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 아래 서 있는 北 고위층
고압선 아래 서 있는 北 고위층
  • 미래한국
  • 승인 2015.05.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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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정치범은 재판 없이 ‘최고 존엄’ 말 한 마디로 처형 결정

 

한국에서 권력의 2인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남들이 볼 때는 화려한 2인자 자리지만, 막상 최고 권력자에 의해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기구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김 씨 세습왕조 체제의 북한은 모든 고위 인사들의 생사여탈권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 세습 왕조의 두목들이 쥐고 있다. 

오죽했으면 전(前) 북한민주화동맹위원장 고(故) 황장엽 선생은 2004년 12월 28일 탈북자동지회 송년 모임에서 “김정일 아래서 비서를 하면서도 늘 ‘고압선’ 밑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머리를 깎으러 가도 보고하고 다니는 등 모든 것이 통제되어 있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최근 북한에서 비행기를 쏴 맞추는 대공포를 동원하여 공개 처형하는 장면이 인공위성에 포착되어 충격을 준 바 있다. 

김정은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15명의 고위층 간부들을 공개 처형했다고 한다. 평화 시기에 이처럼 처형을 감행하며 사람 죽이는 것을 떡 먹듯 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북한은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처형의 위험수위도 함께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 사회에서 고위직에 오르는 것은 그만큼 국가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고위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그동안 누렸던 모든 물질적 편익은 제로 상태가 된다. 

자유로운 직업의 이동이 없는 북한은 고위층에 있었다고 해도 부정이 나타나 처벌이 되는 경우 직위 해제와 동시에 탄광이나 광산, 임산, 건설업 등 중노동 분야로 추방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혁명화’의 뜻은? 

김일성 시대에도 그랬고 김정일 시대에도 북한은 추방제도와 정치범 수용소, 출당 철직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사람들을 처벌해왔다. 

고위층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탄광이나 광산, 임산으로 추방되면 정말 죽기보다 못한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이런 처벌제도를 ‘혁명화’라고 불렀다.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다는 동지들은 물론이고 김일성의 친인척들도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혁명화 대상이 되어 탄광이나 광산, 임산으로 쫓겨나곤 했다.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 김일성의 친척인 리용무, 김일성이 아끼고 사랑한다고 늘 자랑하던 최광을 비롯한 북한의 최고위직 사람들이 혁명화 대상이 되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들은 산간오지에서 가난에 찌들리고 병마와 싸우며 김일성이 다시 불러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다. 

일부는 생활이 너무 어려워 김일성에게 신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김일성에게 그 편지가 가 닿을 리도 없었고, 오히려 신소 편지를 잘못 보냈다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고위층 인사들도 많았다. 

김정일은 특히 고위 간부들에게 이중 삼중의 감시를 붙이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하는 무시무시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북한에서 고위층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고압선 밑으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했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처형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 북한 고위층들의 삶이었다. 


최고 권력자 말 한 마디면 끝 

북한에서 원초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범에 대해서는 재판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죄목이 발견되면 경찰이나 검찰에 의한 조사를 받은 후 기소되어 재판정에서 3심제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절차 없이, 권력자의 기분 여하에 따라 하루아침에 탄광으로 쫓겨나기도 하고 공개 처형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남한에도 잘 알려진 서관히, 김용순, 박남기, 김달현, 류경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 고위층이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한때의 화려한 영광일 뿐, 저승길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한 시절 양강도당 책임비서로 잘 나가던 김원전은 김일성이 삼지연 특각(김일성 별장)에 왔을 때 미리 와서 대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사군 임산사업소로 추방되어 임산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 김정은이 새로 건설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해 들러보고 있다. 북한은 모든 고위 인사들의 생사여탈권을 김 씨 세습왕조의 두목이 쥐고 있다.

몇 년 후 김일성이 다시 부른다는 소식에 너무 흥분하여 심장마비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배급제 시대에 식량과 생활필수품의 차별배급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간부직에서의 해임이나 철직은 그야말로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배급제 시대에 북한은 간부들에 대한 통제 도구로 혁명화라는 제도가 있었다.

요즘은 배급이 사라졌기 때문에 김정은이 간부들에게 선심을 쓸 수 있는 카드가 몇 개 되지 않아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비해서는 매우 약하다고 한다. 

현재는 탄광이나 광산으로 추방해도 배급도 없고, 어차피 장사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추방된 다음날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버려 예전과 같은 질서와 통제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추방이나 직위해제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정은은 통치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자비한 총살을 일삼고 있다. 

특히 김정은의 고모부였던 장성택 처형 이후 장성택과 가까웠다는 이유만으로도 숙청 대상에 올라 봉변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고위 간부들이 언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김 씨 왕조는 수많은 비밀경찰과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고발하게 하여 정치범 수용소로 끌어가고, 산간오지로 추방하고, 공개 처형하는 행위를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하는 공포통치로 왕조 체제를 유지해 왔다. 

급기야 김정은 정권은 기관총과 대공포까지 동원하여 시체마저 박살을 내 버리는 천인공노할 끔찍한 공개 처형 수단을 동원해 왕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듯하다.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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