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질병 치료보다 예방에 역점
[2025년 한국] 질병 치료보다 예방에 역점
  • 미래한국
  • 승인 2015.06.15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0호 특집] 10년 후 한국의 의료산업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미래한국 편집위원

어떤 분야가 되었든 10년 후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을 예측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고, 둘째는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 중 가까운 미래에 영향을 미칠 만한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대한민국 의료의 과거를 돌아보자. 가속도가 붙어 시간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니 지난 10년보다는 20년을 돌아보는 것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지난 20년 사이에 대한민국 의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 20년 사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의료의 변화 

1) 의무기록의 디지털화(化) 

PC의 개발에 뒤이어 20여 년 전부터 인터넷이 정보 소통의 개념을 뒤바꾼 이후 본격적으로 도래한 디지털 시대는 산업과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까지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의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병원에서 종이 차트가 맨 먼저 사라지고 두 번째로 필름이 사라졌다. 회진을 준비하느라 엑스레이 필름을 빨리 찾아 걸어놓기 위해 인턴과 전공의들이 뛰어다니는 일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차트나 엑스레이의 분실 염려도 없어졌다.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컴퓨터는 처방 약의 상관관계를 자동으로 점검하여 의사의 실수를 예방하기도 한다. 

의무기록의 디지털화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의 안전에 기여했다. 반면 의무기록의 디지털화는 의료행위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라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막강한 공권력을 가진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의무 가입해야 하고, 모든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계약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이라는 보험사를 운영하면서 이 보험사에도 공권력을 부여했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지급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입자와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국민은 공기업인 건강보험공단은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건강보험공단 역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산화된 형태로 기록되고 있는 모든 의료행위를 정부가 부여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손쉽게 간섭하고 통제한다. 치료의 기준이 의학 교과서에 따른 최선의 진료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경제적 진료, 즉 저비용 치료로 바뀐 것이다.
 

2) 똑똑한 환자의 등장과 1차 의료(동네 의원)의 쇠퇴
 
인터넷은 등장과 동시에 정보의 바다를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인터넷이 선물한 정보에는 모든 정보들이 포함되었고, 의료 정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목에 청진기만 두르고 있어도 그에게 의학적 권위가 주어졌다.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의학적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특수성도 있었지만, 의사라는 직업인에 대한 존경과 존중에는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적지 않은 이유를 차지했다. 

그러나 손쉽게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학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자 정보의 비대칭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환자들은 점차 의학 지식에 의존하는 작은 의원을 외면하고 장비를 이용한 검사가 가능한 큰 병원을 선호하게 되었다. 더욱이 정부의 다양한 대형 병원 우대정책은 동네 의원의 고사(枯死)를 가속화시켰다.
 

3) 대형 병원의 공룡화, 지방 병원의 공동화(空洞化) 현상 

의학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늘어나자 점차 동네 의원의 원장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지식보다는 검사를 신뢰하게 되며, 작은 의원보다 대형 병원을 찾는 일이 늘어났다. 

동네 의원과 지방 병원들은 점차 몰락하고 대형 병원들은 점점 더 커져 공룡처럼 비대해졌다. 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성모병원 등은 각 병원마다 하루 1만 명 가까운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대형 병원 집중화 현상은 전국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지만, 수도권 집중화와 병행됨으로써 지방의 중소 병원들이 몰락하여 지역별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4) 정상적인 의료의 파괴 가속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시작할 때부터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건강보험수가를 원가를 밑돌도록 책정했다.

당시에는 건강보험의 재정도 부족했고, 전 국민 의료보험이 해당되지 않는 때여서 의료기관에서는 손해 보는 부분을 약값에서 충당하는 등 다른 편법으로 충당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전 국민 의료보험이 완성되고 2000년 의약분업이 되어 약값에서 부수익을 만들던 것이 없어지자 의료기관의 경영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건강보험수가의 인상률은 항상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을 밑돌았고, 우리나라 의사의 증가 속도는 34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기에 경쟁은 더 심해졌다. 

▲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10년 후 한국 의료계는 대형병원과의 양극화, 수도권 집중화 등의 문제로 밝지만은 않다.

정상적인 진료로는 수익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 아래에서 다양한 편법 진료의 방법들이 늘어났다. 

