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패권전쟁과 대한민국의 운명
에너지 패권전쟁과 대한민국의 운명
  • 전경웅 객원기자
  • 승인 2015.07.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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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재편되는 에너지 시장

미국産 셰일 에너지 공급,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 둘러싼 갈등…, 한국의 선택은? 

지난 6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訪美)를 연기했다. 국민 여론보다는 여야(與野) 정치권의 요구가 워낙에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참모들과 여야가 메르스고 뭐고 간에 방미 일정은 소화하도록 권유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과 동아시아, 전 세계의 흐름 때문이다. 

지난 5년 사이 전 세계는 셰일 석유를 놓고 한바탕 기 싸움을 벌였다. 주인공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사우디아라비아, 남미의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이었다. 2015년 6월 현재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한때 100달러를 넘던 유가는 하락세를 거듭, 미(美)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가격이 50~6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셰일 석유가 시장에 대규모로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대폭 늘린 탓이다. 

하지만 셰일 석유 싸움을 본 원유 수입국들은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GS칼텍스가 2014년 9월 11일 전남 여수항으로 들어온 미 텍사스산(産) 콘덴세이트(셰일 가스를 개발할 때 함께 나오는 액상탄화수소로 초경질 원유라 부름. 유화산업 주원료인 나프타를 대량 함유하고 있다) 40만 배럴을 시작으로 미국산 에너지 자원을 들여오고 있다. 

국내에 수입된 미국産 콘덴세이트 

GS칼텍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4년 10월에는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에서 생산한 원유 80만 배럴을, 2015년 3월에는 멕시코 석유공사와 계약을 맺고 멕시코산 원유 100만 배럴을 들여왔다. 이는 1991년 이후 24년 만의 멕시코산 원유 수입이었다. SK에너지도 2014년 11월 미국산 콘덴세이트 40만 배럴을 들여왔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산 콘덴세이트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6월 24일, 미국 정부가 콘덴세이트를 비정제유로 지정, 수출을 40년 만에 허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콘덴세이트 수출을 허락한 것은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과도 연관이 깊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된 뒤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석유업계는 힘을 잃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상황은 역전됐다. 바로 미국 곳곳에 매장된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73년 1차 오일 쇼크 당시 미국 업체 ‘아라비아-아메리카 석유회사’를 국유화해 아람코를 만들고,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결성해 미국을 압박했다. 이에 미국은 1975년 에너지 보호법을 제정, 미국에서 생산한 원유는 캐나다를 제외한 해외에는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미국의 원유수출 금지는 40년 동안 유지돼 왔으나, 최근 기술 발전으로 석유를 더 많이 찾아내고, 셰일층(혈암층)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폭 하락하면서,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석유업계는 “미국산 에너지 자원을 해외로 수출, 동맹국을 돕고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24일 미국산 콘덴세이트의 해외 수출을 허용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콘덴세이트는 셰일 가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콘덴세이트 다음의 수출품은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과거에는 단단한 암반으로 돼 있는 셰일층 속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개발하는 데 1배럴 당 40달러 이상이 들었다. 그러나 1998년 미국인 채굴업자 조지 미첼이 수평시추-수압파쇄 공법을 개발하면서 개발비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때까지만 해도 원유 가격이 배럴 당 20달러 안팎이어서 수익성이 없었다. 

2008년 이후 국제유가가 수 년 동안 100달러를 오르내리면서 셰일 에너지를 보는 미국의 시선이 달라졌다. 캐나다는 북부 지역에 널려 있는 오일 샌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에서 대중교통, 난방 및 발전용 연료로 천연가스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확산된 것도 셰일 에너지 개발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 몫을 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산 석유의 해외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석유업계의 요구에 대해 “앞으로도 원유 수출 금지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최근 콘덴세이트의 해외 수출 허용은 오바마 정부의 기조가 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産 셰일 가스에 주목하는 韓·日 

미국이 콘덴세이트의 해외 수출을 허용한 것은 셰일 가스 개발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셰일 가스를 개발할 때 나오는 콘덴세이트의 양이 하루 100만 배럴이 넘지만 국내 수요는 극히 적다. 미국 정유시설 대부분이 20세기에 채굴했던 중질유 정제 시설이어서 콘덴세이트 정제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콘덴세이트를 수십만 배럴 정도 수입하고 있는데, 향후 미국이 셰일 가스를 대량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외신들은 “미국산 콘덴세이트와 셰일 가스가 연간 7조 달러에 이르는 에너지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지 의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하고 있지만, 에너지 부족에 허덕이는 동북아 3국은 미국산 셰일 가스와 셰일 석유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현재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한국가스공사는 2012년 1월, 미 국 사빈패스 프로젝트 측과 2017년부터 20년 동안 매년 350만 톤의 셰일 가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2012년 말 기준으로 한국이 수입하는 천연가스 3600만 톤의 9% 수준이다. 이 중 70만 톤은 프랑스 토탈에 재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석유공사는 2011년 미국 아나다코와 함께 텍사스 매버릭 분지의 셰일 가스 사업에 참여한 뒤, 아나다코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23.67%를 인수했다. 또 캐나다의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인 ‘블랙골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SK E&S는 2013년 9월 미 프리포트 LNG와 천연가스 액화설비 사용계약을 맺었다. SK E&S는 2019년부터 연간 220만 톤의 LNG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미 콘티넨탈과 함께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2019년부터 연간 120만 톤의 셰일가스를 받기로 했다. 

