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는 없다! 오직 ‘G1’ 미국이 있을 뿐
G2는 없다! 오직 ‘G1’ 미국이 있을 뿐
  • 미래한국
  • 승인 2015.05.1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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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중국에 굴종적이고, 일본에 적대적이며 미국과는 사무적인 나라로 행동하면
韓美관계의 미래는 전혀 낙관할 수 없어

 

최근 중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을 향해 “중국은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취임 이후 지난 2~3년 동안 중국은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한다’는 의미의 주동작위(主動作爲)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으나 2014년 후반 무렵부터 갑자기 다시 화평굴기(和平屈起), 도광양회(韜光養悔) 즉 ‘평화롭게 부상(浮上)한다’, ‘낮은 자세로 때를 기다린다’ 등의 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미국이 몰락하는 줄 알고 섣불리 대들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갑자기 인식한 것이다. 미국은 작년 석유 및 가스 생산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에너지 혁명이 진행 중이다. 지하 3000m의 셰일 바위층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가스를 싼 값에 채굴할 수 있는  혁명적 기술을 개발한 덕택이다.

물론 미국의 회복이 석유, 식량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다는 데서만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력이 타의 추중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한 이유는 풍부한 자연 자원보다는 창의력이 풍부한 인적(人的) 자원과,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 경제제도의 특성 때문이다.
 

미국의 시대는 오래 간다

일본, 중국 등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진정한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가 되지 않는 한 이들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4년 세계 전체의 발명 특허 13만3000건 가운데 48%가 미국에서 나왔다는 사실, 세계 100대 대학 중 70개 이상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 일본, 중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이 노령화라는 인구통계학적 악재(惡材)에 시달리는 데 반해 미국은 그런 문제가 거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웃에 캐나다, 멕시코 등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들밖에 없다는 지정학적 유리(有利) 등이 미국을 막강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작년 12월 중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중(美中) 통상무역합동위원회(JCCT)에 참석한 왕양(汪洋) 부총리는 “세계를 주도하는 건 미국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랐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중국은 미국에 도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미국의 주도적 위치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0일 진찬룽(金燦榮) 런민대(人民大)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은 계속 낮은 자세의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고, 이틀 뒤엔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이 “중국은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발언했다.

이런 현상이 한국 국민들에게는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이제 머지않아 중국이 G1이 되리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조정래 작가의 말을 더 신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G1이 될 것이냐는 소설이 아니라 논문이나 학술 서적을 읽어야 알 수 있는 주제다.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한 적조차 없었다. 최근 박철희 서울대 교수가 조선일보 시론에서 주장한 다음의 글은 국제정치학의 정통 이론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이 양대 강국(强國)이라는 의미의 G2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일상화돼 있다. 미국은 아직 중국이 자기와 동등한 경쟁자가 아니라서 G2라 부르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처럼 국제사회의 관리를 책임질 능력이나 의향이 없어서 이 표현을 삼간다. 일본은 자기네가 들어 있지 않은 표현이니 쓰지 않는다.’

박 교수는 이처럼 오도된 지식에 대해 ‘유독 한국만 G2라고 부르며 중국을 마음속에서 미국 다음가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국제적 힘의 구조 변화(changing international power structure)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 올바른 외교안보정책을 만들고 시행할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말대로 중국이 G1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서서히 한미동맹을 종결 시켜야 한다.

미국과 동맹을 지속한다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G1인 중국의 비위를 결정적으로 상하게 하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G1인 중국에 대항하겠다고 지는 태양 미국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의 힘의 변동은 이처럼 첨예하고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일이다.

2015년 봄 현시점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시대는 앞으로도 오래 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당연히 한미동맹도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보통사람들은 물론 위정자(爲政者)들마저 대단히 헷갈리고 있는 것이 있다.

중국과 미국이 다투는 바람에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헷갈린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런 표현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편도 아닐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혹은 조선시대 말기처럼 우리가 의존하는 나라가 실력과 의지가 불확실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법적(法的)으로 동맹관계에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미국과 중국이 다툴 때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처지가 될 수 없다.

한미동맹은 미국과 함께, 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우리의 안보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그것도 별로 마음내켜하지 않는 미국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거의 신(神)급에 해당되는 탁월한 외교력의 결과, 겨우 만들어질 수 있었던 안전 장치였다.

