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힘이 세다
인도는 힘이 세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6.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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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특집] 인도의 사회문화적 특성
  • 인도에는 분명한 답이 없고, 넓은 인도를 아우르는 보편적 기준이 없다
  • 윤리규범도 상대적이어서 의리보다 돈을 택하고,
  • 상황에 따라 좋은 사람 기준이 달라져 
▲ 이옥순 인도연구원장·연세대 연구교수

인도가 장차 아시아의 강대국을 넘어 세계의 초강대국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지금 인도 도처에서는 뭔가 달성하려는 열정, 21세기를 ‘인도의 세기’로 만들려는 야망이 가득하다. 역동적인 젊은 인구도 많다.

그러나 “인도에 여행을 가도 안전할까요?”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반만년 역사와 풍성한 문명을 일군 인도는 여전히 제3세계의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를 보자!”라고 외치는 진취적인 사람들도 세계 2위의 인구 대국(大國)이자 세계 7위의 영토 대국 인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자세가 부족하다. 인도는 누구인가?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 미래한국(c) 고재영

  

긴 역사, 깊은 문명

인도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5000년 전 인더스 강가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을 일군 고대 인도인은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갠지스강 유역으로 진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발전시켰다.

곧이어 베다와 그 주축인 브라만의 권위에 반대하는 새로운 종교-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했고, 서민의 종교인 대서사시가 나오면서 고대사는 풍성해졌다.

BC 4세기엔 여러 왕국을 통합한 마우리아 제국이 등장하여 아소카 시대에 최대 판도를 기록하며 번영했고, AD 4세기엔 북부의 굽타 왕조가 힌두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러는 동안 광대한 인도의 여러 지방에선 다양한 왕국들이 나름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나고 서며 역동성을 지속했다.

13세기 초부터 인더스강을 넘어온 이슬람 세력의 통치가 델리와 북부에서 지속되었고, 이 바탕에 16세기에 들어선 무굴은 외국과 교역하여 부(富)를 축적하며 강성한 제국의 위용을 자랑했다.

이슬람과 힌두 등 기존 집단 간의 적응과 동화 과정이 이어지며 인도 문화는 한층 다채로워졌다.

부유한 인도와 교역을 바라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인도를 찾았고, 그 가운데 영국이 두각을 보이며 넓은 인도에서 영토와 세력을 확대했다.

1947년, 2세기 동안 인도를 지배한 영국을 떠나보낸 인도는 8세기 만에 델리에 정권을 세우고 홀로 서서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앞의 역사 개요는 인도가 이방의 지배를 받은 불행한 역사로 점철되었다는 걸 알려준다. 말을 타고 인더스강을 통해 침입한 아랍, 페르시아, 아프간, 투르크 등은 물론,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도착한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의 정복과 지배를 받는 아픔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살아남았다. 더위가 폭군처럼 힘을 내두르는 인간 생존에 비호의적인 환경 속에서 200년간 영국의 통치와 6세기가량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인도를 지배하고도 이슬람 세력과 영국은 자신들의 존재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그저 다양한 문명을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래서 인도는 다양하다. 역으로 말하면, 다양성이 인도를 생존하게 만들었다. 종교만 따져도 그렇다.

인구 다수가 믿는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와 시크교가 탄생된 인도는 다양성이 역사의 상수(常數)였다는 걸 알려준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 등 밖에서 온 종교도 크거나 작게 인도 문명의 깊이와 넓이에 존재를 보탰다.

다양성의 인정은 문화의 생존에 필수였다. 상이하고 이질적 존재를 보면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경험하고 비판적 생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서 인도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를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다.
 

살아남는 데는 일등 

인도는 수없이 패했어도 살아남았다. 인도인의 필법(筆法)을 빌리면, 이긴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이긴 자다.

이방의 군대에게 패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정복자들은 사라지고 정복된 인도인만 생존한 땅이 인도였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문명도 살아남았다.

인더스 문명에서 보이는 흔적을 오늘날 대도시 공원과 거리에서 찾을 수 있고, 기원 전 6세기경 탄생한 자이나교의 이념과 수행 방법이 오늘날까지 2500년 넘게 이어지는 곳이 이 땅이다.

