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가 회기 때마다 中高生들 고용하는 이유
美 의회가 회기 때마다 中高生들 고용하는 이유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5.05.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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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그들은 의회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애국심을 배운다

베다니 코셀은 지난 1월 초 자신의 딸인 13세의 캐럴라인을 데리고 버지니아 주(州) 의사당이 있는 리치몬드로 갔다.

중학교 2학년인 캐럴라인이 1월 둘째 주부터 버지니아 주 상원의 사환(page)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베다니 역시 18년 전 버지니아 주 상원 사환으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자신의 딸이 자기가 일했던 주 의사당에서 사환으로 땀을 흘릴 것을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버지니아 주는 매년 입법 회기가 시작되면 13세에서 14세의 중학생 70여 명을 주 상원과 하원에 9주간 사환으로 고용한다. 사환은 한마디로 심부름꾼이다.

이들은 의원 사무실, 위원회 회의실, 상하원 본회의장 등을 오가며 의원들에게 문서나 메모, 입법 자료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주로 한다.


1850년대부터 사환제도 운영

미국에서 사환의 역사는 깊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1850년대 주 상원 문서에 사환에 대한 기록이 있고, 연방 상원에서는 1829년 9세 소년을 최초의 사환으로 고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주로 고아나 과부의 아들을 고용해 이들의 생계를 돕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미(美) 의회의 전통이 되었고 지금은 미 연방 상원과 대부분의 주 의회에서 사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환제도는 연방 의회와 주마다 운영 방식이 다르다.

연방 상원과 2011년까지 사환제도를 뒀던 연방 하원은 미국 전역의 50개 주에서 16~17세의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을 뽑아 봄 입법 회기와 가을 입법 회기에 각각 5개월, 여름 6~7월에 각각 한 달씩 총 4번의 기간에 사환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방 상원의 경우 30명의 사환들이 매 기간 고용되고 있고, 연방 하원은 평균 60여 명의 학생들을 뽑았다.

연방 의회에서 사환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평균 A, B 학점의 성적, 교사와 교장의 동의, 그리고 지역구 하원의원 혹은 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지역 의원들의 추천을 받기 위해 학생들은 그동안 자신이 학업 이외에 했던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을 소개하고, 자신이 왜 연방 의회에서 사환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발되면 연방 의회 사환들은 연방 의사당 옆에 있는 숙소에서 가을, 봄 입법 회기 중에는 5개월, 여름 회기 중에는 1개월씩 머물며 유급 사환 활동을 한다.

급여는 2014년 기준 연 2만6605달러로 학생들은 숙박비 등을 뺀 나머지 돈을 받게 된다.

연방 상원 사환들은 매일 오전에는 6시 45분부터 9시 45분까지 상원 사환 학교를 다닌다.

이 학교에서 수학, 과학, 읽기 등을 교사로부터 배우는데, 이 수업을 이수하면 나중에 자신의 학교로 돌아가서 수강한 것으로 인정이 된다.

수업을 마치면 이들은 바로 자신의 직장인 연방 의회로 가서 사환 업무를 시작한다. 근무 시간은 그날 본회의가 종료되는 5~6시까지다. 


중고생들에게 입법과정 체험의 기회 제공

주 의회도 사환 선발 과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대표적인 차이는 기간이다. 대부분의 주는 1주일 단위로 중고생들이 사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은 주 의사당에 가까운 곳에 개인적으로 숙소를 마련한 뒤 월요일 오전부터 금요일 점심까지 주 의사당에 출퇴근하며 사환으로 활동한다. 하는 일은 연방 의회 사환들과 동일하다.

미 의회가 사환제도를 이처럼 오랫동안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고생들에게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산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이다.

▲ 미 의회는 회기 때마다 사환을 선발한다. 사환 학생들은 미 의회 의원들을 도우며 생생한 입법 활동을 체험하고, 애국심도 기르게 된다.

1970년 버지니아 주 하원 최초의 여성 사환으로 현재는 공립학교 교사인 샐리 존스턴은 “역사책에서 배웠던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이 다녔던 버지니아 주 의회 복도를 사환으로 처음 걸을 때는 신성한 곳을 다니는 느낌이었다”며 “사환 제도만큼 청소년들에게 의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가르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주 하원의장인 폴 나르도는  “이 사환제도는 청소년들이 정부가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사환을 했던 청소년들 중에 나중에 상하원 의원이 되거나 의회 직원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이 의회가 어떤 곳인지,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법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를 위한 의원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를 배우며 건강한 시민이 되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 이 제도의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연방 하원은 2011년 사환제도를 운영하는 데 연간 500만 달러의 비용이 들고 기술의 발달로 사환의 역할이 줄었다는 이유로 사환제도를 폐지한 것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배웠던 연방 의회의 역할에 대해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2010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으로 연방 하원에서 사환으로 활동했던 애나 마터는 워싱턴 D.C.에서 5개월의 사환 활동을 마치고 시애틀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워싱턴 D.C.에서 어떤 종류의 부패를 보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애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얼마나 망가졌는지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사환 활동을 통해 연방 의회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왔고, 연방 의원들은 미국을 대표할 뿐 아니라 매우 인간적이었다. 의원들 대다수는 정말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는 분들이었다.”

애나는 “사환 경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서 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걸쳐 내 나라를 더 섬기고 더 배우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베다니 코셀은 지난 3월 말 버지니아 주 상원에서 사환 활동을 마친 딸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사환 경험을 한 후 딸의 목표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9주간의 사환 활동을 한 후 캐럴라인은 법을 공부하고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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