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변호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변호한다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5.06.26 10: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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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와도 대통령 탓, 세월호 침몰해도 대통령 잘못, 메르스 방역 뚫려도 대통령 책임…

● 통진당 해산, 전작권 전환 무기연기, 전교조의 법외 노조화 등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업적 쌓아
● 국회 독재 시대 :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 연금개혁 改惡, 위헌적 惡法 양산
● 대통령이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국회가 봉쇄
● 박근혜의 위기는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임기 반환점을 찍었다. 불행하게도 임기 전반부에 대한 평가와 박 대통령 지지율은 메르스 직격탄으로 인해 바닥권이다. 그러나 객관적 시각으로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면 일반의 시각과는 좀 다른 팩트(fact)들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 재임 2년 6개월의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6공 역대 정부의 전임자들이 저질러놓은 온갖 병폐와 국가 중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했고, 어느 정권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쌓았다.

나는 박 대통령의 중대한 업적으로 종북(從北)의 전위 역할을 하던 통진당의 해산, 2015년 12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무기연기를 통한 한미연합사 존속, 그리고 전교조의 법외 노조화를 통한 무력화를 꼽는다.

(c) 미래한국 고재영

김정은을 코너에 몰아넣어

한 가지 더 추가한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5·24 대북(對北) 경제제재 조치의 원칙을 준수함으로써 북한의 목줄을 죄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임 정권의 5·24 조치를 일관되게 지키고, 상호주의에 입각한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북조선 왕국의 2대 마왕(魔王) 김정일은 남한에서 들어오는 금강산 입산료와 각종 명목의 대북지원 자금으로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열을 올렸고,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북한의 지도층에게 최고급 물자와 향락을 제공해 왔다. 그런데 5·24 조치 이후 남한의 대북지원이 끊기면서 통치 비자금이 말라버린 3대 마왕 김정은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장성택과 인민군 최고 지휘관 현영철의 끔찍한 고사포 처형은 최고급 물자와 음식, 향락 공급의 중단으로 인한 금단현상에 빠진 북한 지도층의 이반현상을 격렬하게 봉쇄하기 위한 김정은 식 처방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北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핵 개발에 나설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 ‘선제적 대응조치’를 도입했다. 즉 북한의 남침이나 대량살상무기 공격 징후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되면 국제법적으로 허용하는 자위권 안의 범위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실상 북한을 선제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는 한미(韓美) 공조를 통한 안보 체제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통진당 해산은 물론,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까지 의원직을 박탈함으로써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든 종북(從北) 및 좌파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자유민주 체제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박 대통령의 친중(親中) 외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나는 친중 외교의 이면도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과 우호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사이코패스 망나니 같은 김정은이 영도하는 북한을 고립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햇볕정책과 대북 화해정책을 통해 북한 핵무장과 독재왕조 체제 연명을 도운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실용’을 앞세워 이념 문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던 이명박 정부의 행보와 비교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재임 2년 6개월의 성과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무게를 지닌다.

이왕 나선 김에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팩트를 몇 가지만 더 소개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6월 15일, 42년 만에 개정된 한미원자력 협정에 서명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격렬한 용어를 동원하여 이 협정을 비판했지만, 좀 더 솔직해지자. 이 협정이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동안 완전히 봉쇄되어 있던 우라늄 저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통한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재처리) 가능성의 문이 열린 것은 사실 아닌가.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온 방산비리 척결의 칼을 빼들고 전 방위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재벌 등 특권층 사면 배제, 법을 위반한 과거사위원회 소속 민변 변호사들 강력 처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환수금 환수를 단행한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한 박근혜다.

무엇보다 서민경제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2년 연속으로 무역 1조 달러, 수출규모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 규모 사상 최대(36개월 연속 흑자)를 의미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 호주 등과 FTA를 타결함으로써 우리의 경제 영토가 전 세계 74% 가까이 확대된 것도 무역국가 대한민국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종북 좌파의 저항, 보수언론의 배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공기업 개혁, 공무원 연금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그 동안 국민들에게 ‘철밥통’으로 알려진 공기업은 박근혜 정부 들어 가혹한 개혁의 칼날을 맞고 있다. 만성적자 상태에 허덕이던 공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업무 성과가 없어도 시간만 때우면 자동으로 승진과 연봉이 올라가던 호봉제를 폐지하고 업무 성과가 있어야 승진과 연봉이 오르는 성과승진제가 도입되었다. 또 임금 피크제, 과도한 복지혜택 폐지를 통한 공기업 경영 정상화를 통해 ‘신(神)의 직장’이던 공기업의 철밥통을 깨버렸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더 극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공적연금 개혁을 선언했다. 제일 먼저 공무원 연금 개혁의 시동을 걸었는데, 여기에 강력한 태클을 건 것은 국회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한 공무원 연금개혁안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29일 새벽 온갖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 공무원연금법은 용을 그리려다 지렁이를 그린 꼴이 되어버렸다. 내년 총선 때 공무원 표를 의식한 여야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지급률을 20년간 고작 0.2%포인트 삭감하는 것에 그친 것이다. 공무원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지만, 당장 올해에만 3조 원 가까이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연금 적자를 메워줘야 하는 국민들만 불쌍하게 되어버렸다.

