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김일성의 남침전쟁 승인하다
스탈린, 김일성의 남침전쟁 승인하다
  • 김용삼 기자
  • 승인 2015.04.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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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의 현대사 파일] 1950년 4월 10일 역사 속의 오늘

4월 10일은 우리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바로 65년 전인 1950년 4월 10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이 남침전쟁을 요청하자 스탈린이 이를 공식으로 승인한 날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소련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두 번째로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세 차례 회담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 국제국이 작성한 ‘1950년 3월 30~4월 25일 김일성의 소련 방문 건’이라는 문서에 의하면 4월 10일 회담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한 것으로 당시 정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전쟁을 요청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두 차례 스탈린을 면담하고 남침전쟁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시기상조라면서 승인을 하지 않았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은 1994년 일부 공개된 ‘구 소련 비밀외교문서’에 나와 있다. 다음은 3월 7일 스탈린-김일성 면담 기록.

<김일성 : 스탈린 동지, 이제 상황이 무르익어 전 국토를 무력으로 해방할 수 있게 됐다. 우리 군대는 강하고 남조선에는 강력한 빨치산 부대의 지원이 기다리고 있다.

스탈린 : 남침은 불가능하다. 첫째 북조선 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수적(數的)으로도 열세다. 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한다. 셋째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아직도 38도선 분할협정이 유효함을 기억해야 한다.

김일성 : 남조선 인민들은 하루빨리 통일을 해 반동 정부와 미 제국주의자들의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스탈린 : 적들이 만약 침략 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먼저 공격을 해올 것이다. 그러면 절호의 반격기회가 생긴다.>

3월 17일 소련과 북한은 문화 및 경제 관계 조약과 더불어 비밀 군사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이 비밀 군사원조협정에 의해 소련은 북한에 6개 보병사단, 3개 기계화 부대, 8개의 국경수비대대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 그리고 정찰기 20대, 전투기 100대, 폭격기 30대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이밖에도 100명이 넘는 소련 군사고문단을 1년 예정으로 북한에 파견하기로 했는데, 그 첫 그룹이 1949년 5월 북한에 도착했다. 북한군의 전력 증강은 1949년과 1950년에 걸친 겨울에 계속됐다.

1950년 봄에 소련으로부터 북한으로 무기 공수가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소련은 인민군 1개 사단에 소련 장교 15명씩을 배치했다. 그리고 180대의 군용기,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타이거 전차를 격파하는 데 전공을 세운 T-34형 전차 300대, 야포와 자동화기 등 다량의 현대 무기를 북한으로 반입했다. 북한은 일제가 북한 지역에 건설해 놓았던 수많은 기계, 화학공장 덕분에 북한제 국산총인 따발총(多發銃)과 해안경비정을 만들어 실전에 배치했다.

반면에 미국이 6‧25 전까지 한국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해군 소해정 30여 척, 연락기(L-5형) 10대에 그쳤다. 한국 국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10대의 훈련기(T-6)를 구매하려는 우리 정부의 판매요구를 거절하여 결국 캐나다로부터 구입했다. 그 결과 6‧25 발발 당시 육군의 장비는 장갑차 27대, 57㎜ 무반동총 140정, 2.36인치 로켓포 1900문, 구형 105㎜ 야포 91문이었다.

이쯤에서 6·25를 전후한 세계사의 맥락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1945년 7월 17일 뉴멕시코 주에서의 핵실험으로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쥔 데 이어 소련도 미국 내에서 암약하던 소련 간첩들이 제공한 핵무기 기술정보를 바탕으로 1949년 9월에 핵실험에 성공하여 ‘공포의 균형’ 상태가 유지됐다.

▲ 스탈린은 1950년 4월 10일 김일성에게 남침전쟁을 승인했다. 그리고 소련군에게 지시하여 남침작전계획서를 만들어 그 계획대로 6월 25일 남침전쟁이 벌어졌다.

김일성이 스탈린과 만난 지 한 달 후인 1949년 4월 21일, 중국 공산당 군대가 양쯔 강(揚子江)을 건너 장제스 정부의 핵심 도시인 난징(南京)을 함락시켰다. 장제스 정부를 지원했던 미국은 중대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파병할 여력이 없었다. 이 상황을 예의주시한 스탈린은 김일성이 남침해도 미군이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난징을 함락시킨 마오쩌둥(毛澤東) 군대는 양쯔 강을 건너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를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중국대륙이 공산화됐고,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유는 1938년 당시 중국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소련 유학파를 마오쩌둥이 숙청했으며, 1941년 소련이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일본의 소련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이 대일 공세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마오는 이를 거절했다. 스탈린은 중국공산당이 결국 반소(反蘇), 반(反)마르크스 단체로 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탈린은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으로 오랫동안 난타전을 벌여 서로 힘이 빠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손쉽게 장제스를 제압하여 전 중국을 차지하자 소련의 입장이 묘하게 됐다. 중국이 유고의 티토 식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미국과 타협하면 소련이 고립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티토의 독립노선을 용인할 수 없었고, 마오쩌둥 혼자 아시아의 영웅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건국 후의 중국에 대해 이전처럼 중국과 북한의 연합을 막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남은 방법은 자신이 아시아 혁명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김일성이 남침 허가를 요청하자 스탈린은 김일성을 이용,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을 격화 또는 악화시키고, 유럽에서 미국의 무장력을 약화시킨다는 전략을 구상한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을 요청하자 스탈린은 4월 10일 남침을 허가했다. 스탈린은 바실리예프 중장을 평양 주재 소련 군사고문단장으로 보내 북한의 남침 공격을 위한 작전계획을 작성했다. 스탈린은 김일성과의 모스크바 회담에서 다음과 같은 전쟁 구상을 밝혔다.

“북한의 공세 작전을 위해 엘리트 사단을 창설해야 하며, 기동 및 전투 장비는 기계화하고 무기는 완전히 보충되어야 한다. 그리고 3단계 공격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1단계로 전투력을 38선 일대에 집중 배치하고, 제2단계로 북한은 평화 통일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제3단계로 한국이 평화 통일 제안을 거부한 후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누가 침공했는지의 문제를 감추기 위해 먼저 옹진반도를 점령하는 것에 동의한다. 한국과 미국이 체계적으로 저항하거나 국제사회의 지원을 동원할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이 전쟁은 기습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소련은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마오쩌둥이 ‘아시아 문제’에 정통하니 그에게 맡겨야 한다.”

1950년 5월 마오쩌둥을 만난 김일성은 “우리는 2~3주 안에 남한 점령을 끝낼 것이므로 미군이 구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마오쩌둥은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비하여 3개 군 병력을 중·북 경계선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남침을 이용해 미군을 끌어들이고, 중공군마저 한반도로 불러내 미국과 싸우게 만들려는 스탈린의 책략이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후 6·25는 스탈린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남침작전계획을 작성해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에게 넘겨주었다. 

강건은 러시아어로 작성된 이 계획을 한국어로 번역해 김일성에게 보고했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이 계획의 초안을 「선제 타격 계획」이라고 명명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반격 계획」이라고 표기했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북한군 군단과 사단 사령부에 배치되어 공격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부대를 지휘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무력 남침을 개시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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