옛 것이 다 좋은 건 아닐지라도 뿌리가 사라진 것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도의 계속성은 경이로운 현존(現存)이다.
 
이방의 종교들은 칼과 함께 인도에 왔어도 인도인의 믿음을 바꾸지 못했다. 현재 기독교인은 약 2%, 이슬람을 따르는 인도인은 총인구의 14%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인도를 좌지우지했던 이슬람 지배자의 언어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도 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 인도의 유명 힌두교 사원에 참배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인도인들.<사진제공 : 김응기 (사)인도연구원 상근이사>

2세기 동안 인도에서 권력을 행사한 영국의 언어도 비슷했다. 인도가 독립할 당시에 영어를 해득하는 인도인은 전체 인구의 2%가 채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외국에서 인도에 도착한 언어와 종교는 인도인의 안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늘 문지방에서 서성거린 셈이었다.

평등사상을 가진 이슬람과 기독교를 믿는 외국에서 온 지배자들이 인도를 6세기나 다스렸어도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가 이제껏 살아남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인도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생존력에 주목하는 외국인이 많지 않다.

사실 태어나면서 얻는 카스트는 오직 힌두만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종교를 세운 사람들은 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다.

고대 인도에서 난 불교와 자이나교, 15세기에 등장한 시크교도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불평등을 거부한 그 종교들이 늘 소수였다가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인도인이 다른 세계의 문화를 거부한 쇄국주의자는 아니었다. 중세의 이슬람 문명과 근대의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인도는 특히 이슬람 문명의 건축과 음악, 음식과 의복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만 인도인의 방식이 특이한 건 이방의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전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압도되거나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번역하고 고치거나 조정했다.

과학기술 등 이익이 나거나 유용하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실리를 보였다. 밖에서 비판이 끊이지 않는 카스트 제도도 시대 변화와 민주주의 제도에 맞게 변형되면서 이어진다. 

인도에 진출한 다국적 패스트푸드 점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인도 특성을 살펴보자. 인도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제공되지 않는 세계 유일의 맥도널드 매장들이 있다.

대다수 인구가 육식(肉食)에 심리적 저항감을 가지는 걸 고려한 것이다. 초기부터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인기 있는 빅맥이나 치킨 너겟이 잘 팔리지 않았다.

결국 회사는 채식 제품을 늘리는 방법을 썼고, 세계 최초로 채식 버거를 인도에서 팔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채식 제품만 파는 매장들을 보유한 맥도널드는 총매출의 50% 이상을 채식 제품에서 올리면서 만만치 않은 인도 시장에서 버티고 있다. 그 교훈은 이렇다. 살아남으려면 인도인의 입맛과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변하지 않지만 잘 변한다

결국은 살아남을 줄 아는 인도인을 상대편에서 좋아하긴 어렵다. 의외로 인도인이 싫다는 외국인이 많은 건 그래서다.

1960년대 인도에 몰려간 히피들도 인도는 좋아도 자신들에게 의식주(衣食住)를 돈 받고 제공하는 인도인이 싫다고 말했다.

순수하다고 여긴 사람이 수전노임을 알았을 때 갖는 배신감과 같다. 인도에서 사업을 추진하거나, 단순히 여행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영리한’ 그들을 뜻대로 다룰 수 없는 데서 오는 당혹감이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도인의 사고와 행동이 여타 세계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분명한 답이 없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며,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즉, 넓은 인도를 아우르는 보편적 기준이 없다. 윤리규범도 상대적이라서 의리보다 돈을 선택하고, 상황에 따라 좋은 사람의 기준이 달라진다. 

모든 나라 모든 인간이 그렇겠으나 인도인의 실리적 성향은 독특하다. 예로부터 선(善)과 악(惡)이 상대적인 인도 문화권에선 죽은 뒤에 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악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처벌도 일시적이다. 