이 사례를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국회가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다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난국을 맞게 된 첫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도전하는 종북 및 좌파세력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꼽을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51.6%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유권자의 절반은 지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51% 중 25~30% 정도는 무슨 일이 닥쳐도 변하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반면 21~26%는 상황이 바뀌면 이탈할 수 있는 가변성 지지층이다.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야당 지지세력과 세월호, 메르스 사태를 맞으며 박 대통령의 ‘단호하지 못한’ 리더십에 실망한 가변성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박 대통령은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두 번째 이유는 새누리당의 처신을 꼽을 수 있다. 현재 국회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확실한 우군(友軍)은 20여 명으로 쪼그라든 ‘친박’ 의원에 불과하다. 과반이 넘는 의석을 보유한 집권여당 새누리가 총선이라는 대업(大業)을 위해 정치적 중립지대로 회군했다. 그 바람에 박 대통령은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새누리당이 중립 성향으로 돌아서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과 손잡고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바람에 박 대통령은 장관 한 사람 자기 뜻대로 임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한 시절 박 대통령의 우군 역할을 자처했던 조중동 보수언론과 종편 채널들도 이제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비판의 칼을 겨누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현행 헌법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이 법안이 제시하는 사회적 경제 생태계는 국가가 ‘사회적 가치’를 설정하고 사회적경제위원회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부분적인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다름 아니다(한국경제 6월 15일자 사설). 각설하고,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사회적 기업을 무한정 양산하여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게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사회적 기업이나 생활협동조합 등은 거의 대부분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 국가 세금으로 이들 조직을 먹여 살림으로써 반(反)정부, 반(反)체제, 반(反)국가 세력을 조직적으로 양산할 수도 있다. 게다가 선거를 치를 때마다 한 표가 아쉬운 여야는 사회적 경제부문을 점점 확대하여 결국 건전한 기업이 설 땅이 줄어들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사회적 기업 등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정부와 공공부문이 5%까지 구매해야 하는 등 막대한 예산과 비용이 수반되는데, 통과를 앞두고 있는 법률안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사회적 경제부문에 무한정 세금을 퍼붓다보면 끝없이 쌓여갈 나라 빚은 누가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정치판에서 ‘소통’의 의미는?

지난 6월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위헌(違憲) 논란을 빚은 바 있는 국회법 개정안 중 ‘요구’를 ‘요청’으로 한 글자만 수정하여 정부로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국회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국정이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해질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조롱하듯 한 글자만 수정하여 이송했다.

청와대는 또 다시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고, 국회로 돌아간 이 개정안이 본회의에 다시 상정되면 청와대와 국회 관계는 파경 상황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의 개정안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與野)를 중재하여 만든 안이다. 여야가 합심하여 청와대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청와대와 국회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대립 관계는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노련한 정무 기능을 통해 국회와 충분한 소통을 거쳐 사전 조율을 함으로써 원만한 국정 운영의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한 측면이 강하다.

어느 분야나 특정 용어의 경우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사용한다. 외교가에서 “활발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는 표현은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싸웠다”는 뜻이다.

정치 세계는 문법(文法)이 독특하다. 정치인들의 어법(語法)에 의하면 ‘소통’이란 한 마디로 밥 먹고, 술 마시며 노래방에도 가고, 법안 주고받고 정치 자금 흥정하는 것을 뜻한다. 박 대통령의 인생행로로 볼 때 이러한 형태의 ‘소통’에는 문외한적인 지도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흔한 ‘쏘폭(소주 폭탄주) 러브샷’을 했다는 보도가 몇 년 전에 한두 번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임기 절반을 지내오는 동안 거듭된 인사 실패, 소통 부재, 행정부처 장악 미흡 등등의 세론(世論)은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소통’이라는 프로토콜이 작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부작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는 개인 박근혜의 위기를 넘어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놓고 개헌론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새민련 대표는 국회 내의 대표적 개헌론자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의화 국회의장도 개헌 찬성론자다.

