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3년 6개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리더십
재임 3년 6개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리더십
  • 미래한국
  • 승인 2015.04.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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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관찰] 박원순 시장의 '주요 업적' 분석

노들텃밭의 도시 농업, 시청 옥상의 양봉은 중금속 범벅, 동성애자 축제 지원,
‘1급 해충’을 위해 1억5000만 원을 들여 곤충호텔 건설…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서울시장 공관에 입주했다. 고풍스런 한옥 주택들이 많은 종로구 가회동이라지만 박 시장이 입주한 지역의 임대료는 종로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비싸다. 

서울시가 새 시장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대한 저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방 7개, 욕실 5개가 있는 단독주택(대지 660㎡, 연면적 405.4㎡)이다. 

2년 전세보증금이 28억 원에 달한다. 저택의 소유자는 김포대 설립자 고(故) 전신용 씨의 차남인 전홍덕 전(前) 김포대 부학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박 시장이 공관에 입주하기 전 건물 리모델링 비용으로 8300여만 원을 사용했다.

▲ 2년 전세보증금 28억 원. 리모델링 비용만 8300만 원 사용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종로구 가회동 공관.

리모델링 내역은 출입문 신설, 화장실 정비, 내벽 해체 등 실내 정비, 붙박이장 이전 보완, 공관 회의실 조명 회로변경, CCTV 설치, 정원 수도관 신설, 회의실 에어컨 및 실외기 이설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정원 정비 비용에만 1100만 원이 들었다. 서울시는 공관 리모델링에 8300만 원을 사용한 이유를 이렇게 해명했다. 

“예전 은평구 공관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정원이 없어 잔디 식재 공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회동 공관에는 경비실 시설이 없어 경비원들이 근무할 공간에 출입구를 낸다든지 샤워장 설치 공사를 했다. 내벽을 허문 것은 공관의 1층 공간이 작아 20명 정도가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물어 테이블을 들여 놓은 것이다.” 

임대기간 2년의 전세로 입주하는 공관을 고위 공직자 한 사람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한 데 대한 비판이 일었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이 아니라 서울시장이 거주하는 곳이고, 기능을 위한 리모델링을 한 것일 뿐 호화롭게 꾸미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13년 3월 23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白麟濟) 가옥’을 시장 공관으로 사용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문화재 훼손 우려를 제기한 반대 여론으로 인해 뜻을 접은 것이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제22호로 등록된 ‘백인제 가옥’은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1913년 지은 대형 한옥으로, 일제 시대 일본 총독과 총독부 고위 간부들이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해방 후 백병원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백인제 박사가 인수한 후 ‘백인제 가옥’으로 불렸다. 백인제 박사가 6·25 때 납북된 후 후손들이 이 집을 관리해 왔다. 


박원순 시장의 ‘가회동 사랑’

서울시는 2009년 141억 원을 들여 ‘백인제 가옥’을 인수하고 22억 원을 들여 이곳을 중심으로 전통 한옥촌을 조성해 보존한다는 ‘북촌(北村)문화센터 조성계획’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 사업은 2011년 10월 착수 8개월 만에 중단됐다. 박 시장이 취임한 뒤 새 시장 공관으로 ‘백인제 가옥’을 지목했기 때문. 

박 시장은 ‘백인제 가옥’을 새 시장 공관으로 선정하고 분수대 및 휴게시설, 지하주차장, 지하 채광시설 등을 신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박 시장의 계획대로 하려면 ‘백인제 가옥’의 구조를 상당 부분 변경해야 했다. 

이렇게 되자 문화재위원회가 격렬히 반대했다. 결국 박 시장은 2013년 12월 은평구 뉴타운의 60평대 아파트를 ‘공관’으로 정하고 이사를 했다. 

이후로도 박 시장은 ‘가회동 공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종로구 가회동에 ‘28억 원짜리 전세 공관’을 마련한 것이다.
 

▲ 취임 후 아무 일도 안했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말을 듣는 박 시장. 진정으로 서울시민에 도움을 주는 정책을 기대한다.

박 시장이 재보선에서 승리했을 당시 33년 동안 서울시장이 사용했던 혜화동 공관은 문화재청의 ‘한양도성 복원사업’ 때문에 철거될 상황이었다.

