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예의가 바르다...왜?
일본인은 예의가 바르다...왜?
  • 미래한국
  • 승인 2015.04.2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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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탐구] 일본의 가정·학교교육

한국은 지식 전달, 입시 위주 교육에 전력투구
일본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우며,
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한 규칙 준수,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배려의 정신 가르쳐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꿇어!…모멸 사회, 치를 떨다.” 

3월 21일자 한국일보의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땅콩 회항,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을 예로 들면서 폭언(暴言), 무시, 억압 등 모멸(侮蔑)적인 말이나 행동이 상대의 적개심을 자극하여 계획적인 범죄, 또는 묻지 마 범죄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우월감=행복감이라는 그릇된 세태가 사회의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언제부터인가 인정이 메말라버린 우리 사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몬스터(monster·괴물)를 수시로 출현시키고 있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억척스러워서 가정교육이 엄격했고, 아버지가 그것을 커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풀이 죽어 있으면 아버지가 산책을 데리고 나가 스미다 강(隅田川: 도쿄 북구의 하천)을 걸으며 강의 흐름과 하늘의 드넓음…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즐기며 보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일본의 유명 시인 다카다 토시코의 수필 ‘소학교 시절의 일’에 들어 있는 한 구절이다. 짧은 문장에서 가정교육이 엄격한 어머니와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묻어난다. 

고베(神戶)에 살고 있는 필자의 지인 이와타 고하치(岩田耕八·72) 씨는 “일본은 예로부터 무서운 것 4가지가 있다”고 했다. 지진, 번개, 화재, 그리고 아버지란다. 일본의 아버지들은 지진만큼 무서운 모양이다. 

보통은 아버지가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이거늘 다카다 토시코 시인의 집안은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엄격했던 것 같다. 

다카다 시인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면서 “안데르센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일이 생각난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그 선생님의 나이는 25세. 시인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러한 선생님의 모습이 참 교육이다”고 회고했다. 

“성적은 중간 정도. 공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없지만 학교 다니는 첫째의 재미는 점심 도시락을 선생님과 교실에서 함께 먹고, 식사 후에 두툼한 안데르센 동화책을 펴서 읽어주시던 일이었습니다. 한 편을 끝까지 읽어주시지 않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에서 ‘다음은 내일 또~’ 하시며 내일의 즐거움을 남기셨습니다.” 

글로 접한 내용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자체가 바로 동화 속 이야기다. 우리는 이러한 추억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을까. 


‘예의 바른 일본인’의 근원은 가정교육 

가정교육이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인격 형성과 지식 획득 등을 도와주거나 가르치는 인간형성 작용’을 말한다.

일본도 개념 자체는 우리와 유사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정 내에서 언어와 생활 습관, 커뮤니케이션 등 라이프 스킬(life skill)을 몸에 배도록 지원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질서의식이다. 일본인들은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줄을 서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교통질서도 그렇다. 뭐가 그리 바쁜지 신호를 무시하거나,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서둘러 길을 건너려고 애를 쓰는 것이 한국인이다. 그리고 일본의 거리는 어디를 가도 깨끗하다. 

큰 길 뿐만 아니라 후미진 골목이나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많이 깨끗해졌지만, 아직도 골목길이나 화장실 등의 청결도는 일본에 못 미친다. 

부산의 한 구청에서 쓰레기 치우기를 거절한다는 뉴스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우리의 민도(民度)를 보여주는 한 측면이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필자의 전 회사 직원이 일본 도쿄 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토로하던 불평을 예로 들어본다. 

그 직원에게는 초등학교 1, 2학년 두 아이가 있었다. 일본에 근무하던 시절 두 아이는 집 근처의 일본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몸부터 깨끗이 씻고 양말 등은 벗어서 세탁기에 넣었으며, 옷은 가지런히 접어 일정한 장소에 놓았다. 

그러던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순식간에 돌변했다. 직원의 하소연이다.  

“일본에서 서울 본사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옷가지는 물론 모자 양말 등이 집안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녔으니까요. 저희 집사람이 호통을 치면서 시정을 촉구했으나 전혀 달라지지 않더군요.” 

일본에서는 부모는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물론 학교 생활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과 행동에 대해 아이들을 지도한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선생님들은 학교에서의 매너나 공부는 물론이고 공중도덕과 가정에서 해야 할 지침까지 철저하게 가르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일본의 전통이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원칙과, 남에 대한 배려를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히 가르친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가정교육의 기본 방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가정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의 기반이며 모든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한편 지역과의 연결이 점차 약해지고, 부모가 친밀한 사람으로부터 육아를 배우거나 서로 도울 기회가 줄어드는 등 육아나 가정교육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지역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부과학성은 모든 부모가 안심하고 육아나 가정교육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학교교육도 잘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은 아직도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교생들까지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닌다.

