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만능주의에 빠진 입법부의 暴擧
法 만능주의에 빠진 입법부의 暴擧
  • 미래한국
  • 승인 2015.04.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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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違憲的 입법 남발하는 난장판 국회

그 어떤 다수결로도 결코 침범되지 않는 영역을 미리 설정해야

▲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영란 법(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은 과연 법이란 무엇인지, 우리나라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이 과연 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문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법안은 우선 대한민국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명분론(名分論)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목적과 명분만 좋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통용되는 것이 명분론이 지배하는 사회의 특징이자 문제점이다.

‘부정부패 일소, 사회기강 확립, 건전하고 투명한 사회 건설’이 김영란 법의 입법 목적이다. 

알고 보면 이런 식의 명분에 휩싸인 입법은 김영란 법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내고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중소기업보호법’을 만든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 m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누구든 차별 없이 똑같은 가격에 휴대폰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단말기 유통법’을 만든다는 데 반대할 수 있을까? 

동네 서점 살려야 한다며 할인하지 말고 정가대로만 팔라고 하는 ‘도서정가제법’을 만든다는 데 반대할 수 있을까? 


명분 옳다면 누구도 반대 못 해 

그 결과는 19대 국회 개원부터 1년간의 입법 상황을 연구 분석한 보고서(자유경제원의 19대 국회 1차 평가보고서)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석대상 전체 269명의 의원 중 시장 적대(敵對)적인 의원이 98.5%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시장 친화(親和)적인 의원은 단 1.5%인 4명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명분이 좋다고 해서 그것을 채우는 내용까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명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일단 명분이 옳다고 인식되면, 그 내용 여하를 불문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아니, 명분론이 득세하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이미 관심 밖이다. 그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를 하는 것은 명분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몰려 자칫하면 정치적, 사회적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면 이번 김영란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명분론이 어느 정도 득세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반대표가 좀 있을 줄 알았습니다. 표결 전에 이야기 나눈 의원 모두가 김영란 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표는 예상외로 적더군요. 언젠가부터 김영란 법의 무조건적인 통과는 선(善)이고 이 법률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마치 부패를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잘못된 이분법이 생겼습니다”(김용남 새누리당 의원) 

▲ '사실은 위헌'임을 알면서도 김영란 법을 통화시킨 국회. 도대체 이 나라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법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든다.

여러 부실 입법 중에서도 김영란 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국회의 입법권을 너무나도 벗어난 졸속 입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우선 김영란 법은 의원들 스스로도 자인했듯이 위헌(違憲)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민간 영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김영란 법은 본래 기존의 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운 공직자의 부정과 금품수수 등을 막아보자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그런데 법안이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는 과잉 입법으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이밖에도 부정 청탁 개념의 모호성, 민간 영역 중에서도 일부는 제외하고 다른 일부만 규제한다는 점 등 여러 헌법상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아연실색할 일은 무려 92.3%의 찬성률로 이 법을 통과시킨 국회가 자신들의 손으로 방금 통과시킨 법에 대해 위헌 문제가 있다고 자인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여야(與野) 지도부들이 ‘김영란 법은 사실은 위헌’이라는 말을 정말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정치인들의 뻔뻔함과 ‘이래도 괜찮겠지’하면서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행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사실은 위헌’임을 알면서도 통과를 시키는 국회라면, 도대체 이 나라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법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커다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법의 정당성과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또 하나 기가 찰 일은 불고지죄(不告知罪)의 적용 범위를 놓고 벌어졌다. 이 법안을 놓고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에서 불고지죄의 적용 범위를 가족에서 배우자로 한정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인륜(人倫)에서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즉, 부모 자식 간 혹은 형제자매 간 신고하는 것은 인륜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신고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는 “배우자는 일심동체(一心同體)니까 돈 받으면 신고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부부 간 상호 감시하고 신고하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인가. 정치권이 가족 관계, 부부 관계를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바라보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런 법 같지도 않은 법을 만드는 것은 법 만능주의에 빠진 입법부의 폭거(暴擧)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법부의 이런 폭거를 막을 해결책은 현재로서는 딱히 없다. 

법안에 법안을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영원토록 따라다니도록 하는 ‘법안(法案) 실명제’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가 기대될 뿐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이라는 말도 있듯이 졸속, 부실 입법이 횡행하는 것도 결국 ‘표’ 때문이며, ‘법안 실명제’도 이 유혹을 견디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현명했던 자유주의자들은 그래서 ‘무제한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제한적 민주주의’를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 어떤 다수결로도 결코 침범되지 않는 영역을 미리 설정해 두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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