박 시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관 입주를 고집, 4000여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현재 대구, 대전, 울산 등은 시장 공관이 없으며, 다른 광역 지자체장들도 점차 공관을 줄여가는 추세라는 점을 보면 박 시장의 공관에 대한 집착은 좀 특이하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박원순 후보의 구두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구두를 하도 오래 신어서 뒷굽이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뜯겨나간 사진을 보고 박 후보 지지자들은 “검소한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런데 며칠 후 그의 넥타이가 한 개 수십 만 원짜리 프랑스제 명품이라는 내용이 보도되자 침묵했다. 

이어 박 후보는 부채가 5억 1814만 원이며, 월세 250만 원짜리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6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재산 내역을 공개하면서 소란이 일었다. 

박원순 후보는 당시 본인 고향인 경남 창녕군 장마면 소재 토지 3528㎡(3902만 원)와 배우자 명의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 전세보증금(1억 원), 강남구 신사동 상가 임차보증금(1500만 원), 예금(3356만 원) 등 2억152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또 부인 강난희 씨의 개인 빚 4억2000만 원 등 5억8814만 원의 부채를 신고했다. 

서초구 반포동의 어지간한 60평대 아파트 월세는 보통 400만~500만 원이 넘는다. 박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것을 기준으로, 여기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최소 300만 원 이상 거주비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5억 원이 넘는 부채의 이자 상환까지 고려하면 매월 1000만 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박 시장 측은 “생활비가 없어 창녕 땅을 담보로 농협에서 돈을 빌렸고, 부인도 아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말했다. 

60평대 아파트 월세에 대해서는 “책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넓은 평수로 이사했다”고 주장했다. 


세빛섬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박원순 작품?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업적으로 꼽는 대표적인 사업이 반포 한강에 떠 있는 세빛둥둥섬(이하 세빛섬)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다. 

세빛섬은 오세훈 전(前)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2009년 9월부터 2011년 9월까지 1390억 원을 들여 건설했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당선 직후 오세훈 전 시장이 만든 세빛섬을 “전시행정과 혈세(血稅)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면서 개장을 중단시켰다. 

2009년 5월과 2011년 12월 서울시와 민자(民資)업체 간의 협약 변경, 2011년 12월 협약 변경을 통해 민자업체의 무상사용 기간이 30년으로 길어진 것을 두고도 “오세훈의 잘못으로 막대한 혈세가 샜다”고 주장했다. 

이후 세빛섬은 반포 수변지구 앞에 방치됐다. 그러나 수많은 관광객이 이를 보러오고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자 박 시장은 할 수 없이 세빛섬을 재개장했다. 

박 시장은 2013년 9월 12일 “세빛섬은 문화와 예술, 관광의 중심지가 됐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말을 바꿨다.

DDP도 사정은 비슷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인 2011년 11월 “오세훈 전 시장이 저지른 토목 전시행정의 표본이자 혈세낭비의 대표작”이라면서 완공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DDP의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후 2년 동안 DDP는 방치됐다. 2013년 박 시장은 DDP 공사 재개를 지시했고,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둔 3월 21일 DDP 개장식장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을 바꿨다. 

“DDP는 5000억 원이나 투자된 프로젝트지만 서울 도심 창조산업의 중심지로서 향후 20년간 13조 원에 달하는 생산·고용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DDP는 조화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이 될 것이다.”

▲ 박 시장이 취임 전부터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라고 비판하던 DDP는 이제 세빛섬과 함께 그의 대표적 자랑거리가 됐다.

박 시장은 이때 오 전 시장의 사업을 물려받았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 시장 지지자들은 “오세훈이 저지른 흉물을 박원순이 아름답게 새로 만들었다”며 그를 찬양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타요 버스’도 전임 오세훈 시장 때부터 검토해 추진한 사업이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내 재임 때 시행했으니 내 업적”이라고 자랑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처럼 박 시장이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운 것들 중 호평을 받는 사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전임 오세훈, 이명박 시장 때부터 추진해 왔던 프로젝트다. 

반면 박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 중 화제가 된 것은 한강 한복판 노들섬에서 시작한 도시 농업이었다.


