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국제정치학
한일관계의 국제정치학
  • 미래한국
  • 승인 2015.04.08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근의 전략이야기
   
 

신흥 강대국의 급격한 부상은 언제나 국제정치의 대격변을 불러 일으켰다. 신흥 강대국은 자신에게 불리한 국제 구조를 원천적으로 변경시키려 했고 기왕의 강대국은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마다 세계적 규모의 대전쟁이 발발했다.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냐의 이슈를 두고 강대국들이 벌이는 대전쟁은 패권전쟁(Hegemonic War) 혹은 지구적 전쟁(Global War)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빌헬름의 독일, 히틀러의 독일, 소련 등이 패권에 대한 도전국가들이었고 영국, 미국은 패권을 지키려던 나라들이었다. 나폴레옹전쟁, 양차 세계 대전, 40년 이상 끌어온 치열한 미소 냉전 등이 패권 전쟁의 사례이다.

중국의 급부상

소련 붕괴 이후 10여년 간 미국은 패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패권 경쟁자로 인식하게 했다. 미국과 소련의 패권 대결을 냉전(Cold War)이라고 불렀던 것에 빗대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냉랭한 전쟁(Cool War) 라고 부르는 학자까지 나타났다.

그동안 화평굴기(和平山屈起) 도광양회(韜光養晦) 등의 수사로 자신의 부상을 감췄던 중국은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자신이 G2의 일원임을 표방하고 미국과의 대결을 공식화 했다. 힘이 더 증가하게 되면 중국은 아시아에서는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도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미국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호락호락 내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강대국의 행동 원칙에 전혀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강대국들의 경쟁은 주변 나라들의 국가안보와 대외전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는 강대국들이 싸울 때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다. 저들 강대국은 우리나라의 땅과 바다에서 싸웠다. 남들이 싸우는 전쟁일지라도 그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의 막강한 힘이 필요하다.

약한 나라들의 대외정책은 크게 두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웃의 막강한 나라에 대항 함으로써 자존과 독립을 지키는 방법과 굴종 혹은 편승의 방법이다. 앞의 방법은 학술적 용어로 균형(Balancing)이라 하는데 위험하지만 독립과 자존을 보장한다.

뒤의 방법은 편승(Bandwagoning)이라 하며 쉬운 일이지만 독립과 자존이 훼손된다. 다만 살아남는 것은 보장된다.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에 대해서 취한 방법이, 살아남는 대신 중국에 주권과 자존을 일부 양보해야 하는 편승의 전략이었다.

반면 한국은 냉전시대 동안 군사력을 기르고 적극적으로 미국과 동맹해 이웃에 있는 공산주의 강대국들에 대항하는 Balancing 전략을 취했다. 냉전체제 하의 대한민국은 가장 적극적으로 자유진영, 미국진영을 위해 싸운 전사(戰士)였다. 냉전의 최전방에서 한국은 북한은 물론 중국, 소련과 맞서 싸웠고 월남에도 5만 명의 대병력을 파견, 미국의 전쟁 수행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은 그런 한국을 고마워했고 한국에 ‘경제 발전’이라는 반대 급부를 제공했다. 사실 냉전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자유주의 경제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냉전의 최전방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한국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였다. 이는 한국이 경제 기적을 이룩 할 수 있는 막강한 배경이었다.

냉전이 종식된 후 한국은 냉전시대의 어렵던 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으로는 안보 이익을 누리는 한편, 중국으로부터는 경제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소련과도 잘 지내고 심지어 북한과도 잘 지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좋은 시절이 빨리 종식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급부상 때문에 초래된 국제환경 때문이다.

양다리 걸치기는 불가능

한국이 중국과는 경제, 미국과는 안보라는 양다리 걸치기가 점점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한국에 자국의 입장을 지원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일층 강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기 원한다.

한국이 애매한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일본은 잽싸게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변화된 갈등 구조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아소다로 관방 장관은 “일본은 지난 1500년 동안 중국과 잘 지낸 적이 없다”고 공언, 중국에 맞서줄 수 있는 진짜 동맹국은 일본뿐이라는 사실을 미국에 주지시키려 했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논란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도발, 우경화 움직임으로 한일 관계는 어느때보다 악화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을 ‘동북아 안보의 초석(Corner Stone)’이라고 칭하고 있었던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에서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한국은 동북아시아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라는 말로 극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이 한국을 린치핀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일본의 식자(識者)들은 적지 않게 놀랐다. 한국의 성장과 일본의 몰락을 상징하는 말로 인식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중국의 부상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과 정치가들의 정서적(情緖的) 국제정치관은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이 언제 일본과 우호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지를 논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부터 핵폭탄 세례까지 받은 일본이, 그리고 일본인들과 그렇게 잔인한 전쟁을 벌인 미국이 오늘처럼 잘 지내고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가이익과 전략은 과거의 적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게 만들고 오랜 친구도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릴 수 있다. 이제 우리도 감상주의를 버리고 국가이익과 전략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일본과 지속적으로 적대 관계를 지속할 경우 한국은 전략적 파탄 상태에 놓이게 될 가능성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는 최근 중국과는 대단한 우호관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중국 역시 일본 못지않게 우리나라를 힘들게 했던 나라다.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정신대는 처절하게 기억하면서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중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 들의 비참한 이야기는 기억에서 지우면 안 된다.

국가안보 전략의 요체는 잠재적인 적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나라로부터 나오는 두려움과 위험을 완화 시키는 데 있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라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가 잠재적인 적국이다. 한때는 일본이 그런 나라였고 지금은 중국이 그런 나라다.

특히 미중관계가 국제정치의 핵심이 될 21세기 동북아 정치에서 한국이 중국과 친하려 하고 일본과는 지속적으로 적대하는 경우, 한국은 궁극적으로 미국과도 적대관계에 놓일지 모른다.

만약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하나를 전략적 파트너로 택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미국은 누구를 선택할까? 국제정치는 도덕률이 아니라 국가이익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를 위한 제1 요인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늘리는 일이요, 제2 요인은 한미동맹의 강화다.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막강해질 일본과 대적하고 미국마저도 잠재적인 적대세력으로 만들지 모를 한일 적대감의 악화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