지난 60년 이상 한미동맹이 보장해주는 국가안보 덕분에 우리는 국방비를 훨씬 아낄 수 있었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지내야 할 시간도 훨씬 단축시킬 수 있었다. 저토록 호전적인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을 수 있었고, 오늘과 같은 경제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중국이 경제적으로 커지고 우리나라와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중국과 미국을 ‘등거리’로 대우하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이 다투면 가운데서 ‘균형자’가 되겠다는 더 황당한 생각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황당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미중 관계에서 등거리 외교, 혹은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미국과 동맹을 단절’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역사 어디를 봐도 관련국 중의 어느 한 나라와 동맹을 체결한 나라가 그들 나라들의 관계에서 균형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적은 없다.

우리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한 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중재하겠다면 중국이 그것을 믿겠는가? 동맹국 미국은 그런 한국을 어떻게 보겠는가?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한 한국은 미중 갈등에서 ‘끼인’ 나라가 될 수 없다. 미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 한미동맹의 본질이다. 한미동맹은 오로지 북한만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동맹조약을 잘 읽어보라. 한미동맹이 상대할 대상에 북한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목적은 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 위협에 대처한다고 되어 있다.

또 한미동맹은 법적으로 안전하며,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미동맹 6조의 마지막 항을 읽어 보기 바란다. 한미동맹이 얼마나 쉽게 종료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對아시아, 對한반도 정책의 원칙   

지금처럼 개념 없이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다툴 때 중립을 지킬 것이다, 중재자가 될 것이다, 혹은 끼어 있어서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라도 한반도에 대한 흥미를 잃을지도 모르는 미국이 한국을 버리는 결정을 내리라고 자극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카터 대통령의 미군 철수 정책 때문에 온 대한민국이 불안에 떨었던 무렵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왜 미국은 주일(駐日)미군, 주독(駐獨)미군 철수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주한미군 철군론은 이토록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것일까가 궁금했다.

어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주한미군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철군하면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미국의 국가 안보에 별 지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 주제는 필자의 정치학 석사 학위 논문 주제였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한반도 전략은 미국의 세계 전략의 하부 구조다.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한 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는 한 가지 불변의 원칙이 존재해 왔다.

그 원칙은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서 패권국의 출현을 저지하는 것이다. 만약 유럽이나 아시아 대륙이 하나의 지역 패권국에 의해 장악될 경우 그 나라는 대서양,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세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전략이 미국으로 하여금 1차·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도록 만든 본질이었다.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를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 미국의 전쟁 개입 근거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진정 세계 1위의 강대국이 된 후에도 이러한 전략적 원칙은 지속되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유럽에서는 소련의 세력을 반드시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 독일을 미국의 국가이익에 사활적(vital)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즉 독일을 지키지 못하면 유럽 전체가 소련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한편에선 미-중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동맹의 원칙에서 위배되는 것이다. 사진은 미국의 신예 전투기 F-35.

냉전 초기 미국은 중공과 소련을 ‘하나의 통합된(monolith)’ 괴물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중공과 소련을 막아줄 최후의 방파제를 일본으로 상정했다. 즉 유럽에서의 독일처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독일을 지킴으로써 소련, 중국이 아시아 혹은 유럽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는다면 미국 안보는 지켜질 수 있다고 봤다.

1950년 초 애치슨 라인이라 불리는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 그어졌다. 한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국까지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미국의 아시아의 극동 방위선(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미국의 본래 의도는 한국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건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말하듯 한국을 공산 세력이 장악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미국의 신호를 잘못 읽은 공산진영이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그 이후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미국 내에서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는 일본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반론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도 미군이 주둔할 필요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반론이 제기되었다. 물론 주한미군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한국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한국이 없어도 일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주한미군 유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 그 자체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국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일본은 미국의 vital interest, 한국은 미국의 vital interest인 일본을 지키기 위한 파생된 이익(derived interest)이었다.

vital interest는 군사력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익이다. 그래서 주일미군의 존재에 대해서는 시비가 없었다.

그러나 파생적 이익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주한미군 철군론은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왔고, 그때마다 안보가 불안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전긍긍했다.


한국의 對美 전략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10년 정도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학자들은 1990년대 10년을 ‘역사로부터의 휴일’(holidays from history)이라고 부른다.

