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
미국 주도의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
  • 미래한국
  • 승인 2015.04.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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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AIIB) 설립의 배경과 의미

AIIB는 중국의 화려했던 옛 영광을 재현하여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이 목표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州)의 브레튼우즈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마운트 워싱턴 호텔에서 역사상 중요한 회담이 열렸다. 

겉으로는 ‘유엔 통화금융 컨퍼런스’ 라는 다소 모호한 이름이 붙은 회담이었지만 지금은 이 회담이 브레튼우즈 회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회담을 통해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국제금융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를 출범시켰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슈퍼 파워로 등극한 미국이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금융통화 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한 회담을 3주간 개최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근간으로 한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 개편안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 영국은 방코라는 이름의 국제결제 화폐를 새로 발행하여 사용하되 이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국제결제동맹(International Clearing Union)을 설립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 안을 지지하면서 미국 주도의 금융질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국도 유니타스라는 이름의 국제결제 통화를 발행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이 통화는 발행되지 않았고, 달러의 금(金) 교환을 항상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통해 달러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면서 회담 이후 파운드 대신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달러의 금 태환 보장과 고정환율제를 근간으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한 후 한동안 이 체제가 잘 굴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달러 발행을 가속화했다.

그 결과 달러는 금 대비 6배 가까이 발행되었고, 결국 1960년대 중반부터는 달러에 대한 신화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금으로 교환하려는 골드러시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1971년 8월 미국은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을 통해 브레튼우즈 체제의 근간인 달러의 금 태환을 스스로 파기했다. 이 시점 이후 혼란이 야기되었지만 달러보다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각국은 변동환율제를 통해 주요 통화 간 교환비율인 환율이 매일 매시간 바뀌도록 조치하여 위기를 피했다. 


시진핑의 ‘이다이이루(一帶一路)’

달러는 지속적으로 주요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너진 것이 아니라 버전이 바뀐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출범 당시의 체제를 ‘브레튼우즈 1.0’으로,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를 ‘브레튼우즈 2.0’으로 부르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중국이 국제금융기구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많은 국가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소위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AIIB)의 설립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2014년 10월 24일 중국, 인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21개국이 AIIB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최근에는 영국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많은 국가들의 참여가 추진되면서 속내는 복잡해지고 있다. 

AIIB의 구상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놓은 ‘이다이이루’, 즉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라는 계획과 맞물려 있다.

시 주석은 2013년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중앙아시아를 대상으로 ‘실크로드 경제벨트’ 개념을 내놓았고 인도네시아를 방문해서는 동남아 및 서남아 국가들을 향해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계획을 제시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정리된 것이 ‘일대일로’ 개념이다. 

▲ 중국은 2013년부터 위안화의 기축통화 전략을 시작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국은 이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크로드 경제벨트는 중앙아시아까지의 시장을 교통망 등으로 긴밀하게 엮은 뒤 유럽까지 연장하는 전략을 담고 있고,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는 중국-동남아-인도양-유럽 국가를 잇는 해상 교역로를 건설하는 구상이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하나의 벨트(帶)와 하나의 길(路)’ 이란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배경까지도 제시되고 있다. 바로 당(唐)나라와 명(明)나라다. 

당은 육상을 통해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명은 해상을 통한 벨트를 만들었다. ‘이다이이루’는 옛 영광을 재현하여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중국은 관련국을 중국에 우호적으로 만들면서 미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대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밝힌 셈이다. 

중국과 아시아 인접지역을 물리적·경제적으로 연결시켜(互連互通), 1차적으로는 막대한 해외 인프라 투자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중국 내륙지역과 인접국가와의 경제적 시너지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이 처음 제기된 2013년부터 시종일관 시진핑 주석이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2015년 2월 1일에는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 주재로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공작회의’를 개최하여 향후 추진을 전담할 최고위급 작업반(領導小組)을 구성했다. 

AIIB는 이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추진되는 중이다.  

