토론도 격렬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기 전, 자료 화면에서는 2008년 9월 7일 오키나와 현 미야고(宮古) 섬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의 기념비를 비췄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조선인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와 아리랑 비(碑)였다. 이어 주민들의 인터뷰와 기념비의 건립 배경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넓이 159.22㎢의 미야고 섬은 동지나 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원래 미야쿠라고 불렸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전쟁 중 이 섬에 16개소의 위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어 화면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있었습니다”라는 각기 다른 논조(論調)로 인터뷰한 한일 학자들의 주장이 나왔다.

자료 화면이 소개된 후 격론이 시작됐다. 오른편에 자리 잡은 일본 저널리스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들에게 성적(性的)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했고, 게스트 논객은 ‘캄보디아에서 한국 남자와의 국제결혼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실은 신문을 카메라에 비췄다. 이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대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박일 교수, 황영식 논설실장, 다지마 요코(田嶋陽子) 전 참의원 쪽에서 “엄연히 역사적인 사실로 존재한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를 위안부 문제와 연결시키지 말라”면서 반박했다.

토론자들의 목소리가 격앙됐고,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사회자의 중재와 중간광고로 인해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논객들은 휴식시간에도 물을 마시면서 논쟁을 계속했다.


냉각된 한일관계, 이대로 괜찮은가?

이어 진행자가 고노(河野) 담화를 정리하여 도식화한 패널을 제시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일본군의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공식성명이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통해 “전쟁 시절 위안부의 모집, 이송, 관리 등에 있어 감언과 강압에 의하는 등 전반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이 행해졌다”며 강제성을 인정했다.

또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과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도 참석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다지마 요코 전 참의원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 정부 입장에서 발표한 것을 재검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다지마 의원의 발언에 반론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격앙됐고 삿대질이 오고 갔다. 논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그었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의 해묵은 감정이 여과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방송국 스튜디오로 옮겨온 듯했다.

그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듯 TV 화면에 나란히 붙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사진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사회자가 시청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냉각된 일한(日韓)관계 이대로 좋은가?”

   
▲ 이토 슈니치 씨

마침 지난해 ‘격론(激論)! 콜로세움’ 녹화 현장에 필자와 함께 참석했던 TV 아이치 출신 언론인 이토 슈니치(伊藤俊一· 62) 씨가 서울에 왔다. 필자와 수 십 년 친구로 지내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인 이토 씨에게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저 역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싶습니다만, 양국의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쟁점은 위안부 문제와 같은 지나간 과거의 일들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 양국 간의 관계 진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과거사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양국이 감정적 대립으로 꽉 막힌 상태에서 경제와 문화 등의 교류를 멈춘 채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본인 떠난 자리 중국인이 메워

그러면서 그는 ‘겨울연가’로부터 시작된 한류 드라마가 일본 열도를 감동시켰던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겨울연가’ 드라마 한 편이 한일관계에 엄청난 일들을 이뤄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한국 문화에 대해 진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한일 양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한일 민간 교류가 크게 늘어났어요. ‘겨울연가’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배용준 등 한류 스타들과 관련된 연예계 소식을 비롯해서 한국에 대한 뉴스가 대세를 이뤘습니다. 제가 소속돼 있는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 회원들도 한국 식당에서 고정적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메뉴는 파전과 김치, 그리고 막걸리였습니다. 한때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한 해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0년 후 요즈음은 어떤 상황이 됐습니까. 일본 속담에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찾았던 명동 거리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 전 명동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난생 처음 겪어본 혹한(酷寒)에도 불구하고 명동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명동 거리에서 일본인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명동을 가득 메운 사람도, 안내문도 온통 중국어였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가깝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가 과거사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이에 중국의 패권 의식이 침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졌다고 해서 일본이 이러쿵저러쿵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일관계를 볼 때 앞으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한 때는 일본인들로 북적였던 명동 거리. 지금은 일본인들이 떠나고 중국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얼어붙은 한일관계, 이대로 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한 해 200만 명이 넘게 한국을 찾았던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걱정을 했다. 한때 필자도 일본 손님들을 안내하느라 휴일을 잃은 적이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아 옛날이여!’다.

이토 씨는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데는 정치뿐만 아니라 언론도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매스컴들이 지난 3월 5일 한국인에 의한 주한 미국 대사(리퍼트)의 피습 사건에 대한 보도를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매스컴도 일본에 대해 중간적 입장에서 균형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간 차원의 교류가 과거에 비해 활발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도 과거에 비해 일본과 인적·기술적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인 냉각 기류가 그대로 민간 기업에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정녕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토 슈니치 씨는 한국에서 보다 구체적인 안(案)을 제시해서 한일 양국에 내재된 생각의 차이를 좁혀보자는 제안을 했다.

“1965년 일한(日韓) 청구권 및 경제협력 협정에 의해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일체의 재산권 및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외교적 보호권은 포기됐으나 그 후에도 한국 국회, 사법기관, 한국 국민에 의한 대일 청구권 문제로 인해 대립하고 있지 않습니까?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이 어떻게 역사 인식을 하고, 어떻게 하면 한국 국민이 납득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자

필자가 만나본 많은 일본인들은 10여 년 전과 같은 우호적인 분위기 하에서 한국과의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자들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각자의 주장만 내세울 뿐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을 짚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생각의 차이를 좁히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죄(謝罪)하고 보상하면 될 일인데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한일 간의 거리(gap)가 있다. 우리는 이제 그 거리를 좁히는 데 있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보다 이성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토 슈니치 씨, 도미타 가즈나리 씨 등을 비롯한 필자의 일본인 친구들, 그리고 필자의 의견은 비슷하다. 아무리 논쟁을 벌여도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과거사 문제와는 별개로 해결 가능한 일들부터 먼저 해결하자는 것이다. 또 상대가 다가오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상대에게 다가가서 대안을 제시하는 아량도 지녀야 한다.

일본이 36년 간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면서 우리에게 수많은 아픔을 준 것을 잊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여 ‘다시는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도출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의 긍정적 역할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포항제철(포스코)의 성공 사례는 박태준 회장을 비롯한 포항제철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의 승리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이면에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측면에서 한국에 제대로 된 제철소를 지어줘 한국이 빠르게 산업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일본 기업인들, 그리고 신일본제철 감사역으로 한국에 파견돼 포항제철 건설을 헌신적으로 도운 아리가 도시히코 씨 등 일본 엔지니어들의 진정한 지원과 도움·기술제공으로 이뤄진 점도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진정성이 일본인들에게 전해질 때 일본도 ‘고마워하지 않는 한국인’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이웃으로서 따스한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예측 불허의 행동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한·미·일로 이뤄진 태평양 삼각 해양 동맹은 1953년 이후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고, 일본의 전후(戰後) 부흥과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이 아무리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해도 아직까지 일본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기술 선진국, 노하우 선진국이다. 북한이 급변사태를 겪을 때 우리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나라도 미국과 일본이다. 일본과 위안부 문제,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갈등이 계속되면 우리에게도 손해다.

이제 우리는 어두웠던 과거사 문제를 별건으로 다루고 밝은 미래를 향해 뛰어야 할 시점이다. 과거보다 더 큰 방향에서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래한국’으로 나가는 길 아니겠는가.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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