대학병원의 3분 진료가 일반화되었고, 보험수가가 낮으니 병원에서는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민간보험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건강보험수가는 특히 필수진료과목에서 오히려 낮아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위험은 높고 돈 벌기는 어려운 진료과목 의사들이 취업이 어렵고 대우가 나빠 진료 현장을 외면하게 되는 일들이 늘어났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기피하고 미용 분야로 나섰고, 흉부외과 의사들은 심장과 폐 수술보다 하지정맥류를 수술하는 길을 선택했다. 필수 의료자원의 이탈은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5) 의료 직역(職域) 간 갈등의 심화 

짧은 근현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혼란한 시절 만들어졌던 법의 완성도가 낮아 발생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은데, 의료법도 이에 해당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발생하는 직역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등 각 의료 영역에서 활동하는 의료인들의 역할의 구분이 모호해 벌어지는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의사와 한의사의 이원화된 면허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과거에 보약 시장을 담당하면서 의사와 충돌하지 않았던 한의사들은 발기부전제가 개발되고 홍삼 제품 등 건강보조식품이 급증하여 보약 시장이 무너지자 진료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의사가 아닌 의사로서의 권한을 정부에 요구하면서 의사와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6) 의료기술의 눈부신 발전 

여러 가지 제도적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의료기술 수준은 지난 20년 사이 크게 발전했다. 

20년 전에는 선진국의 의료 수준과 현격한 격차를 보였지만, 현재는 각종 암을 비롯하여 심장병과 뇌졸중 등 주요 질병의 치료 성적이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을 보이거나, 오히려 일부 앞서는 수준에 올랐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의 환경적·기술적 변화 

1) 외국인 환자, 특히 중국 환자 급증
 
우리나라는 성형대국(大國)으로 알려져 있지만 높은 성형기술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은 의료 수준의 일부분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높은 의료 수준과 값싼 건강보험수가는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몽골, 미국, 캐나다 환자들의 내원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성형분야는 성형외과가 몰려 있는 압구정동, 강남역 일대 성형외과 환자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어 중국 의존도가 커져가고 있다.
 

2) 고령사회 

우리나라는 이미 만65세 인구가 7%를 상회하는 고령화 사회를 지났으며, 곧 14%가 넘는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앞으로 10년 후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앞으로 국가 생산성의 둔화를 의미하고 젊은이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뜻하는 심각한 현상이다. 노인들이 지출하는 의료비를 모두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한다.
 

3) 통일에 대한 준비 필요 

최근 불안한 북한 정세는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찾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 될 경우 교육체계가 다른 북한 의료인의 면허는 어떻게 인정할 것이며, 의료취약 지역에 대한 해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4)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의 발전 

체중계, 혈압계, 혈당 측정기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의료용구들이 점차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체중과 혈압을 매일 체크하고 수첩에 적을 필요 없이 스마트폰에 데이터를 전송하여 보관하는 장비들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으나 외국에서는 개인 유전자정보 해독 서비스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암조직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효과 있는 항암제를 선택하는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의료분야에서 3D 프린터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10년 후 한국의 의료

10년 후 대한민국 의료의 모습은 그리 밝지 않다. 올해로 38년이 된 낡은 건강보험제도의 기본 틀이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 병원의 양극화 심화와 1차 의료 몰락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대형 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은 심화되고 동네 의원은 크게 쇠퇴할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일부 지방에서는 의료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의료 접근성의 하락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2) 몰려드는 외국환자, 떠나는 의사들

▲ 의무기록이 디지털화 되어 환자의 치료를 위한 서비스가 크게 진보했다. 그러나 의무기록의 디지털화는 의료행위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라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낮은 가격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찾는 외국 환자들의 방문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의료의 빠른 성장은 중국 환자의 발걸음을 다시 돌려놓게 만들 것이다. 

외국 환자들은 성형분야 외에는 대형 병원 중심으로 집중될 것이고, 직업 만족도가 떨어진 의사들은 탈출구를 찾아 해외로 나갈 것이다. 특히 의료 인력이 부족한 중국이 우리나라 의료진들을 대거 수입할 가능성이 있다. 

최고 상한가를 유지하던 의과대학 커트라인은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이고, 정부가 전문의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많은 의사들이 전문의 과정 자체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떠나는 의사들이 있겠지만 의사의 증가 속도가 워낙 빨라 의사를 만나는 것은 쉬워질 것이다. 다만 그 질은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3) 높은 의료비 부담, 경제적 치료 강요 

대한민국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고 이에 따라 정부의 ‘경제적 진료’라고 이름 지워진 ‘싼값 진료’의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
 

4) 의사들의 분노 폭발 

전문인이면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역차별을 당하는 의사들의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게 될 것이고, 정부와의 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5) 질병 중심에서 건강 중심으로 

질병의 치료보다 질병의 예방이 중요시되고, 항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갈 것이다. 개인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것이고 크게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질병의 예측 서비스가 활발해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료서비스에 인공지능 컴퓨터의 활동도가 크게 늘어나지만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도입될 것이다.
 

6) 의료의 상대적 수준 하락 

빠른 의료수준의 발전을 지속해왔던 과거와 달리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와 전문성을 무시하는 관치의료의 영향으로 인해 의료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10년 후 한국 의료의 모습은 절대 희망적이지 않다. 의료정책의 입안과정과 결정과정에서 전문가들이 배제되고 의료정책이 철저히 관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의 상대적 수준은 정점을 찍었으며,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정치개혁 뿐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