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가 동성애 논란 확대시켜
‘진영 논리’가 동성애 논란 확대시켜
  • 남정욱 편집위원
  • 승인 2015.06.29 1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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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문화코드로 본 동성애

“공리주의자 입장에서 나는 내가 이성애자인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

마흔 살이 되면 성전환 수술을 하고 친하게 지내던 벗들과 한 번씩 자고 싶다고 했더니 술자리가 뒤집어졌다. 대부분은 배를 잡고 웃었지만 대뜸 화장실로 귀를 씻으러 가는 인간도 있다. 화장실 다녀온 친구가 이틀 지난 바게트 빵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말한다. 

“또 그런 얘기 하면 다시는 너 안 본다.” 

그것 참. ‘사실은 남자가 더 좋아’라고 커밍아웃을 한 것도 아니고 농담 한마디 던진 것뿐인데 카운터펀치가 너무 세게 날아온다. 다음 타순으로 준비했던 대사까지 날렸더라면 칼부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너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더 가까워(그 친구는 실제로 그렇다).” 

10년 전 에피소드인데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성적(性的) 정체성과 관련된 담론은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다. 

1948년 1월 7일 무시무시한 보고서 하나가 발매된다. 이름 하여 킨제이 보고서. 남성 5300명, 여성 5940명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완벽한 이성애자는 10%에 불과하며, 동성애자 역시 같은 비율, 그리고 나머지 80%는 유동적인 사람들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들어 있다. 

‘너는 어느 편이냐?’ 

미국인만의 특질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다. 미국인이 무슨 화산 폭발로 생긴 종족도 아니고, 멀쩡히 배 타고 태평양 건너간 신사의 나라 출신들이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르기는커녕 역사적으로는 더 노골적이다. 남색, 대식, 암동모(여자 역할을 하던 광대) 전부 기록에 나오는 말들이다. 

세종대왕의 며느리 순빈 봉 씨 애기는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안다. 동성애를 혐오하든 동조하든 무신경하든 분명히 ‘있었던 팩트’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동성애에 대해 예민한 걸까. 게다가 명백하게 상극인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그나마 공유하는 게 ‘미신이 아닌 과학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을 떠 올리면 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답은 한국 사회의 강박증과 후진성이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는 전짓불 이야기가 나온다. 밤중에 문을 확 열고는 “너는 어느 편이냐” 묻는다. 빨갱이인지 아닌지 답하라는 얘긴데, 묻는 사람의 정체는 실루엣뿐이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그 무식한 시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후진성이다. 

소소한 사안에까지 입장을 밝히라는 세상의 무례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라는 책까지 써가며 한심함을 토로했다. 그저 각자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가족이 최우선인 보수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반(反)인륜적 행위겠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별 상관없는 행위다. 다만 선택에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 선택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가진 ‘당대의 도덕’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여지까지 포함된다. 자신이 게이, 혹은 레즈비언이라고 밝혔을 경우 분명 사회생활은 불편해진다. 그것까지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보수는 혐오하고 자유는 방관하고 동성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5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 관계자들이 무지개색 풍선을 이용해 하트를 만들고 있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도 찬반 양론으로 갈려 사회 갈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회문제로, 사회 갈등으로 자꾸만 번지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내전(內戰) 중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해 이른바 진보는 인권을 핑계 삼아 개입한다. 보수, 자유는 인권은 좋은데 그걸 외치는 진보가 싫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진보는 좌익의 화장한 말이다. 왕 없이 벌어지는 붕당정치, 진영 논리가 동성애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 

게이와 게이 문화는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부문에서는 압도적이다. 특히 패션이 그렇다. 성적(性的) 정체성에 따라 패션계 사람들의 계급을 나눈다면 맨 위는 게이, 그 다음은 바이섹슈얼과 스트레이트 여자, 그리고 최하위는 스트레이트 남자라는 이야기는 이제 비밀도 아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랄프 로렌, 마크 제이콥스 같은 패션계 인사들 중 확실히 스트레이트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략 게이이거나 최소한 바이섹슈얼이다. 

사랑에 빠진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아예 둘의 이름을 합친 브랜드까지 차렸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만든 옷도 입지 말아야 하나. 김연아의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는 커밍아웃한 게이 스케이터다(파트너가 폭로했으니 떠밀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런 이유 때문에 김연아까지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따지다 보면 분리가 어렵다는 말씀이다. 

잘못은 神에게도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이태원의 게이힐이나 트렌스 바인 ‘여보여보’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종의 한없이 깊은 심연을 본다. 동성을 좋아하거나, 자신을 타고난 성이 아닌 다른 성이라고 확신하거나, 그런 성에 이상한 매력을 느껴 자리를 같이 하는 이성애자나 참 각양각색이다. 

강요에 의해 게이가 되는 사람은 없다. 강요에 의해 게이가 스트레이트가 되는 경우도 없다. 각자 타고난 것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소설가 조세희는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고 했다. 동성애 그 자체는 옹호하거나 혐오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공리주의자 입장에서 나는 내가 이성애자인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성적 소수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발 이런 글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정치적인 이유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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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0희망 2015-06-29 19: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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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로 발생하는 에이즈의 현항: https://youtu.be/wD0Jy4_5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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