이밖에도 중국이 AIIB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은 두 가지 정도 더 제시된다. 하나는 중국의 해외투자전략 수정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2014년 자본 순수출국으로 전환하면서 해외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주로 해외 수출시장, 브랜드, 기술, 자원 확보에 주력하면서 지나치게 공격적인 해외투자 전략을 실행했다. 이런 전략이 선진국의 경계심과 아프리카 등 자원보유국의 반발을 낳은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은 AIIB 제안 및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해외투자가 아니라 국제협력과 파트너십을 통해 경제성장의 시너지 및 동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해외투자 모델을 추구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AIIB는 이러한 수정전략의 구체적인 산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의 기축통화 전략 

또 하나는 중국의 고성장·고투자 시대가 막을 내림에 따라 그 동안 급성장했던 중국의 교통, 통신, 전력, 원자재 산업의 출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긴박한 경제적 필요성도 AIIB 설립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간 지속된 중국 내 인프라 투자 열풍 속에서 중국의 철도, 통신, 전력, 토목, 원자재, 에너지, 물류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경험과 규모의 경쟁력을 갖췄다. 

2014년 포춘 500대 기업에 포함된 94개 중국 기업 중 50개 이상이 이들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이 공사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 

따라서 AIIB를 통해 아시아 인프라 구축이 진행되면 이들 기업들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이들 기업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중국의 국익(國益)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 논의도 중요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위안화 국제화 과제와 위안화 위상 제고 문제다. 중국은 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성공작이라는 평을 받을 경우 중국의 위상은 상당 부분 제고되면서 위안화의 국제화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항간에서 AIIB를 근간으로 한 위안화 기축통화 체제와 IMF와 세계은행을 근간으로 한 달러중심 체제가 공존하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러한 공존 체제를 ‘브레튼우즈 3.0’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 2014년 10월 24일 AIIB 참여를 희망하는 21개국 정상들이 베이징에 모여 AIIB 설립을 공식 선언했다. 총자본금 한도는 1000억 달러인데 중국이 500억달러를 부담하고, 나머지 500억 달러는 참여국의 GDP 비중에 따라 분배될 예정이다.

다소 성급한 진단이기는 하나 중국은 이미 이런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방향은 이미 잡힌 것으로 보인다. 

홍콩이라는 거대한 금융 허브를 소유한 중국은 이미 위안화 역외(域外)시장을 가동시키고 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영국이 런던을 위안화 역외시장 중 하나로 키우기 위해 AIIB 가입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영국이 위안화 국제화의 움직임에 민감할 만도 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이 은행의 창립멤버로 참여할 것을 사실상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행에 참여할 명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을 못하고 있는데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라면 가입을 할 실리와 명분이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을 이 기구의 회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 기구를 통해 북한 개발을 지원할 수도 있고 개방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미리 북한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되므로 우리에게는 상당한 이득이 되는 면이 존재한다. 

AIIB가 어느 정도까지 폭발력을 가질지 아직은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언가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우리가 변화를 주도할 수는 없어도 변화에 적응하는 부분에서는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흐름을 잘 읽으면서 국익을 추구해야 할 때다.


<거칠 것 없는 중국의 글로벌 금융 행보>

중국의 금융패권 도전 움직임은 세계은행(WB)에 대항할 신개발은행(NDB)과 국제통화기금(IMF)을 견제할 긴급외환보유기금(CRA) 설립 추진으로도 구체화되고 있다.

2014년 7월 브라질 포르탈레자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들이 모여 회원국들이 100억 달러씩 출자하여 신개발은행(NDB) 설립에 합의했다. 본부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두고, 최대주주와 의장국도  중국이 맡았다. 

브릭스 국가들은 지난 수년 동안 세계은행(WB)과 IMF에서 자국(自國)의 경제규모에 맞는 발언권을 요구해왔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에 부딪쳐 묵살 당하자 자기들끼리 뭉쳐 신흥국판 세계은행인 NDB를 설립한 것이다. 

브릭스 국가들은 NDB 설립과 함께 1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외환보유기금(CRA·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위기대응기금이라고 부르기도 함)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은 금융위기 발생 시 미국 달러화의 급격한 환율변동에 따른 신흥국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여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은행과 IMF가 모두 미국에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NDB도 중국 상하이에 두고, 최대 주주와 의장국도 중국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을 끌어들여 NDB와 CRA를 설립하여 달러 중심의 금융질서에 도전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지난해 8월 기준 글로벌 결제통화에서 위안화가 차지한 비중은 1.6%(미국 달러는 42.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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