냉혹한 지정학적 국제정치로부터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중국의 부상이 급속히 이뤄진 시점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미국이 즐겼던 역사의 휴일은 2001년 9·11 테러 사건과 함께 급속하게 끝났다. 소련의 도전이 제거된 지 불과 10년 만에 테러리즘과 중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당면한 것이다. 지정학과 역사가 되돌아 왔다.

로버트 케이건은 9‧11 이후의 세상을 분석하는 자신의 책 제목을 ‘역사의 회기(Return of History)’라고 붙였다.

테러리즘의 도전, 중국의 도전 중 더 궁극적인 도전은 중국의 도전이었다. 미국의 지정학적 대전략이 다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전략, 즉 아시아가 어느 한 나라의 패권적 지배 아래 들어가면 안 된다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 

냉전시대에 미국이 제압해야 할 대상은 소련이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중국으로 바뀐 것만 다르다. 

2004년 필자가 번역한 존 미어셰이머 교수의 책 서문에서 미어셰이머 교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언급했다. 

“만약 중국의 고도성장이 정지되고,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할 가능성이 없게 될 경우, 미국은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대부분을 본국으로 철수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할 의도를 품을 정도로 막강해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 지역으로부터 철수할 것이고 한국에 대한 안보 제공을 중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21세기 초반, 주한미군의 전략적 임무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힘을 발휘하려 할 무렵인 2012년 말, 미국 역시 본격적으로 대(對)중국 견제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Pivot Asia)’ 전략,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세기론(America’s Pacific Century)’, 미국 국방부의 ‘신(新)국방전략 구상’ 등은 모두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겠다는 미국 국가전략의  구체적인 표명이었다. 

대(對)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활용하고 싶어 했다.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 안보의 린치 핀(Linchpin, 핵심)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이 한국을 린치 핀이라고 언급했을 때 일본 학자들은 당황했다. 미국이 일본이 아닌 한국을 아시아 정책의 축으로 삼는 것 같다며 불안해 했다. 

그러나 이미 1996년 사무엘 헌팅턴이 예측했던 대로 한국은 미국의 진정한 동맹국 혹은  우호국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비쳐졌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미국인들은 중국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한국에게 미국의 정책에 대한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대(對)중국 포위 전략에서 한국을 빼고 일본, 인도, 베트남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일본, 인도, 베트남 등 3국의 인구, 경제력, 군사력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충분하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호주, 필리핀도 안보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미국을 편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도 그런가? 정치 지도자들은 그렇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대한민국 지식인들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우려하는 중이다. 

문제는 2015년 현재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은 앞에 인용한 미어셰이머 교수의 경고가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작년 11월 하순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미국은 앞으로 확고부동한 패권적 지위를 더 온전히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책에서, 피터 제이한은 힘이 막강해진 미국은 “더 이상 DMZ를 지키는 노고를 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언제라도 한국보다 훨씬 중요한 전략적 이익으로 간주되던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이 정말 김대중 조선일보 논설의원의 글처럼 ‘중국에 굴종적이고, 일본에는 적대적이며 미국과는 사무적’인 나라로 행동한다면 한미관계의 미래는 전혀 낙관할 수 없다. 

만약 미국이 어느날, 한국에게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연합 전선에 남아 있지 않기를 원한다면, 한국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다면 그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최근까지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적극적으로 미국 편을 들어줄 한국’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 권력 구조의 변화는 미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조금씩 줄어드는 상황을 창출하고 있다. 

워싱턴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특정 국가들에 대해 지속적이고 완고한 혐오감을 갖는 한편, 또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애착심을 갖는 태도를 배제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대해 끊임없는 혐오감이나 상습적인 호감을 갖는 국가는 어느 면에서 볼 때 노예국가나 다름없다. 그런 국가는 적개심의 노예든 혹은 애착심의 노예든 간에 자국(自國)의 의무와 이익으로부터 자국민들을 오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미국에게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적국(敵國)이던 일본과 저렇게 잘 지내기 시작했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는 냉전 당시 한반도 주둔 미군 철군론자들의 논리를 다시 부각시키는 기회로 작용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중국의 비위만 건들지 않으면 되는 줄 알고 있지만, 미국도 천사(天使) 나라는 아니다. 케이건의 말을 다시 빌리면 미국은 천사이기는커녕 위험한 나라이며,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전쟁을 택하는 호전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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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8-05 00:06:26
주식하는 베충이들이 이 기사 조오타고 공유하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