▲ 일본에서는 한겨울에도 어린 학생들에게 반바지를 입혀 등교시킨다. 추위를 이기는 정신 무장을 위해서다. 아이들 감기 걸릴까 두터운 점퍼에 목도리에 중무장을 하다시피 하는 한국 아이들과 비교가 된다.

또 초등학생들은 남녀 공히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는다. 이는 겨울철에도 마찬가지다. 우리처럼 혹독한 추위는 아니더라도 일본의 성인들은 겨울철에 두툼한 털옷을 입는다.

그런데도 어린 학생들이 추위에 다리를 노출하는 옷을 입도록 한 것은 일종의 체력단련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려서부터 추위를 이기는 정신 무장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본의 아니게 남의 발을 밟는 경우가 있는데,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인은 이런 경우 수차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우리는 이런 사과에 익숙하지 못하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일본인에 대해 흔히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일반인의 생활 태도나 예절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뜯어보면 배울 점이 많다. 친절, 예절, 성실, 검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자세, 진지한 업무 태도,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것은 많다. 국화, 칼, 사쿠라(벚꽃), 후지산, 사시미(생선회)…. 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은 사무라이(侍)다. 

사무라이란 모실 시(侍), 즉 ‘윗사람들 모신다’는 뜻이다. 이는 윗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는 뜻이며, 명예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혼(魂)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 국어사전에는 사무라이(侍)를 ①칼을 차고 무예를 갖춰 주군(主君)을 섬기는 자 ②에도(江戶·도쿄의 옛 이름)시대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중 사(士)의 신분을 가진 상급(上級) 무사 ③상당한 인물, 기골이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무사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5가지 덕과 충(忠)·효(孝)를 더한 7가지 덕을 중요시하는 무사도를 숭상한다. 

무사들은 특히 의(義)를 중시한다. 의리(義理)·인의(仁義)·충의(忠義)·은의(恩義)·신의(信義) 등이 모두 의(義)를 바탕으로 지켜야 할 덕목들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친절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일본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내재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은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고 했다. 

▲ 필자의 일본인 친구 오쓰보 씨

실제로는 어떨까. 일본인으로부터 자신들의 기질을 직접 들어보았다. 필자와 30년 가까이 국경을 초월해서 우정을 쌓고 있는 후쿠오카의 오쓰보 시게다카(大坪重隆·74) 씨의 말이다.

“일본에는 유교적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연령(年齡)은 모든 것의 지표로서 연장자를 경외한다는 자세를 어릴 적부터 주입합니다. 특히 도(道)와 관련한 유도, 검도, 서예, 꽃꽂이, 다도(茶道) 등 매너를 중시하는 다양한 일본의 전통 문화를 통해 하나의 정신을 배우도록 하며,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그것이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존중하며, 예의범절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틀 안에서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고 최대한 상대에 맞춘다는 일본 특유의 생각이 내재(內在)하며, 그런 가운데서 창의적으로 연구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늘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필자와 오쓰보 씨는 특별한 이해관계 없이 오랜 세월 존귀한 우정을 맺고 있다. 그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종교가이자 작가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의 ‘명언 100선(選)’에 들어 있는 다음의 글이 떠오른다.

“변함없는 우정은 어떠한 보배보다도 존귀하다. 술책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실한 우정을 맺고, 그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이 곧 빛나는 인생이다.” 


‘세상 사람에게 뒷손가락질 받지 않게’

오쓰보 씨는 “일본인의 배려와 협동정신은 농업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지역 내의 인간관계가 매우 깊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지역이 일체가 돼 물을 관리하고, 누구의 논밭이라도 성수기에는 서로 돕는다는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내의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생활을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정신이 사회적 유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쓰보 씨는 “장남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는 정월이나 추석에 친족 전원이 모이면 친족 간담회를 열어 예절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효도, 부창부수(夫唱婦隨),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을 철저히 훈계하고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가정교육이 밑거름이 되어 일본인들의 일상은 ‘세상 사람에게 뒷손가락질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도 교사들의 학생 구타나 학교 폭력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일본도 이제 시대가 변하면서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해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보다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찬스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IT 기기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관계의 퇴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들도 제기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들의 진화로 인해 부모 자식 간은 물론 스승과 제자, 친구들 간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그 결과 일본의 자랑이었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도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그들은 다음 세대를 담당할 인재 육성을 위해 ‘정신문화를 높여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통렬하게 느끼고 있다. 퇴색된 무사도(武士道) 정신의 부활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한 인간들의 대화 단절 현상은 일본보다 우리가 훨씬 심각하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도 대화보다는 문자 메시지가 대화를 대신하는 시대다. 

하긴 문자 메시지로라도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정작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항목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하며, 사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규칙을 지키고,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배려의 정신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뒷전으로 미룬 채 지나친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을 보면서 한국이 걱정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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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형 2015-08-25 11:08:17
일본은 대단한 국가입니다 좋은 것은 배워야합니다.

김도연 2015-07-15 01:02:1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