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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05.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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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한국 보수주의의 역할과 전략
▲ 양진석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겸임교수

기업들은 돈을 내서 보수우파 연구소 설립, 보수우파 학자들 연구 지원, 기독교 우파세력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권 구입, 혹은 방송국 설립하여 대중 홍보에 나서야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진당의 해산 결정과 이석기의 내란음모 관련 공판을 목도하면서 한국 정치권 내에 좌파세력이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해산된 통진당 당원들은 무소속으로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 통진당 해산의 실질적 효과에 대하여 의문이 든다.

진보세력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확대 정책이 지난 대선(大選)에서 인기 영합적으로 채택되었고, 그 재원 부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향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이 시사하는 점은 만약 우리 사회 내부의 종북(從北) 세력이 그 세력을 확장한다면 한미동맹에 근거한 한국의 국가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북 세력의 극렬한 반미(反美) 저항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은 수정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좌우 이념 대립의 격랑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향후 한국 사회를 바람직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은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 과정과 그 전략을 고찰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보수주의는 학자 집단, 경제 집단, 시민사회, 언론계, 종교 집단 등 다양한 세력들이 체계적으로 정책적 방향을 탐구하고 실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 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뉴딜 정책 반대 위해 ‘미국자유연맹’ 결성 

단순히 공화당 정치인들이 보수주의적 여론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보수세력들이 연구소를 설립하여 정책 개발에 매진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제시했다.

다양한 종교 집단, 시민단체들이 풀뿌리 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 과정은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등장은 세계 대공황의 극복 과정과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에서부터 출발했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방정부는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시장경제에 적극 개입했다.

이런 정부정책에 대응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임금과 고용에 규제를 가했고 실직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제공했다.

부실기업에 보조금, 가격보조, 진입장벽 정책을 통해 보호막을 쳐 줬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와, 그에 따른 개인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인식되었다.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자유와 독립심을 발휘하기 위해 재산권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중앙집권화 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 미국은 진보세력이 맹위를 떨치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보수 성향의 연구소와 재단을 설립하여 정책개발, 전문가 양성, 미디어 홍보 등을 통해 보수정권인 레이건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는 파시즘이나 사회주의 정부로 향하는 첫 걸음이다. 이런 논리 하에 보수주의 운동은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등에서 광범위하게 발흥했다.

1934년 보수주의 성향의 정치가들은 뉴딜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자유연맹’(American Liberty League)을 결성했다.

보수주의 성향의 민주당 의원 존 데이비스가 이 조직을 이끌었고, 듀퐁 등 여러 기업이 이를 후원했다.

193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알프 랜든도 뉴딜 정책을 비난했다. 중소기업 사용자 이익집단인 전국제조업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은 기업가들을 독려하여 노동조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사용자의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뉴딜 정책 반대 운동은 보수적 지식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계획경제 반대론자인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루드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그 선봉장이었다.

기업가인 윌리엄 볼커는 그의 이름을 딴 기금을 마련하여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학술적으로 지원했다. 또 지식인들과 기업가의 모임인 몽 페르랭 협회를 조직하여 후원했다.

이 모임은 계획경제에 반대하여 자유시장 원리를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일군의 경제인들은 자유시장 경제교육을 위해 ‘경제교육을 위한 자유지상주의회’(Libertarian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를 결성하고 지원했다. 이곳에서는 보수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월간지 ‘자유인’(The Freeman)을 발행했다.

이처럼 보수주의 운동은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 학계, 언론계를 망라한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정교한 이론적 개발이 가능했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수주의 주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홍보 노력도 강화했다. 따라서 보다 효율적으로 보수주의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의 전략은 한국의 경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동일한 이념과 사상을 공유하는 집단들의 공통된 노력은 보다 적실한 이론 개발과 효과적인 영향력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외교, 국방 분야에서도 활발히 대안을 제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국제 정세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를 분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군사 정책을 요구했다.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의 저서 ‘왜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가?’(Why Not Victory?) 에서 트루먼 행정부의 봉쇄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단순히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봉쇄정책은 공산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보다 공격적인 군사정책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공산독재에 신음하는 국민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적극적인 언론 홍보 활동 전개 

언론인 윌리엄 버클리는 1950년대 중반 보수주의 잡지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를 발간하여 미국이 국제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도발과 뉴딜 정책을 국민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평화공존 정책과 복지정책은 가치관의 상대화와 국가에 의존적인 무책임한 국민을 양성한다.