악행을 저지르고 죽어도 영원히 벌을 받지 않는 것이 힌두교의 논리다. 곧바로 구원을 받느냐,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 

이런 세계관에서 절대적 진리를 실천하긴 어렵다. 이 상대적 윤리가 도드라지는 것이 인도인의 돈 버는 방식이다. 인도의 정신주의는 물질주의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신(神)과 영혼을 말하면서도 돈과 황금을 쫓고, 신의 이름을 걸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에서는 장사꾼이 눈앞에 큰돈이 보일 때 거짓말을 하거나 계약을 깨는 것이 나쁜 행동이 아니고, 돈을 벌려고 저지르는 실수와 나쁜 방법도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라고 간주된다. 가장 변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가진 인도인이 실은 가장 잘 변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부(富)의 여신(女神)과 풍요의 신을 모신 힌두교는 돈 버는 걸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지구상 유일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고대의 정치가 차나키아가 일찍이 “우정도 이익이 있어야 지속된다”고 간파한 건 그래서였다. 

이런 문화에서 물질적 이익이 있을 때 입장을 바꾸거나 우정을 버리는 것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환언하면, 인도인은 돈 벌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아채는 능력이 탁월하다. 돈을 잘 버는 전통을 가진 상인 계층의 역사도 5000년이 되었다. 

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물질을 숭배하는 인도에서는 정신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도 물질주의를 완전히 놓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한 그들이 만만치 않다. 

▲ 첸나이 어느 동네 골목벽화. 인도의 다종교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사진제공 : 김응기 (사)인도연구원 상근이사>

소프트파워 영화와 요가 

재미 있는 것에 끌리는 건 진리지만 여기에서도 인도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하버드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 권력을 가지는 세 가지 방식이 채찍과 당근 그리고 소프트 파워인데, 오늘날 소프트 파워의 슈퍼 파워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일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불교 등 문화를 전 세계에 수출했다고 자랑하는 인도가 가진 오늘날의 대표적 소프트 파워에는 무엇이 들어갈까? 

먼저 발리우드 영화를 들 수 있겠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지만 자긍심이 강한 인도인은 자기 나라를 문화적 슈퍼 파워라고 자랑한다. 그런 그들이 미국 소프트 문화의 침입에 장벽을 쌓고 나름의 영화산업을 발전시킨 건 당연한 귀결이다. 

20세기 후반까지 할리우드영화가 맥을 못 춘 인도에서는 발리우드 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도시 뭄바이의 옛 이름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글자를 합한 발리우드(Bollywood)는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될 만큼 유명하다. 

지난 수십 년 간 연간 800편에서 1000편의 영화를 제작하여 영화 제작편수로 늘 세계 4위 안에 들었고, 1위도 많이 차지한 인도는 관객도 많다. 

전국에 1만2000개의 영화관이 있고, 매일 1500만 명이 영화를 관람하여 연간 40억 장의 영화 티켓을 구매하는 진정한 시네마 천국이다. 

발리우드 영화의 발전은 인도인이 국산 영화를 좋아한 덕분이다. 2009년 세계적으로 성공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는 인도에선 자국(自國) 영화 ‘세 얼간이’에 밀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는 100년의 인도 영화사에서 최고 흥행작에 올랐고, 해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로 기록됐다. 

문화 다양성과 복합 사회가 반영된 인도 영화는 모국어로 만든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을 위해 힌디어, 타밀어 등 16개 지역어로 각 지방에서 만들어진다. 

가장 많은 인구가 보는 힌디어 영화는 발리우드에서 제작된다. 인도 영화는 90여개 국가에서 상영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이 인도의 요가와 명상도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좋은 요가는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지 말며, 너무 잠을 많이 자거나 너무 수면이 적어도 안 된다고 가르치는 고대 인도인의 지혜다.

서구 현대 문명이 잠을 줄이고 시간을 아껴서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은 걸 갖도록 부추긴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그래서 정신적 평화와 건강한 몸을 만들어주는 요가 센터는 인도보다 서구에 더 많다. 

발전 가도를 달려오느라 영혼이 아픈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도 요가 교실이 많다. 요가처럼 5000년이 넘은 인도의 오래된 의학 시스템 ‘아유르 베다’도 현대 문명의 대안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문화의 힘은 이렇게 은근하게 국경을 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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