한국만 미국산 셰일 에너지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다. 일본은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2012년 기준 천연가스 수입량은 1118억㎥로 한국 수입량(497억㎥)의 세 배 가량 된다.  이보다 더 눈여겨 볼 점은 일본이 1969년 LNG를 처음 사용할 때부터 알래스카산 천연가스를 수입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천연가스 수입원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호주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산 천연가스는 2%대에 불과하다. 일본은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을 위해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본이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에 가만히 있을 리 없다. 

2013년 5월 17일 미국 에너지부(DOE)는 일본 오사카 가스와 텍사스 휴스턴에 소재지를 둔 프리포트 사(社) 간의 LNG 수출입 계약을 승인했다. 이 LNG는 프리포트가 셰일 가스를 액화해 만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승인해 준 대일(對日) 셰일가스 수출 기간은 20년.

현지에서는 “미국 정부가 추가로 2건의 셰일 가스 수출 계약은 승인해 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가스 업계에서는 “일본이 셰일 가스 수입 계약을 체결한 것은 한국보다 1년 늦었지만, 그 규모는 한국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 니카라과 운하 건설에 참여 

한국과 일본이 미국 기업들을 통해 셰일 에너지 확보전을 벌이는 반면 중국은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미국산 셰일 에너지는 대부분 멕시코만 연안에서 나온다. 따라서 셰일 에너지를 동아시아로 수출하려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1914년에 만든 파나마 운하는 폭 32m, 길이 290m 이상의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LNG 수송에 사용되는 초대형 운반선은 폭이 평균 60m에 달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한다. 파나마 정부는 1999년 미국으로부터 운하를 돌려받은 뒤 ‘포스트 파나막스급 선박(폭 49m, 길이 366m)’이 통과할 수 있도록 운하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스페인 건설업체 파시르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은 2007년 9월부터 53억 달러를 들여 확장공사를 했다. 그런데 컨소시엄 측은 2013년 말 “공사비가 초과됐다”며 파나마 정부에 16억 달러 초과분 지급을 요구해 공사가 중단됐다. 우여곡절 끝에 컨소시엄과 파나마 정부의 합의에 따라 공사는 재개됐지만, 완공은 2016년으로 미뤄졌다. 

▲ 파나마 운하. 1914년 개통된 파나마 운하는 폭 32m, 길이 290m 이상 되는 대형선박은 통과하지 못한다. 중국과 니카라과는 25만톤 급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운하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모습을 본 중국은 니카라과 정부를 설득, 양국 공동으로 ‘니카라과 운하’를 건설키로 했다. 2014년 7월 니카라과 정부는 길이 278m에 25만 톤급 대형선박(길이 300m, 폭 60m 이상)이 통과할 수 있는 운하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니카라과 정부가 발표한 운하는 카리브해 연안 푼타 고르다에서 니카라과 호수를 거쳐 태평양 연안 브리토까지 이어진다. 총 공사비는 400억 달러, 공사기간은 5년이다. 

니카라과 운하의 공사비와 운영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신웨이공사의 오너 왕징(王靖)이 소유한 홍콩-니카라과 운하개발(HKND)이란 업체가 맡는다. 이 프로젝트는 왕징이라는 개인이 소유한 HKND가 니카라과 운하 개발을 맡음으로써 중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남미의 반미(反美)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 지역의 자원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뜻이 반영되어 있는 프로젝트라는 평가가 많다. 

니카라과 운하가 완공되면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중국은 한일(韓日)과의 에너지 경쟁에서는 물론 미국산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는 데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멕시코만 연안에서 생산한 에너지 자원과 그 유통 루트를 놓고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이 복잡한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 바다에서는 또 다른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일·중(日中)의 대결과 미국, 한국의 움직임이다. 

남중국해 둘러싼 갈등, 한국의 선택은? 

중국 인민해방군은 올해 들어 남중국해 공해상의 난사군도(영문명 스프래틀리 군도)에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도련선(Island Chain) 전략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의 면적은 약 8,1㎢로, 섬에는 군용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가 건설되고, 이의 방어를 위한 대공포, 대공미사일 등 각종 무기들이 반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섬에 영구 주둔할 병력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중국 인민해방군 부참모장(합참차장)이 인공섬 건설을 “당연한 주권 행사”라고 밝히자 아세안 국가들은 물론 일본, 호주까지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미국 등 서방 진영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6월 7일부터 독일에서 열렸던 G7 회의에서는 중국을 향해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는 정상(頂上) 선언까지 나왔다. 

동아시아에서는 인공섬 논란이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6월 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국도 남중국해의 인공섬 문제 등 중국과의 영유권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한국도 중국의 인공섬 문제와 얽히게 됐다. 이 문제를 국내 정치권은 “미국 편에 서자” “한국은 상관없다”는 의견으로 갈리면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산 에너지를 둘러싼 한·일·중 간의 경쟁,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벌어지는 서방 진영과 중국 간의 대결 구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기에 국내 안보전문가들은 물론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연기한 방미 일정을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의 방미를 가로 막은 것은 정치권과 언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연기하기에 앞서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메르스 사태’를 내세워 대통령의 방미를 반대했다. 방미가 연기되자 언론과 정치권은 “잘 했다”며 칭찬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6월 9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최고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대통령께서 국민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성정(性情)만 갖고 계신다면, 왜 방미하는 것을 반대하겠느냐”며 “국민들은 그걸(대통령의 방미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19세기 구한말 같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런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원활히 수행하려면 정치권과 언론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각을 내세워 앞길을 가로 막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 참모들은 외부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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