중금속 농업의 실상 

박 시장은 2012년 6월 2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노들섬에서 ‘도시 농업 원년 선포식’을 가졌다. 박 시장은 이날 시민 1500여 명과 노들섬 텃밭에서 토종벼 모내기를 했다. 노들섬은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작은 섬이다.

전임 오세훈 시장은 이곳에 오페라 하우스 건설 계획을 세웠는데, 박원순 시장이 이를 백지화하고 2만2554㎡ 규모의 텃밭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오페라 하우스를 짓기 위해 270억 원을 들여 노들섬 일대를 매입했는데, 270억짜리 땅을 도시 농업을 위한 텃밭으로 쓴 것이다. 

석 달 뒤 언론들은 “노들텃밭을 아무도 돌보지 않아 엉망이 됐다”고 보도했다. 2012년 10월 추수를 하여 쌀 60kg을 얻었다는 기사를 끝으로 노들텃밭은 잊혀졌다. 

2년 뒤인 2014년 4월 22일 한겨레신문은 “도심 강, 도로변 나물 먹지 마세요”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 박원순 시장은 오세훈 전임 시장이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려 했던 한강 노들섬에다 도시농업용 텃밭을 만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KFDA)가 서울 강변북로 등 전국 14곳의 도로 및 하천 주변에서 쑥, 냉이 등 봄나물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 납, 카드뮴 등 중금속이 기준치의 3~4배 가량 함유돼 있다는 보도였다. 

박원순 시장이 만든 노들텃밭에서 수확한 쌀과 채소는 먹으면 중금속 범벅을 섭취하게 된다는 뜻이다. 

박 시장의 ‘중금속 유기농 농사’는 노들섬 이전에 광화문 광장에서 먼저 시작했다. 2012년 5월 박 시장은 시민단체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벼농사를 실시했다. 

지나던 서울시민들은 물론 좌파 성향인 진보신당도 “광화문 벼농사야말로 전형적인 전시성 행정”이라고 비판했지만 박 시장은 귀를 닫았다. 

이후 쌀을 수확했지만 박 시장은 두 번 다시 광화문 광장에서 벼농사를 벌이지는 않았다.

서울시는 수확한 쌀을 ‘불우이웃’에게 제공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쌀이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중금속에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박 시장의 또 다른 야심작 중 하나가 서울시청 옥상에서 시작한 양봉이다. 2012년 2월 10일 일본 도쿄를 방문한 박 시장은 도쿄 도심에서의 양봉사업장을 본 뒤 서울시청에서 양봉을 시작하여 2012년 6월에 꿀 40kg을 수확했다. 2013년 4월에는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서울 상암동에서도 양봉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최근 확인해보니 ‘서울도심양봉협동조합’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도시 양봉’을 계속하고 있다. 

참고로 밝히자면 꿀벌들이 도심에서 채취한 꿀은 중금속에 오염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함부로 먹으면 ‘중금속 덩어리’를 섭취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2014년 4월 6일 박 시장은 “서울시 곳곳에 27개의 곤충호텔을 짓겠다”고 밝혔다. 당시 박 시장은 진딧물, 가루이, 총채벌레 같은 ‘1급 해충’을 위해 1억5000만 원을 들여 곤충호텔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밖에 박 시장의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노숙자 스마트폰 및 온돌 피난처 지원은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었지만 미혼여성만을 위한 주택공급, 여대생들만을 위한 공공기숙사 설립, 불법체류자를 위한 복지 확대 등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동성연애자 축제 지원 등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노숙인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해 재기를 돕는다는 박 시장의 정책은 몇 건의 언론 보도 외에 그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줬을까.

박 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그가 취임 후 “아무 일도 안 했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말할 정도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시장은 “많은 시장들이 짧은 임기 중에 뭔가를 하려 전시행정을 했다”면서 “임기 중에 시장의 자기 브랜드를 내세워 억지로 자기 성과를 만들지 않고 서울시민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서울시 채무 20조 원 중 3조2500억 원 상환 ▲공공임대주택 8만 호 건설 ▲지하철 9호선 재구조화로 세금 3조2000억 원 절약 ▲복지예산 32%까지 확대 ▲올빼미 버스(심야 버스) 운행 개시 등을 내세웠다. 그의 업적 기운데 실제로 박 시장 재임 중 아이디어를 내서 추진한 사업은 심야버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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