현대 서구 사회는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덕성과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의 수호자 역할을 강조했다.


기업 후원으로 보수적 연구소 대대적으로 설립 

윌리엄 버클리는 ‘내셔널 리뷰’ 잡지와 그 밖의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피력했다. 

그는 1966년부터 1999년까지 텔레비전에서 보수주의적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았다. 보수주의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적극적인 저술활동과 활발한 홍보 노력을 통해 미국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냉철한 현실 분석과 정교한 정책 논리를 개발하여 대안을 제시했고, 이를 적극 홍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정치가, 지식인, 언론인들의 노력은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 수많은 보수주의 시민단체가 등장했다.

그 중 사업가인 로버트 웰치가 설립한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그들은 누진세, 중앙은행, 기업에 대한 규제 증가는 소련이 미국을 접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 헤리티지 재단의 홈페이지. 미국은 이러한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보수적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할 전문가를 양성하여 보수정권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의 전개 과정은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보수주의적 정치인, 학자, 언론인들에게 보다 정교한 이론 개발과 대(對)국민 홍보 노력이 요구된다.

정당의 정책개발 노력을 강화하고, 보다 정교한 이론 개발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한 정책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홍보하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한국 정치 상황이 정교한 이념에 기초한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악용하는 감정 대립의 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골드워터가 1964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패배를 교훈으로 삼고 진보세력과 맞설 수 있는 최선의 조직과 기구를 창안했다. 진보세력 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위한 전국대학생회’(Intercollegiate Society of Individualist), ‘자유를 위한 미국청년회’(Young Americans for Freedom)를 창설하여 보수주의 가치관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했다. 이 단체 출신의 젊은이들이 향후 미국 보수주의 세력의 주축이 되었다.

진보세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 대응하여 보수적 연구소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등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연구소는 정책개발, 전문가 양성, 미디어 홍보, 정치적 로비 활동에 주력했다.

이들 연구소는 제너럴 모터스, 유에스 철강, 모빌 정유 등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진보적인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에 대응하여 보수주의는 존 올린 재단(John Olin Foundation)을 마련했다.

미국기업연구소 관계자는 닉슨 대통령 정부에 참여했고, 이 연구소는 기업체뿐만 아니라 올린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진보적인 ‘뉴욕 타임스’에 대응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은 보수주의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대선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이는 1980년대 공화당 후보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과 이후 보수세력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의 전략은 한국 정치에도 하나의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대선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정당, 기업체, 학계, 언론계가 연계하여 정책 개발, 전문가 양성, 국민홍보에 매진하는 전략은 수권(授權)능력이나 집권 후의 국정운영능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물어 당권 장악에 전념하는 한국 정당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기독교 우파집단, 정치적 영향력 발휘 
  
유력 정치인에 정치자금을 제공하여 특혜를 노리는 한국 기업은 구태를 벗고 보다 건설적인 정치적 기여가 요구된다.

전문가 집단의 지속적인 정책개발과 국민홍보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집권 후 인재 등용의 폭을 넓히고, 이념적 일관성을 겸비한 전문가에 의한 안정적 국정운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 정당은 무늬만 진보와 보수로 분류될 뿐이지 실제 이념적 차이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선거는 정당의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비교 평가한 유권자의 선택이 아니라, 지역에 기반을 둔 단순한 선택일 뿐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기독교 종교집단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대의 미국 사회는 월남전, 흑인 인권운동,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정책에 의한 복지확대정책 등에 대한 찬반 양론으로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었다. 이 와중에 기독교 우파집단은 결집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가 세속적인 문제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했다.

기독교 우파는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라 현대 사회가 보다 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뜻과는 더 멀어진 타락한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의 적극적인 역할을 시도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을 공산주의 악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군사정책에 동조했다.

과도한 복지정책과 흑인 인권 신장은 백인들을 희생하여 흑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불공정한 처사이며 이는 개인의 장점, 자족 노력, 개인 책임감과 같은 전통적 가치관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우파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권을 구입하거나 방송국을 설립하여 대중매체를 통한 선교방송을 시작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보수주의의 영향력은 더 증가했다.

미국 기독교 우파의 활동은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근대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상에서 고찰한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 과정과 전략은 한국 보수주의에 하나의 방향 제시를 할 것이다. 보수의 이념이 한국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현실 분석과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 학자, 언론인, 종교인들의 공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 이런 비전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적극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

미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했다. 한국 사회도 지역 대립이 아니라 건전한 보·혁(保革)의 이념 경쟁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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