▲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된 다음날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에선 모든 잘못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일이 유챙처럼 벌어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해 10월 16일 상하이(上海) 방문 당시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텐데 이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 의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과 언론, 국민들이 개헌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 여야 합의에 따라 조만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언했다. 여기에 6선의 이해찬(야), 5선의 이재오 의원은 기회만 오면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해 국회는 초당적으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을 결성했다.  이 모임에 재적의원의 과반인 154명이 참여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민련이 힘을 합치면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당장 개헌 추진이 가능하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국회 독재’가 문제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개헌은 모든 이슈를 한 곳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문재인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대변해서 국가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누구도 그걸 막을 수 없다. 대통령이 국회 차원의 논의를 막는 것은 월권이고,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강도 높게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개헌론자들의 한결같은 개헌 사유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희상 새민련 의원은 대통령제를 ‘악(惡)의 근원’이라면서 권력 분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과연 이런 주장은 팩트(fact)에 근거한 것일까?

현행 6공화국 헌법의 특징은 1987년 6·29 선언의 여파로 인해 대통령의 권한이 축소되고, 5년 단임으로 제한되었으며, 국회 권한이 대폭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은 보장되어 있으나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은 없다. 그 결과 2004년 3월 12일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여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 노무현의 위법 사실은 인정되지만 탄핵 사유로는 불충분하다며 탄핵안을 기각함으로써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업무에 복귀했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이밖에도 인사청문회, 국정조사, 국정감사 등등 부지기수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엔 야당이 반대하면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공천권을 내려놓으면서 여당에 대한 장악력도 허깨비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집권여당과 사사건건 부딪치자 급기야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여 딴 살림을 차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당 내 친박계의 강력한 압박으로 세종시 수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모습을 냉정하게 분석하면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무소불위 국회, 국회 독재가 문제인 시대가 되어버렸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6공 헌법에서는 입법권을 장악한 국회가 국정의 파트너로서 협조해야 원활한 국가 운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6공화국에서는 국회 권한이 너무 강력하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 입법 권력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 들어 논란을 불러 일으킨 김영란법, 사회적 경제 기본법, 국회법 수정안, 공무원 연금법 개악(改惡) 등은 모두가 ‘국회 독재’의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는 입법 권력을 독점한 국회의 독주에서 파생된 위기일 수도 있다.

1987년 6공화국 출범 이래 한국은 절차적으로는 완전 민주국가에 속하지만, 사실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려하던 중우(衆愚)민주주의(ochlocracy)에 가깝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국가가 형성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였지만, 이를 운영하는 주체인 국민 형성(nation building)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 시절 거국적으로 전개한 문맹 퇴치운동과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6공 헌법이 시행되면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행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민주시민교육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국민’은 존재하나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보유한 참다운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교육분야의 석학(碩學) 로버트 프리만 버츠는 참다운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콘텐츠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건국의 역사와 이념(즉 국민의 영혼,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헌법의 정체성(즉 헌법의 내용과 정신, 법치주의)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즉 국민의 국가에 대한 법적 지위,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자.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교육을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시행했는가.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는 전교조 교사나 좌파 학자들의 좌편향적 교육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실시되어 민주주의와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 왔다.

대한민국의 입법 권력을 손에 쥔 국회의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헌법을 부정하며, 법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시민(국민)들도 덩달아 시민(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팽개친 채 권리를 주장하느라 악을 쓰고 떼를 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집단 이기주의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퓰리즘, 조선의 극렬한 사색당쟁보다 더 심각한 당리당략으로 인한 소모전적인 정쟁(政爭) 등 중우민주주의의 모범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헌법을 도입하면 민주주의가 저절로 만개할 것으로 믿었고, 민주주의만 되면 모든 현안이 다 잘 풀릴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군사독재 권위주의 체제 하의 통제사회보다 민주적 국정운영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참혹하게 체험하고 있다.

모든 것이 ‘대통령 탓’인 나라

로버트 켈리 교수는 리더십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이 20%대 80%의 비율로 조화를 이뤄야만 문명사회의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80%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고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양성되어야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현실은 비가 안 와도 대통령 탓, 세월호가 침몰해도 대통령 잘못, 메르스 방역이 뚫려도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고 뭇매를 가한다. 이런 선동에 좌파 언론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보수 언론이라고 알려진 조중동은 물론 종편이 조직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모든 것을 ‘대통령 탓’이라고 떠넘기는 심성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유가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었기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우고 모든 사람들이 면죄부를 받고 희희낙락하는 것과 완전 닮은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언론이나 국회 내에 우군 세력도 없다. 총선과 대선으로 이합집산을 앞둔 정치세력과 언론은 일만 생겼다 하면 대통령을 흔들어댄다. 가히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이자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위기다.

국민들은 ‘제왕적 대통령’도 원하지 않지만, ‘제왕적 국회’도 원치 않는다. 이 모든 난국을 돌파하고 체제를 지켜내야 할 책임도 결국은 대통령에게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박근혜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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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니 2015-07-28 00:00:57
말이여 방구여

장명수 2015-06-26 11:55:12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